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살롱

올해도 어김없이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2020)」가 열렸고 좋은 작품들이 많이 선보였다. 페스티벌 초이스: 아시아 경쟁부분에 출품된 「쓰나미, 그 기억의 여정」(엘렌 로베르·제레미 페랭 감독, 프랑스, 2019년 68분)은, 특히 우리나라의 정서와 놀랍도록 일치하는 점을 발견했다.
2011년 3월11일, 쓰나미가 일본 도호쿠 지방의 해역을 휩쓸었고 2만 여명이 사망했다. 이 영화는 쓰나미가 지난 5년 뒤 피해 지역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려주는 작품이다.
처음엔 이 작품을 다소 오해했다. 기록영상 하나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 남은 이들의 당시 증언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재난기록물이 아닌지 생각했지만 이들의 일관된 증언은 죽은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는 게 아닌가! 죽은 자들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아침에 등교한 딸을 빨리 찾으러 가야 한다는 젊은 아버지, 왜 아직 나를 찾으러 오지 않느냐며 한탄하는 삼촌, 심지어 그들 중에는 아직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까지 있다. 또한 죽은 자들이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물론 단체로 몰려다녀 교통이 상습적으로 마비되는 장소도 있다고 한다.
일본 진종불교의 사찰들은 사찰이 자리 잡은 마을 주민들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죽은 자들의 영혼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돌보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쓰나미 즈음 갑자기 영혼들의 숫자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스님 한 분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사례들이 걷잡을 수 없이 많아졌다고 하면서 사례를 정리한 수첩을 보여주었다. 특히, 사람이 죽으면 강을 건너 오소레 산의 사찰로 간다는 설명을 덧붙여 보여준 불화(佛畵)는 지역의 믿음이 어떤 성격을 갖는지 알려준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받는 인상은 우리에게는 그리 특별한 경험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죽은 자들이 종종 나타나 세상사에 개입하였기에 산 사람들도 죽은 자의 출현을 그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동네 뒷산에 선조들이 모두 묻혀 있고 그 앞을 오며가며 옛 분을 기억해내니까 다큐멘터리의 설정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 감독들에게는 몹시 신기한 경험들이었을 것이다. 죽은 자들이 나타나 세상을 활보하고 다닌다는 뜻 아닌가.
쓰나미는 도호쿠 지역에 엄청난 불행을 몰고 왔다. 그 불행은 고스란히 그곳에 남았고, 거기에는 당연히 죽은 자들의 사연도 포함된다. 저명한 독일의 문화평론가인 W. 벤야민(1892~1940)은 ‘기억’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아직 변제되지 못한 과거의 요구들, 지나간 세대들의 희생과 패배와 절망을 현재에 변제, 이행, 성취해야 한다는 과제와 그 과제를 이루어낼 힘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했다. 쓰나미의 기억도 그에 해당하고, 프랑스 감독들까지 찾아와 도와주면 도호쿠의 엄청난 한(恨)이 언젠가 풀릴지 모른다.
현재 도호쿠 지역은 거대한 파도를 막기 위하여 10m 높이의 방파 벽이 길게 세워지고 있다. 방파제가 완성되는 날이면 저 원수 같은 바다를 직접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한이 조금 해소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