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관무기

몇 년전 미국의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때, 스웨덴 한림원은 "위대한 미국 노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는 평가를 했다. 밥 딜런은 본인이 원했든지 어쨌든지 간에 미국의 위대한 노래 전통안에서(손바닥 위에서) 까불고 놀았다는 얘기. 한때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면 관련 도서가 무작정 잘 팔리던 때가 있었지만 옛날 얘기다.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했던 작가를 뜬금없이 상장 받은 타이틀 뽐내며 들이 댄다고 팔릴 시대가 아니다. 더군다나 노벨문학상에 대한 의구심은 늘상 있는 것이다. 지역별, 성별, 인종별 배분에 대한 얘기는 일반적인 것. 그러니 그런 점에 기대어 아시아의 두 나라, 한국과 일본에서는 몇 년간 자칭(혹은 자천) 타칭(혹은 타천) 수상 후보가 시즌만 되면 떠들썩했다. 차례 돌아올 때가 되었으니 바람만 잡으면 된다고 여겼을까. 상을 받으면 없던 독자가 늘어나고 문학적 평가가 상종가를 친다고 여기는 걸까.
일단 올해는 해당 사항이 없는 것이 되었다. 확신 할 수는 없겠지만 향후에도 기회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은 100여 명. 그중 널리 알려져 있는 헤밍웨이나 카뮈 혹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예를 들어 본다면, 그들의 작품은 작가의 생전에도 히트작이었지만 사후 반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문제작이며 필독서로 사랑 받는 것이다.(세 작가 모두 사후 50년이 지났다) 지금 한국과 일본의 거명되는 작가들에게 사후 50년 지난 다음 살아남을 작품이 있을까. 수상하고 나면 별반 무관심했던 재미없던 작품이 갑자기 훌륭해져서 길이 살아남는 것일까. 가당치 않은 것이다. 그러니 이러저러한 이유로 수상을 기대한다면 웃기는 것이다. 양심불량.
와세다대학 캠퍼스에 몇 번 가보았지만, 그것은 학교구경간 것이 아니었다. 한쪽 구석에 있는 연극박물관 구경을 갔던 것인데, 그곳에서는 이따금 볼만한 가부키관련 전시회가 열리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이 년전 와세다대학은 이 연극박물관 근처의 한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무라카미하루키도서관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무라카미가 소장한 모든 자료를 보관하고 세계현대문학 자료를 보강하여 라이브러리를 만들겠다는 것. 이것도 매우 웃기는 일이었다. 와세다대학이 문학부 출신인 무라카미를 앞세워서 세계적으로 학교이름을 더 알리고 유학생 유치에 도움이 되는 마케팅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 와세다 출신의 저명한 작가가 무라카미 한 명뿐이란 말인가. 무라카미는 최근 몇 년간 일본 언론들이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이윽고 생전에 자기이름을 붙인 거대한 도서관을 증정 받기에 이른 것이다. 가당치 않은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에서 이렇게 썼다.

“왜 책만 보느냐고?”
나는 전갱이의 마지막 조각을 맥주와 함께 삼키고 나서 접시를 치운 다음, 읽다가 옆에 놔둔 「감성교육」을 집어들고 책장을 넘겼다.
“플로베르가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이지.”
“살아 있는 작가의 책은 읽지 않는다는 뜻이야?”
“살아 있는 작가는 아무 가치도 없으니까.”

무라카미 자신은 본인 스스로가 살아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경원시했던 것이다. 본인이 번역하고 영향 받은 책들 역시 피츠제럴드나 샐린저 같은 벌써 죽은 미국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이제 무라카미는 처음 시작할 때의 겸손에서 벗어나서 자신이 숭배하던 대상들과 동급이 되었다고 여기는 걸까. 그러나 언제부턴가 무라카미의 작품이 더 이상의 도약은 없이 정체 되어 제자리를 맴돈다는 느낌을 받게 되어 버린 것이다. 더 이상 대작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것이 중론. 일본의 어떤 신문은, 한 문예평론가의 오에 겐자부로의 무라카미에 대한 평가까지 인용하며 무라카미 문학의 무국적성과 피동적이며 무저항적인 자세를 지적하고, 스스로 방향전환을 한 대작으로 여겼던 「1Q84」를 비롯해 「색채가 없는 다사키 츠쿠루와 그의 순례를 떠난 해」「여자 없는 남자들」 역시 모두 실패작이며 더 이상 그에게 대작이나 노벨상 수상 같은 것은 기대 할 수 없다는 신랄한 비판을 게재한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에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해변의 카프카」 이후 발간된 작품들은 「기사단장 죽이기」까지 포함해서 기존 작품의 리바이벌이었다. 재탕, 삼탕. 이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은 끝난 것일까. 지난여름 문예춘추사에서 6년 만에 신작 단편집 「일인칭단수」가 발간되었으나 이 또한 반응은 미지근한 것이다. 한 서점의 판매순위 발표에서는 죽은 지 50년 지난 미시마 유키오의 복각판보다 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이게 현실. 돈과 명예를 다 거머쥔 작가에게는 추동력이 남아있지 않은 걸까.
베토벤은 1770년에 태어나 1827년에 죽었다. 올해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 한국을 포함해서 세계 각국에서 많은 행사가 준비되었지만 거의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그의 57년 짧은 생애는 눈부신 것이었다. 그는 늘상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는 많은 여인들을 사랑했다. 그는 쓸쓸히 혼자 살았다. 그의 평생은 음악적 진보를 위한 맹렬한 투쟁이었다. 그는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떤 위대한 작품도 그를 한 자리에서 맴돌게 붙잡아 둘 수 없었다. 그는 곧 다음 전쟁터로 뛰어 들었다. 그는 독일의 전통을 이은 고전주의를 돌파했고 낭만주의 시대의 문을 열었다. 그는 일생을 통해 스스로 몇 단계의 점프와 변신을 했다. 그의 마지막 현악사중주들은 이전의 모든 것을 뒤집어엎는 파격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그는 끝까지 자기부정했고 고통 속에서 한걸음 한걸음 전진했다. 비바 베토벤! 본(Bonn)에 걸려 있는 베토벤의 초상화 구석에 유명한 문구가 쓰여 있다. 어디엔가 창작의 괴로움에 빠져있는 젊은 예술가들이 혹시 있다면 베토벤이 전하는 말이라고 억지를 부려봐도 될까. “고통을 견뎌내고 돌파해서 환희로”라는 뜻이겠다. “Durch Leiden zu Freu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