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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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유튜브 등과 같이 특정 온라인 프로그램을 열 때마다 제일 먼저 나타나는 반 협박성 메시지를 보게 된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지원을 중단시키려는지 브리우저를 열면 한참을 뜸들이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를 갖기 시작한 나의 청춘시절부터 반백년이 된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통해 이용할 수 있던 주요 프로그램의 몇몇이 이제 익스플로러에서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익스플로러의 퇴출이 결정된 상태지만 이 브라우저를 십수 년 간 익숙하게 쓰고 있던 전 세계인들을 위해 긴긴 유예기간을 두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앞으로는 익스플로러 대신 ‘엣지(Edge)’ 또는 ‘크롬(CHROME)’이라는 생소한 기본 브라우저로 설정하라고 한다. 권고에 따라 두 가지 모두 설치해보았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 쉽고 나은 작업환경을 위해 변화를 한다는 점은 십분 이해가 가더라도 시스템이 달라진 낯선 프로그램에 정붙인다는 것은 어지간해선 쉽지 않다.
이뿐만 아니다. 시대에 뒤처지든 앞서가든 내 취향에 맞는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쓸 수 있는 자유는 없는 것인지. 바뀌고, 변화하는 것은 정체해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옛것에 대한 백업이 없이 바뀌기만 한다면 마치 한자를 모르면 고대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 하게 되듯 과거와 단절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예전에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던 시절 저장했던 자료들을 컴퓨터의 사양 그리고 저장방법이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미처 백업을 시키지 못했던 자료들. 이제는 열어보지도, 어디 가서 복원도 할 수 없게 되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플로피 디스크들이지만 이것들을 버리지도, 언제까지 가지고 있지도 못하게 되어버렸다. 변화도 중요하지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기호에 따라 선택 할 수 있는 세상은 언제쯤 가능한 것일까.

글에 대한 말이 나와서인데, 한글이 “문자가 갖춰야 하는 조건 이상을 갖추고 있는 글자”라는 것은 그 누구도 반박 할 수 없음에도 한글은 다른 나라에 비해 표기법이 변화무쌍하다. 한글의 역사는 한자나 영문보다 짧아서 과도기적 변천사가 있는 것이겠지만, 글은 어느 정도 말을 문자로 옮기는 일이기에 글이 변화무쌍하다는 뜻은 한국말의 화법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라는 뜻도 된다. 2020년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0년에 쓰여 진 신문기사들만 보아도 한글의 철자법이라든지 화법 등은 지금과 크게 다르다. “~하였다”를 “~하얏다”로 사용했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을 두엇슴으로” 등과 같이 지금의 기준으로는 틀린 철자법이 당시에는 신문사가 그렇게 썼다는 것이 재미있다. 당시에도 국어에 조예가 있거나 지식인들이 신문기사를 썼을 텐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이 글씨를 쓰실 때 어린 우리의 눈으로는 철자법이 틀렸다고 여기고 창피해 했던 그것들이 그분들의 기준에서는 맞는 철자법이었던 것이다.

… 자내 날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며
나는 자내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런고
매양 자내드려 내 닐오되 한데 누어 새기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엿비 녀겨 사랑호리
남도 우리 같은가 하야 자내드러 닐렀더니
엇디 그런 일을 생각지 아녀
나를 버리고 몬져 가시난고
자내 여히고 아무려 내 살 셰 업스니
수이 자내한테 가고져 하니 날 데려가소
자내 향해 마음을 차승(此乘)니 찾즐리 업스니
아마래 션운 뜻이 가이 업스니
이 내 안밖은 어데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내를 그려 살려뇨 하노 …

원이엄마 혹은 이응태(李應台, 1556~1586)의 아내로만 알려진 한 이름 없는 양반가의 아내가 쓴 편지에서 430여 년 전 조선시대 사람들의 (표준) 말투가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훈민정음의 한글 사용설명에 관한 글월을 통해서도 조선 초기의 언어가 어떠했을지 짐작을 할 수 있겠지만 이 편지의 글은 딱딱한 문어체 보다는 실생활에 쓰여 진 대화체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당시의 언어는 한자를 사용했고 또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말에 성조가 있었다고 한다. “~하얏고”, “엇디 가지런고”, “어데 가시난고” 등 과 같은 표기는 성조가 있던 언어에 어울릴 법한 것이라 생각된다. 세월이 지나 한글이 공식적인 국문으로 자리매김 하면서 성조도 없어지고 세월이 더 지나면서 지금과 같이 “~했고”, “어찌 가시나요” 등처럼 상대적으로 밋밋한 운율의 언어가 된 셈이다. 영상매체를 통해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등 10년 주기로 살펴보아도 한국인들의 말투와 억양이 계속 변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요즘의 어린 세대들은 일본말처럼 입술의 움직임이 줄어들고 비음이 섞인 소리로 바뀌어간다는 인상이 드는데 조숙한 외모와 억양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이응태 부인의 편지 보다 20여 년 뒤인 1600년 초에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의해 쓰인 작품이다. 비슷한 연대에 쓰인 두 개의 글이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는 현재는 잘 안 쓰는 단어가 있을지언정 스펠링이나 딕션 등에서 현재의 영어와 비교해도 언어가 크게 변화된 것 같지 않다. 아마도 한국어 같이 뜻글자를 쓰는 민족과 영어같이 소리글자를 쓰는 민족을 비교해볼 때, 시대에 따라 감성과 느낌이 달라지는 뜻글자를 쓰는 나라의 언어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다. 그런데 언어의 변화는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수시로 바뀌는 철자법 혹은 맞춤법은 의아하기만 하다.

