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스크랩북

‘무궁화’는 과연 ‘國花’인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만일 ‘國花’라는 것을 형식상으로 법령(法令)에 제정된 것이란 뜻으로 해석한다면 우리 기억에 그런 제정이 있었다고 들은 일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國花’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國花’라는 것은 반드시 법(法)으로 제정해야만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오랜 전통으로 자타가 인정하면 그렇게 인정된 예(例)가 다른 나라에도 있다. 이런 경우에 그것은 차라리 ‘국민화(國民花)’ 또는 ‘민족화(民族花)’라고 함이 정확할 것이다.
하여간 ‘무궁화’는 ‘국화(國花)’라고 법령화(法令化)된 것은 아니지마는 대소자전(大小字典)과 교과서 등을 들쳐보면 이를 ‘우리나라 꽃’이라고 정의
(定義) 내리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의 전통으로 ‘나라꽃’이 되어 있다고 말해서 무방할 것이다.
六堂 崔南善(육당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을 보면
“조선(朝鮮)에는 어디를 가든지 무궁화가 흔히 있으니까 무궁화 나라라고 함이 까닭 없다 할 수 없으며 또 무궁화는 꽃으로 가장 좋은 것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마는 그 발그레한 고운 빛이 美人의 얼굴을 형용하는 데 씌우는 터며 또 날마다 새 꽃이 피어 가면서 봄 여름 가을을 지내는 긴 동안에 줄기차고 씩씩하게 피기를 말지 아니하는 점이 왕성한 생명력을 나타내는 듯하여서 나라를 대표하는 꽃을 삼기에 부족할 것이 없다 할 만합니다.”

고 말하였다.
조동화(趙東華)씨는 그의 저서 「꽃과 소녀(少女)」에서 “무궁화는 한국의 국화(國花 즉 나라꽃의 意 ・引用者註)이며 꽃말은 ‘영원(永遠)’ 또는 ‘일편단심(一片丹心)’입니다” 하였다. 그리고 국화(國花)로 정해진 이유에 대하여 그는 “확실치는 않으나 이 꽃이 끊이지 않고 연달아 핀다는 것과 그 꽃 속이 붉어 인편단심(一片丹心)을 나타낸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趙東華 씨는 上記 저서에서, 또 최근 발표한 「무궁화와 國花」라는 논문에서 무궁화가 國花로서 적당치 않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 이유를 요약해보면

①무궁화는 비전토적(非全土的)이라 함이다. 즉 무궁화는 全南 全北 變北 忠南 京繼 黃海 등 6道에만 자생(自生)하는 식물이라 함이다. “왜 남쪽에만 피고 있는 꽃을 우리의 國花로 만들었습니까” 하는 무궁화를 사랑하는 소녀(少女)의 질문을 받은 젊은 선생님은 “옛날 할아버지들이 좋아했던 때에 정해진 것이니까 여러분의 시대가 오면 진달래나 봉사꽃으로 고쳐질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역시 동씨(同氏) 저서의 일절이다.
②무궁화의 원산지(原産地)가 인도(印度)지방인 고로 결국 외래종재배식물(外來種栽培植物)이라 함이다.
③무궁화는 불건강(不健康)하고 불청결(不淸潔)한 식물 즉 진디벌레가 가장 많이 붙고 단명(短命)하다 함이다.
④또 휴면기(休眠期)가 길어서 봄에는 늦게까지 잠자고 가을에는 남 먼저 시들어버릴 뿐 아니라 산화(散花)도 아닌, 병들어 시들어지는 꽃이기 때문에 낙화상(洛花相)도 좋지 못하다 함이다.

