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스크랩북

바람 몰고 다니던 호랑이도 나이 들면 판단이 흐려진다. 그래서 엉큼한 곰의 말도 정말로 듣고, 간사한 여우 얘기도 곧이 듣는다. 그게 답답한 새끼는 가슴을 치면서 말하였다.
『내남없이 늙으면 죽어야해,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통 모르니 저렇게 되면 저건 호피(虎皮)지 어디 호랑인가?』

늙은 호랑이에게는 볕든 자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좋은 인왕산(仁王山)낙엽도 마다하고 찬 바윗돌 위에서만 밤을 샜으니… 이 허리 성할수 있나… 아이구 아이구』

감나무를 쳐다보면서 호물때기(이가 모두 빠져서 합죽한 입술로 늘 오물거리를 늙은 사람)호랑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감이 (나무)에 달리는 사실을 이 나이에 처음 알았어. 젊은 때는 늘 바빠서 연시(軟柿)는 땅에 굴러다니는 것인 줄 알았지. 그 경치 붉어서 좋다! 저놈은 물러서 잇몸으로도 먹을 수 있단 말이야』
나이 든 호랑이가 포수에게 잡혀가는 젊은 호랑이에게 큰 소리로 말하였다.
『사람에게 잡혀가도 정신 만 똑바로 차리면 살 길이 난다』
그러니까 젊은 호랑이가 대답하였다.
『주책이셔. 포수가 듣겠어. 그걸 모르는 호랑이도 이 세상에 있나?』

밤눈 어두워진 호랑이가 부엉이에게 말하였다.
『옛날 나의 눈은 밤길 백리를 꿰뚫어 보았단다』
그러니까 부엉이가 말하였다.
『또 그 옛날인가요? 그때 우리 할아버지는 아저씨 할아버지가 잃은 담뱃대를 찾아드리곤 하셨다던데요』

말동무가 없는 호랑이가 너무너무 외로워 혼잣말을 하였다.
『같이 살 것들은 안 낳고 삵괭이만 못한 호랑이 새끼만 낳았으니… 내 팔자도 개팔자지』
그러니까 강아지가 말하였다
『무식도 하셔. 개팔자의 뜻이 어디 그런 건가요?』

- 샘터 1975年 10月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