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스크랩북

六舍二號室(육사이호실) 창에서 내다보는 교도소의 붉은 담은 그렇게 높을 수가 없었다. 七월달― 씀바귀 한 포기가 그 담에 붙어서 연방 노랑꽃을 피워줘 그 외로움에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北쪽 나의 고향 마을의 담들은 거의 다 송판으로 만든 것이었다. 豆滿江(두만강) 뗏목을 製材
(제재)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송판이 흔했던 것일까. 製材所(제재소) 넓은 마당에 마치 丘陵(구릉)처럼 군데군데 쌓인 톱밥 산 위에서 전쟁놀음도 하고 곤두박질하여 별로 무섭지 않았던 일들이 생각난다.
같은 송판담장이지만 北間島(북간도) 龍井(용정)의 담들은 사과 궤짝처럼 널판을 옆으로 붙이는 것이 우리 고향과 달랐다.
중학교를 졸업하는 해 우리는 큰길가 집에서 적은 정원이 붙은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의 판자담이 너무 헐어서 새것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도 안 계셨고, 그때는 목수들이 모두 徵用(징용)으로 붙잡혀 갔기 때문에 나 혼자서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난생처음 큰 土木(토목) 일에 손을 대게 된 것이다. 그때 나이 十九세였다.
통나무 껍질이 그대로 붙은 송판을 골라서 쌓고 큰 기둥으로 쓸 나무도 내가 골라 쌓았다. 그리고 앞뜰과 뒤우란의 약 40미터나 되는 긴 판자담을 혼자서 세운 것이다. 그 후부터 집에서 생기는 어떤 일에든 혼자 할 수 있는 자신이 생겼다.
담 안엔 큰 살구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우리 고향엔 이런 나이 먹은 살구나무가 흔한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살구나무라 별로 좋은 줄 몰랐었다. 그런데 월남한 이후 언제나 봄이 오면 그 담 안에 있는 나이든 살구나무의 화려한 분홍 꽃이 생각나곤 한다.
수복 직후 우리는 을지로의 어떤 집 한 칸을 빌려 어머니와 동생 이렇게 세 식구가 살았다. 그때 이 동리는 도둑이 끓어서 밤마다 우리가 사는 마당 안으로 뛰어넘는 소리가 쿵쿵 들려오곤 할 정도였다. 도둑은 현관 곁의 담을 넘어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그 담은 이 집에선 가장 튼튼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보릿짚으로 만든 숫섬을 펴서 그 담장 위에 붙였다. 도둑들은 불안한 담은 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떻든 그 후부터는 도둑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만 빼고 온 동리로 돌아다녔다.
내가 처음으로 집을 가진 곳은 뚝섬 쪽이었다. 그곳은 地盤(지반)이 약해서 봄이 되면 새로 쌓은 블록담이 금이 가고 기울어지고 하였다. 몇 번 고쳐 쌓았지만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 집이 싫어진 큰 원인의 하나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나의 城廓(성곽)이 약하면 우선 지킬 흥미는 없어지는 법이니까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는 지붕 위도 담 위에도 내가 오를 수 있게 담 곁에 네 발 달린 높은 받침대도 만들어주셨고 사닥다리도 놔주셨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 좋았다. 그래서 늘 높은 위에 올라서 담 밖을 내려다보곤 하였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담 안에 우리 아이들이 올라갈 수 있게 받침대를 만들어놓는 것은 여기서 배운 지혜이다. 이것이 아이들을 얼마나 즐겁게 해준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이를 먹으면 높은 담은 헐어버리고 밖에서 정원이 보일 수 있게 낮은 담을 만들 생각이다. 그때까지 보기 좋은 큼직한 돌이나 몇 개 더 준비해야겠지. 길가는 사람이라도 들여다 봐주지 않으면 외로운 나이에 어떻게 살고 담을 낮춰야지. 그러나 그것은 人生의 하나의 武裝解除(무장해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다.

- 世代 1979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