춤 스크랩북

우리 近代舞踊의 제일인자며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던 조택원 옹이 지난 6월 8일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조옹처럼 자유와 광영을 누린 예술가는 드물 것이다.
우선 누구의 간섭이나 반대 없이 뜻대로 춤을 만들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었고 성품 그것이 자유주의에서 가정의 구속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마음껏 날개를 펴 넓은 하늘을 날았다. 때로는 높이 때로는 추락의 곤경에도 빠졌었으나 항상 우러러보는 관객이 있어 다시 나는 힘을 얻는 데 그리 궁하지 않았다. 그리고 날 수 있었던 晩年에는 화려한 훈장과 존경받는 자리를 차지하여 무용계에는 家父長的(가부장적)인 노여움과 경륜을 보이면서 젊은 아내와 충실한 가정생활을 영위하였다.
『文學이나 演劇은 입을 벌려야 하지만 춤을 입을 꼭 다물고 하는데 그놈들(日本人)이 뭐라고 꼬투리를 잡을 수 있겠어? 그러나 춤은 말 않고도 그 이상을 표현할 수 있거든, 물론 그놈들도 알고 있지, 그러나 알아도 못 잡지, 제 편에서 무식해서니까, 하하하.』(동아방송 對談에서)
그는 어둠에 살던 시대의 자기를 이처럼 유머러스하고 밝게 표현하고 있으나 이 말 속에 깔려 있는 當代의 어려움을 헤쳐나간 조선 청년예술가들의 지혜가 무엇이었나를 말해주고 있다. 사실 한국 근대무용 50년의 역사는 이 한사람― 趙澤元의 榮辱史(영욕사)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그의 자서전 「袈娑胡蝶(가사호접)」에는 자기의 춤춘 동기를 시몬 朴으로 지적하고 있다. 朴은 1921년 露領(노령) 海蔘威(해삼위)에서 온 朝鮮學生音樂團(조선학생음악단) 멤버였다. 그가 추는 슬라브 民族무용 코팍춤에 반한 것이 趙澤元의 춤의 동기였다. 템포 있고 유별난 기술이 있어야 춰지는 이 춤에 운동 소양을 가졌던 趙澤元이 매료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에 대하여 金乙漢 씨의 증언을 들어본다.
『土月會 제3회 공연은 그 후 종로 YMCA 대강당을 빌어서 했는데 그중 인생의 애환을 그린 「사랑과 죽음」이라는 연극 중에 술집에서 춤추는 장면이 하나 있어서 누구 적당한 사람이 없나 하고 춤출 사람을 물색하던 중에 「하이델 베르히」 공연 때 학생으로 잠깐 나왔던 조택원 씨가 자기는 그동안 시몬 박에게서 「코팍」이라는 러시아 춤을 배운 일이 있는데 그것을 한번 써먹어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시험 삼아서 그렇게 하였던 바 당시 테니스 선수로 이름 높던 그는 무용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서 춤이 끝나자마자 박수 소리가 우레같이 터져 나오고 앙코르를 부르짖는 관중의 고함으로 정작 연극 자체가 중단될 뻔하였다. 즉 허허실실로 한번 시험해본 것이 예상외로 크게 성공한 것이며 이것이 러시아의 민족 무용이라고도 할 코팍춤이 한국에 들어온 시초가 되었던 것이다.』 (춤誌 4月號)

말하자면 1920年代, 한 시대를 풍미한 꼬빼기춤(코팍訛傳)의 국내 최초의 무대는 趙澤元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꼬빼기 춤은 한국 近代舞踊史에 있어서 그저 觀客(관객)들에게 춤 槪念(개념)을 넓히고 새로운 西歐式 춤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觸媒的(촉매적) 역할을 하였다는 것으로만 엄한 조선사람들에게 실제로 세상이 왔다는 사실을 목격케 한 精神史的(정신사적)·風俗史的(풍속사적) 의의가 더 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말하자면 趙澤元과 우리 近代舞踊은 단순한 舞踊靑年(무용청년)으로서의 그런 상관이 아니고 宿命的(숙명적)인 惟一人(유일인)의 歷史 관계로서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럼 趙옹은 이것을 의식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1926年 본격적인 춤인 石井漠의 新舞踊(신무용)을 만난다. 이 年代는 사실 중요한데 晩年의 趙翁의 이 대목에 대한 기억이 때로는 26년도 되고 때로는 27년도 된다. 趙翁은 체질적으로 歷史意識(역사의식)에 대하여 무감각한 것 같게 느껴진 때가 많았다. 철저히 혼자의 춤만을 즐겼을 뿐이다. 그것은 그의 樂天的(낙천적)인 性格의 탓일 것이나 初期 崔承喜(최승희)와의 名分(명분) 競合(경합)에서 敗北(패배)한 때부터 만들어진 抛棄(포기)나 忌避(기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당대의 매스컴들은 崔承喜의 美貌(미모) 女性인 조건으로 언제나 크게 취급한 데 반하여 1년 후참자인 사내 趙澤元에 대하여서는 항상 인색하였다. 더구나 崔보다 4년이나 늦은 그의 제1회 공연은 崔承喜 때와는 달리 舞踊評이란 것도 登場하여 그에게 酷評(혹평)을 가하기도 하였다.
필경 崔보다 學識으로나 敎養(교양)이 높은 趙澤元이 앞선 말을 했을 텐데 崔承喜의 發言만이 美化되어 실렸다. 이런 것이 모두 그에게 歷史 意識에서 멀게 한 不感症(불감증)의 원인도 되었을 것 같다. 이 대목에 대하여 그의 선생 石井漠의 증언을 들어보자.
『趙澤元은 崔承喜가 생각하기 이전에 조선 무용의 부활을 생각하고 京城에서도 再三 上演하였으나 그것이 東京에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복주머니를 崔承喜에게 빼앗긴 격이 되었다. 물론 그가 남자였기 때문에 通俗的
(통속적)으로 崔承喜를 능가한다는 것은 아주 곤란하며 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趙澤元의 무용의 창조력에는 도저히 따르지 못한 그 무엇이 있어 최승희라 하여도 쉽게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모던 日本 1939년 第10卷 第12號)
그의 隱退公演(은퇴공연)이나 宣言(선언)도 歷史意識의 고려가 없었고 還國(환국) 후 藝術家로서의 누릴 영광은 勳章이 아니라 뒤떨어진 무용계의 누적된 일과 사회적 지위 향상에 대한 献身(헌신)임을 의식치 않았던 같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한 번도 그는 藝術的인 면에서 競爭者(경쟁자)인 崔承喜를 나쁘게 말한 적이 없는 일이다. 늘 『그는 춤의 天才다』라고 칭찬하였다. 그만큼 그는 강한 자존심의 소유자였으며 人格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남긴 作品으로 『身老心不老』(崔賢技能保有) 『袈娑胡蝶』(宋范技能保有) 『晩種』(林聖男·金文淑技能保有).

- 공간 1976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