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정기세미나

우리는 늘 그랬듯 오늘을 살아간다. 그런데 늘 그랬던 오늘의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 요즘이다. 기후변화 등 재난이 줄줄이 예고되어 온 지 오래고 황사와 미세먼지로 인해 마스크도 오래전부터 익숙해졌지만, 코로나19는 처음 겪는 상황이다. 오늘이 멈춰진 시간처럼 느껴진다. 마치 도둑맞은 시간처럼, 2020년은 살긴 살았지만 산 것 같지 않은 시간으로 존재한다. 내일의 삶으로 나를 이끈 것은 오늘의 삶이었으니, 그런 일상이 불가능해지자 삶의 동력도 사라져버린 듯하다. 우리 춤계의 시간도 나와 다르지 않다면,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춤이 없는데 내일 춤은 있는가? 코로나19의 시간을 보내며 가장 많이, 어쩌면 유일하게 한 일이 있다면 코로나19 이후의 춤을 생각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현재의 일상에 영향을 준 것은 항상 과거이지 미래가 아니었다. 과거의 삶이 현재를 결정했을지언정 미래의 삶은 별 영향력이 없었다. 전 지구를 위협하는 지금의 기후 위기는 과거의 삶에서 온 것이며 아무리 다가올 재난을 예고해도 현재 삶의 방식이 꿈쩍도 안 하는 걸 목격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은 현재의 삶을 바꾸었고, 미래가 앞당겨졌다면서 코로나19 이후의 일상을 경험하게 한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일까? 이른바 ‘비대면’ 말이다. 그렇다면 내일의 춤은 오늘 이미 시작된 것일까?

코로나19 시대의 춤현장 – 비대면 상황의 온라인 공연과 춤영상의 발전
올해의 춤현장을 보면 비대면이라는 상황을 실감하게 된다. 코로나19 시대 공연은 주로 취소하거나 연기하거나 아니면 예정대로 진행하거나, 셋 중 하나였다. 전염병으로 인한 비대면의 환경을 그 누가 예측해 준비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 그냥 공연을 포기하거나 전염병 확산이 줄어든 이후로 미루거나 아니면 방역에 신경쓰며 조심하면서 공연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모두 ‘비대면’ 권장,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집합 금지’와 같은 방역지침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공연은 극장이라는 장소의 산물, 그러니까 공연자와 관람자 공동의 일이었던 것이다. 춤이 극장 무대를 벗어난 지도 오래인데, 새삼스럽게 이 상황이 다시 극장을 이야기하게 만든다.
그렇게 코로나19 시대의 춤과 그 이후 춤의 문제는 제일 먼저 공연의 상황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비대면 공연일 경우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유튜브(youtube)나 네이버TV 같은 채널을 통한 온라인 방송이 그것이다. 사실 공연을 생중계하는 방식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TV 시절(?)에도 있었던 일이니까. 여기서 생중계 현장인 공연장에 관객이 있고 없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기에, 무관중 공연을 (TV든 컴퓨터든 스마트폰이든) 화면으로 관람하게 하는 방식은 낯설지 않다. 이미 안무가들은 공연을 매번 촬영하여 기록해 왔으므로 온라인 공연은 그저 촬영한 것을 송출하는 것일 뿐 그것이 코로나19 시대의 춤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공연실황을 담은 DVD나 케이블 방송채널 등에 익숙하지 않은가. 하지만 ‘비대면 공연’이라는 타이틀로 코로나19 시대의 한 장면을 크게 장식했다. 이러한 공연은 코로나19 이후의 춤이 될 수 있을까?
비대면 시대 춤을 온라인으로 감상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춤의 문제가 아니라 공연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산업의 문제일 수 있다. 지금의 온라인 공연은 극장 관람을 유튜브 관람으로 대체한 수준으로 이는 유통방식의 변화일 뿐이다. 산업의 요소로서 공연장을 고려할 때, 온라인 공연의 발전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춤예술이 말하는 극장은 상업시설로서 무대가 아니라 존재론적 의미를 가리키므로 그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도 있다. 즉, 영화가 극장이 아니라 넷플릭스에서 상영된다는 것이 영화의 존재를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은 의미다.