육당(六堂)과 조동화(趙東華) 양씨의 설(說)을 비교할 때에 상당한 거리가 있다. 六堂은 단정하여 “조선에는 어디를 가든지 무궁화가 흔히 있으니까”라 하였고 “나라꽃을 삼기에 부족할 것이 없다 할 만하다” 했는데 趙씨는 “식물학적(植物學的)으로 보나 한국(韓國)의 지리적(地理的)인 것으로 보아 무궁화가 국화(國花)로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거짓말 같은 말이다”라고 하였다.
문세영(文世榮)씨의 「우리말사전」에 본즉 무궁화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이우는 조선에 특유한 나무”라고 하였다. 옥편(玉篇)에도 ‘조생모운
(朝生暮殞)’이라 하였다. 趙씨의 무궁화 인도원산설(印度原産設)이 옳다면 文씨의 “조선에 특유한 나무”라는 것은 착오라고 할 것인가. 하여간에 조생모운(朝生暮殞)이란 정의(定義)가 보편성이 있다 하면 국화(國花)로서의 자격을 손상하는 것도 같다. 물론 비록 하나하나의 꽃은 조생모운(朝生暮殞)하지마는 ‘전사후접(前사後接)’ 하여 줄기차게 피어나는 점을 찬양할 수 있음은 ‘무궁(無窮)’이라는 자의(字意)에 맞아서 취할만도 하다.
다시 조동화(趙東華)씨의 권위를 빌어서 다른 나라의 ‘國花’를 상고해보자. 잉글랜드(장미) 스코틀랜드(엉겅퀴) 아일랜드(클로버) 페루(해바라기) 中國(매화・모란) 프랑스(꽃창포) 인도 (양귀비꽃) 애급(연꽃) 그리스(오랑캐꽃) 이탤리(마가레트).
다음에는 미국(美國)의 각주(各州)의 ‘주화(州花)’를 골라 본다.
알라바마(개나리) 아리조나(선인장) 아칸소(사과꽃) 캘리포니아(양귀비) 콜로라도(컬럼바인) 코네티커트(산월계수山月桂樹) 델러웨어(복숭아꽃) 플로리다(귤꽃) 죠지아(체로키 장미) 아이다호(산매화山梅花) 일리노이(오랑캐꽃) 인디아나(백일홍) 아이오와(들장미) 캔사스(해바라기) 켄터키(개나리) 루이지아나(목란木蘭) 메인(솔방울) 메릴랜드(흑목黑目수산?) 마사츄세츠(5月花) 미시간(사과꽃) 미네소타(모카신花) 미시시피(木蘭) 미조리(아가위) 몬타나(고근苦根?) 네브라스카(개나리) 네바다(사막沙漠풀) 뉴햄프셔(자정향紫丁香) 뉴저지(오랑캐꽃) 뉴멕시코(여카=사란絲蘭?) 뉴욕(장미) 北캐롤라이나(층층나무) 北다코타(들장미) 오하이오(주홍카네이션) 오클라호마(겨우살이) 오레곤(오렌곤포도) 팬실베니아(山月桂樹) 로드아일랜드(오랑캐꽃) 南캐롤라이나(황소형黃素馨) 南다코타(아네모네 外2種) 테네시(난(蘭) 텍사스(블류보네트) 유타(세고질리) 버몬트(紅클로버) 버지니아(미국 충충나무) 워싱톤(石南) 西 버지니아(石南) 위스컨신(오랑캐꽃) 와이오밍(인디안 페인트 브러쉬)
그 밖에 컬럼비아區(미국 장미) 알라스카(물망초勿忘草) 하와이(미상未詳) 등이다. (식물학자가 아닌 필자는 상기번역명(上記飜譯名)에 자신이 없음을 부언(附言)한다.)
적어놓고 보니 눈에 띄는 것이 ‘오랑캐꽃’과 ‘개나리’다. 여러 번 나오는 까닭도 하나요, 우리가 잘 아는 꽃인 까닭도 하나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꽃이 꽃 자체는 좋은데 이름의 어감(語感)은 좋지 못하다. 하나는 ‘오랑캐’ 하나는 ‘개’라는 말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어(英語)로는 바욜레트(violet)와 골든로드(goldenrod)가 둘 다 어감(語感)이 괜찮다. 그 대신 덕우드(dogwood=충충나무)는 英語로 개(dog)란 말이 들어가서 재미적다. 그리고 ‘양귀비꽃’ 같은 것은 화려한 듯하면서도 어쩐지 독기(毒氣)가 있는 것 같아서 맘에 들지 않는다. ‘장미’에도 가시가 있어서 흠이다.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조동화(趙東華)씨가 추천하는 ‘진달래’와 ‘봉선화’를 생각해보자.