하나 물어 보죠. 예를 들어, 자장면. 짜장면.
표준법으로 자장면이 맞습니다.
실생활에서는 어떤 표현을 사용하나요? 짜장면입니다.
맞춤법을 바꾸어 놓고 표준어로 명시 해 놓아
한글을 배우고 나서 몇 년 후 바뀌어 버리는 표준어 때문에
배웠던 단어들 문장은 대체로 틀린 단어 틀린 문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대체 무엇을 위해 바뀌는 건가요? 바뀌면 무엇이 좋아지나요?
국민이 매번 새롭게 바뀌는 국어를 공부해야 하나요? 묻고 싶습니다.

이응태 부인 역시 소싯적 어느 정도 교육을 받고 글쓰기 좋아하던 양반가 규수였을 테지만 오늘날의 잣대로 맞춤법을 보자면 학교 근처에도 못 갔었나보다 라는 취급만 받을 것이 빤하다. 한 나라의 글이 무슨 유행도 아니고 그리 오래지도 않아 수시로 바뀌는 이유는 왜일지 궁금하기만 한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만 아닌지 누군가가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내 공공언어 개선 국민 제보에 위와 같은 항의성 질의를 했던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국어원 담당직원으로부터의 해명은 “국어와 관련된 민원은 국민 신문고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였다.

「공공언어 개선 국민 제보」라는 창구를 만들어놓고 담당자가 다른 기관으로 떠넘기는 것이다. 언어에 관한 문제가 국민 신문고로 청원을 할 문제인가.
짜장면 같은 경우는 된소리를 줄이기 위해 국립국어원에서 억지로 자장면으로 표기 및 발음을 강요했다가 바뀌지 않는 국민들의 습관 때문에 짜장면과 자장면 두 가지 표기와 발음을 허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읍니다’도 사람들이 ‘~습니다’로 주로 쓰기 때문에 아예 ‘~습니다’를 공식적 표기로 바꾸게 된 것이다. 이 덕분에 아직도 ‘~읍니다’로 쓰는 세대들은 ‘~습니다’를 쓰는 세대들에게 구식이라는 취급을 받는다. 자신 있었던 사이시옷 표기도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이제는 자신 없어졌다. 학생 땐 받아쓰기 성적이 좋았던 편이었는데 이제는 아무런 소용없어졌다는 현실이 허무할 뿐이다.
정확한 맞춤법을 보다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보다 합리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충분히 이해를 구하기도 전에 어느 충분한 홍보도 없이 어느 순간엔가 은근슬쩍 바꾸어 놓고는 이전 것을 틀렸다고 부인하게 만드는 정책이 문제인 것이다. 마치 옛것이라면 무조건 죄악시 여기며 과거와 현재를 단절시켰던 이전의 과오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이렇게 줏대없어(?) 보이는 국립기관이 제시하는 새로운 표기법은 의도치 않게 사람을 은근히 차별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한글창제는 온 백성이 자국의 말을 쉽게 배우고 자유롭게 쓸 수 있기를 바라는 긍휼한 마음의 발로였으며, 계급에 관계없이 모든 백성들의 지식수준을 높이기를 바라는 평등사상이 깃들어있다. 그런데 이런 한글이 수시로 바뀌는 국어정책 때문에 오히려 국민들이 혼란을 겪고 세대차이, 교육수준 등의 위화감이 형성된다면 세종대왕의 뜻과는 무관할 뿐 만 아니라 국립으로서 기관의 존재가 없느니만 못할 것이다.
인터넷 언어 때문에 오염된 한글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 시점에 바꾸는 것에 시간과 세금을 낭비하기보다는 어린 세대들에게 바른 말과 글을 가르치며 현재 있는 것을 제대로 보존시켜 세대가 원활히 소통하는 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보존이 안 되는 변화는 있을 수 없다. 다시 말이지만 국어 관계자마저도 잘 모르고 헷갈려 하는 맞춤법의 변경을 이제는 멈춰야 하지 않나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