물론 그렇게 간단하게만 생각할 사안은 아니다. 생산방식의 변화는 예술의 존재방식을 바꾼다. 무용영상의 발전이 춤예술에 영향을 주고 있는 사정이 그러하다. 무용영화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꾸준히 영상을 위한 춤이 두드러지게 발전하고 있다. 그것은 애초부터 극장을 벗어나 있다. 즉, 시공간의 제약을 없애고 그 너머의 가능성을 추구했던 시도다. 춤이 생활에서 분리되어 예술로서 위상을 갖게 된 것은 극장이라는 매개에 의해서였다. ‘발레’는 예술춤의 이름으로 무용극으로서 춤의 발전을 이끌었다. 극장예술로서 춤의 시작을 볼 때, 극장이라는 무대공간은 그 춤이 예술작품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주는 중요한 요소였다. 조명과 음향과 장치 등 각종 무대요소들은 임의로 빠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도 빠짐없이 매우 적절하게 조화를 잘 이뤄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공연의 성과를 좌우했다. 안무는 공연의 요소 중 하나였으니, 훌륭하고 좋은 작품은 그 요소들의 결합으로 판명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점차 안무는 독립적인 요소로 발전했고, 그것이 춤예술의 핵심이자 전부로 인식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극장이 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춤이 무대를 만드는 것으로 전환되면서 현대무용의 시대가 전개되었다. 오랫동안 극장은 유통을 담당한 단순 매개가 아니라 작품이 되는 춤을 제작하는 핵심 기반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춤영상의 발전은 이 같은 무용사에서 다른 차원의 접근을 말한다. 극장의 요소 중 하나는 관객이다. 그러니까 예술춤은 처음부터 관객이 그 일부였던 셈이다. 공연이 관람자와 공연자 공동의 일이라면, 무용영상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이다. 배우의 연기라는 점에서 공통적인 연극과 영화의 생산방식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무용영화를 포함한 영상춤은 극장 관객을 위한 춤이 아니라 카메라를 위한 춤이다. 즉, 영화와 같은 기법에 의존하다 보니 말 그대로 극장이라는 제약은 벗어났으나 카메라 혹은 영상이라는 다른 제약에 구속된다. 그래서 누구나가 쉽게 그건 춤공연이 아니라 그냥 춤영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코로나19 상황에 궁여지책으로 이루어진 온라인 공연은 극장의 관객을 위한 춤과 마찬가지로, 그저 객석이 아니라 영상을 통해 관람하는 것일 뿐 무용영화를 관람하는 것과는 다르다. 만약 우리가 온라인 환경, 즉 영상을 통해 춤을 관람하기 위해 촬영에 관심을 기울이고 집중한다면 그것은 결국 좋은 춤영상을 제작하는 일이지 춤공연이 아니므로, 우리의 물음은 제자리다.
코로나19 이후의 춤은 춤영상 혹은 무용영화일까? 비대면이 우리의 미래라면 앞으로 춤은 영상을 통한 관람이 일반화된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의 춤은 영상을 위한 안무로 발전하게 될까? 안무는 카메라에 적합한 움직임 연구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극장의 요소들이 춤이 어떤 예술인지 알려주었듯 영상의 요소들이 춤이 무엇인지 알려줄 것이다. 비록 지금의 온라인 공연은 아닐지라도 지속적인 무용영상의 발전은 춤에게 새로운 통찰을 줄지도 모른다. 이미 이미지와 움직임에 관한 연구가 많이 되어 있으니 춤은 영상미학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도 있고 또한 그로 인해 혹은 그 과정에서 우리는 춤의 가능성을 확장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영상이라는 매체와 춤이라는 매체가 다르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은 다시 춤공연으로 돌아오게 된다.

현재의 춤 1 – 컨템포러리댄스의 사정
무용사를 돌이켜보고 또 지금의 춤을 볼 때, 예술로서 춤이 극장 무대를 벗어난 것은 오래전 일이다. 서양에서 모던댄스는 극장예술인 발레의 안티테제(antithesis)로 등장한 새로운 춤양식처럼 이해된다. 거기에 함의된 내용은 단순히 ‘몸과 움직임’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문화적 의미를 지니지만, 어쨌든 다른 예술장르에서 각각의 형식들이 그러했듯 현대무용 역시 춤예술에서는 춤에 대한 이해를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그 이후 20세기 내내 춤은 수백 년의 역사가 하지 못했던 발전을 한순간에 이루기라도 하듯 빠르게 그리고 급진적으로 발전했고, 한 세기가 끝나자 마치 그 시간과 함께 끝나기라도 하듯 더 이상 발전적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즉, 우리가 어떠한 예술의 발전을 정-반-합의 변증법적 이행으로 이해한다면, 현대무용의 발전은 확실히 그러한 진보의 역사였다. 그런 점에서, 어느 시점에 이르러 더 이상 ‘반(反)’이 성립하지 못한 상황처럼 보인다는 것이고, 따라서 역동성이 사라진 춤 역시 그 역사를 다한 듯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의 춤현장에는 무엇이 있는가?