나의 개인의 취미로 말하자면 ‘진달래’ 보다는 ‘개나리’를 취하고 싶다. 우리 시골에서는 반점(班點)있는 백합화(百合花)를 개나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사투리요, 여기 ‘개나리’라 하는 것은 즉 봄에 노랑꽃이 줄줄이 달리는 ‘영춘화迎春花(혹왈 황매화 或曰黃梅花), 영어(英語)로 골든로드(황금黃金막대기)라는 꽃이다. 진달래는 정서적(情熱的)인 대신에 번뇌상(煩惱相)이 있는데 개나리는 오직 명랑 쾌활한 것이 좋다. 그리고 또 한 가지에 줄줄이 종기종기 의좋게 피어나는 것이 우리에게 합심 협동의 정신을 가르쳐주는 것 같다.
봉선화에 대해서는 일찍이 나는 「봉사꽃」이라는 시집(詩集)을 냈고 거기 “삼천리 방방곡곡(三千里 坊坊曲曲) 봉사꽃 아니 핀 집이 없다네” 하는 시구(詩句)를 장식했었다. 봉선화도 후보생(候補生)으로서 찬의를 표하고 싶은 꽃이다. 그 밖에 민요(民謠)에 익어진 ‘도라지’ 꽃 ‘버들’ 꽃들도 후보가 되지 않을까.
우리 애국가(愛國歌)에 꽃 이름은 무궁화가 들어있고 그 밖에 식물로서는 ‘송백(松栢)’이 들어있다. ‘송백(松栢)’은 꽃이 아니니 ‘國花’를 愛國歌와 연결시킨다면 무궁화를 택할 수밖에 없다. (상기(上記)한 美國 각주(各州) 꽃 중에 메인 州의 ‘솔방울’이 있기는 하다.)
이렇게 되면 국가제정(國歌制定)의 문제가 생각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엄격히 말해서 국가(國歌)가 아니요 ‘애국가(愛國歌)’다. 아직 國歌의 지정 또는 제정이 없기 때문에 ‘愛國歌’를 ‘國歌’처럼 부르고 있다. 그러면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정식으로 ‘國歌’로 지정할 것이냐 또는 새로운 ‘國歌’를 지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나아가자면 이미 趙씨가 지적한 바와 같이 국기(國旗)에 관한 문제도 일어나고 심지어는 국호(國號)에 관한 논의나 기년(紀年)의 문제 등도 재연(再燃)될 수 있다. 이런 모든 문제는 趙씨가 말한바 “다소의 불만이 있더라도 남북통일(南北統一)이 되기 전까지는 그대로 말 않는 것이 일반 국민의 상식처럼 되어 있던 것”이 아직도 사실이요 이를 재연(再燃)시킬 환경이 아닌 것 같다.
‘서울’의 명칭을 개정(改訂)하자는 것을 기회로 하여 ‘국화(國花)’ 문제를 다시 검토할 필요를 느낀다고 하였지마는 필자로서는 거꾸로 생각하여 남북(南北)이 통일되기 전까지는 ‘서울’의 명칭문제 같은 일도 아직 그대로 말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믿는다. 학자들이 사사로이 연구하여서 후생에게 참고로 남겨주는 것은 좋을 것이나 바쁜 일이 많은 때에 국운(國運)에 크게 관계없는 지명(地名)이니 국화(國花)니 하는 등의 문제를 실제면(實際面)에 끌고 나와서 정력을 허비케 하는 것은 피함이 좋은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사견(私見)이다.

- 朝鮮日報 1956년 2월 28~29일 / 韓國論爭史(1976년刊) 재수록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