미국의 예술철학자이자 미술비평가였던 아서 단토(Arthur C. Danto, 1924~2013)의 용어를 빌리면, 우리는 그러한 상황을 ‘무용의 종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단토는 1960년대 이후, 특히 팝아트 등장 이후 벌어진 미국 미술현장을 진단하며 ‘모더니즘 미술이 끝났다’는 의미로 ‘끝(end)’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미술/예술의 종말(The End of Art)’이라는 용어가 어떤 의미인지를 숱하게 해명해야 했고, 먼저는 ‘예술시대의 끝’(즉, 르네상스 시대부터 모더니즘 시대 예술까지), ‘거대 서사(narrative)의 끝’(즉, 미술이 무엇이라고 규정하던 이야기), ‘탈-역사(post-historical) 시대’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의 예술상황을 -그러니까 이때는 확실하게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이기도 한데- 지칭하기 위해 ‘컨템포러리아트(contemporary art)’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단토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모던 미술과 컨템포러리 미술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지만 1990년대에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미 1970년대 모던아트로는 설명될 수 없는 미술의 상황이 발생하면서 그것을 설명하는 새로운 개념이 요구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였다. 포스트모던 아트라는 용어는 모던아트와는 다른 미술이 등장했다는 인식의 징표로 등장했는데, 단토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가 1970년대 이후의 예술적 상황, 특히 모던-이후의 예술을 포괄해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마치 이 용어가 모더니즘처럼 양식적 특징을 지칭하는 것처럼 사용된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그 양식의 특징이란 가령 ‘순수하기보다는 잡종인, 깨끗하기보다는 타협적인, 명확하기보다는 애매한, 흥미로울 뿐 아니라 괴팍한 요소’를 가리킨다. 단토는 컨템포러리아트를 그 같은 특성과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무용 분야에서도 1980년대 이후에는 ‘컨템포러리댄스’라는 용어가 상용되었는데, 우리에게 그것은 사실 미국의 춤보다도 유럽의 춤에서 도입된 용어였다. 미국의 ‘포스트모던댄스’는 미국 모던댄스에 대한 거부와 반대의 과정에서 발전했고, 더불어 하나의 사조로 불릴 만한 양식적 체계를 확립했다. 1980년대 서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한 컨템포러리댄스는 그와 다른 방향이었다. 그리하여 마치 시간적으로 포스트모던댄스 그 다음으로 컨템포러리댄스 하는 식으로 순서처럼 이해하긴 하지만, 그 역시 어떤 점에서 완전히 틀렸다고만 볼 수는 없다. 포스트모던댄스 이후 확실히 세계 춤의 중심은 서유럽으로 옮겨갔으니까. 그런데 컨템포러리댄스는 모던댄스 혹은 포스트모던댄스처럼 일종의 사조나 하나의 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컨템포러리댄스를 하나의 개념이자 양식으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즉, 모던댄스와 포스트모던댄스처럼 하나의 양식적 특성으로 컨템포러리댄스를 규명하고자 하는 관점이 있었다. 특히 컨템포러리댄스의 주류적 방향을 ‘개념예술’에서 수용했는데, 이것은 예술을 철학적 사유와 동일하게 보는 관점이었다. 지성적인 예술가들이 주도한 소수의 작업이었지만, ‘철학이 된 예술’과 같은 용어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던 시기가 있었다. 우리의 예술현장은 다소 뒤늦게 그런 경향을 수용한 감이 있는데, 춤현장에서 그것은 컨템포러리댄스가 무엇인지 규정하고자 했던 -어떤 측면에서는 요구받았던- 상황에서 임시방편 같은 대답이었다.
그렇게 ‘개념예술로서 춤’ 역시 잠시의 유행을 다하고 나니, 다시 컨템포러리댄스를 설명할 무언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른바 컨템포러리댄스 이후의 춤을 요구받고 있는 셈이다. 가령 올해 창단 10년을 맞이한 국립현대무용단의 고민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컨템포러리댄스를 표방하고 출범한 단체인 만큼, 자칭 컨템포러리댄스를 주도하였다고 자부하며 우리 현대무용의 낡은 지반을 흔들고 진정한 동시대 춤의 방향을 설정했다는 과시는 그러한 부담을 내포한다.

현재의 춤 2 – 다원주의와 컨템포러리 예술로서 춤
코로나19 시대와 무관해 보이는 컨템포러리댄스 이야기를 꺼낸 것은, 코로나19 이후의 춤이 바로 그 흐름에 있기 때문이다. 단토의 컨템포러리아트 논의를 좀 더 빌려보자. 단토가 모더니즘 이후 예술은 끝났다고 말한 의미는, 바로크양식, 고전주의, 낭만주의, 모더니즘과 같은 예술의 사조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그 용어는 더 이상 그러한 양식을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를 표현했다. 그런 의미에서 ‘컨템포러리 예술로서 춤’은 특정 춤형식이 주류 혹은 지배적 양식으로 존재할 수 없는 예술적 상황과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일 것이다. 다시 말해, 모더니즘이 근현대의 시기를 지칭하는 시간적 의미이면서 동시에 그 시대에 특징적인 예술적 양식을 가리키는 것이었다면, 컨템포러리아트는 현재의 시간을 포함하지만 이 시대의 특정 양식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시간적 개념으로서 현재의 순간에 만들어진 예술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현재의 전반적인 예술적 상황 혹은 스타일을 지칭하는 의미가 있다. 컨템포러리아트의 주요 표지는 ‘극단적이고 총체적인 다양성과 개방성’인데, 그래서 컨템포러리아트는 난감한 측면이 있다. 기존의 어떤 기준으로도 파악할 수 없고 양식적인 용어로도 표현할 수 없으며 지식이나 이론에 의해 컨템포러리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을 거부하니까.
이 같은 맥락에서 ‘예술의 종말’ 주장은, 예술의 역사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새로운 생산 구조 속에서 예술이 생산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양식에 몰두하기보다 다양한 양식을 선택하는 구조다. 따라서 불가능한 양식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작이라기보다 사용이라는 용어가 더 어울릴 법하다. 예술은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는 방향성이 없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어떠한 양식도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에서, 오늘날의 예술 상황을 ‘다원주의(pluralism)’로 지칭한다. 컨템포러리아트는 단 하나의 차원을 따라 분류하기에는 그 의도와 실현방식이 너무나 다원적이다.
우리의 컨템포러리댄스 상황을 생각해보면, 2000년대 초 컨템포러리댄스를 다원주의적 경향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상황이 있었다. 다원주의는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현대 예술계의 상황을 표현하는 용어였지만, 점차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분야처럼 이해되어서 음악, 미술, 연극, 문학, 무용처럼 다원예술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구축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2020년 지금에 와서는 다원주의와 컨템포러리 예술로서 춤이 더 명확해졌고 이해하기 쉽게 되었다. ‘무엇이든 다 춤이 될 수 있다’는 선언 아래 무한한 확장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컨템포러리 예술로서 춤은 무엇보다 극장이라는, 즉 춤을 예술이라고 규정해 주었던 전당이 필요하지 않음으로써 공연의 새로운 환경을 요구하고 또한 변화시켜 왔다. 굳이 ‘장소특정적(site-specific)’이라는 오래된 실천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극장을 벗어나 거리에서도 미술관에서도 공연하며, 한편으로 비전문인/일반인의 춤이 전문 극장 무대에 들어왔을 때 춤은 사실상 극장예술을 벗어나 있었던 셈이다. 컨템포러리댄스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춤이기 때문에, 극장이라는 예술의 전당((서초동 예술의전당이 아니다!)을 벗어나는 일은 기존의 방식을 넘어서는 데 있어 가장 먼저 한 일이기도 하다.
춤이 극장을 벗어나면서 무슨 일이 생겼는가? 더 정확히 말해, 컨템포러리 예술이 확산됨으로써 무슨 변화가 있었는가? 예술춤이 무엇이 춤인지 제시하기를 포기하면서 무엇이든 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장르를 허무는’, ‘경계를 부수는’과 같은 표현은 예술에서 이미 낡은 수식어가 되었다. 대신 미디어아트, 바이오아트와 같은 새로운 기술이 춤의 경계를 넘나들고, ‘융복합’, ‘콜라보’ 같은 상표가 신상품임을 표시했다. 어쩌면 과거에는 소박했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기껏해야 음악, 미술, 문학, 연극과 같은 전통적인 예술장르 안에서 일어난 교류의 일종이었고, 또는 발레, 한국전통춤, 재즈, 민속춤, 힙합, 스포츠, 서커스 등과 같이 춤 내부 장르나 동종처럼 보이는 분야와의 결합 같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컨템포러리 예술은 예술 그 자체를 문제삼아 일상생활과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고급문화-대중문화의 대립 같은 고전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춤과 비예술춤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이다.
또한 컨템포러리 아트는 새로움이 아니라 익숙함을 추앙한다. 그래서 상업적 요소뿐만 아니라 일상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그것도 교묘하게가 아니라 뻔뻔하게 드러내야 한다. 극장예술로서 또 무대춤을 고집하는 것은 촌스럽고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다. 가장 자연스럽게 내 집 거실에서 혹은 카페에서 혹은 야외 길거리에서 춤을 추는 것이 세련되고 컨템포러리하다고 말할 것이다. 융복합이니 탈장르니 하는 수식어는 춤이 아닌 것을 춤처럼 보이게 하는 포장지가 아닌 것이다. 춤을 추지 않아도 춤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무 움직임이나 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체 없는 움직임은 괴기스러운 것이 아니라 컨템포러리다. 아마추어 춤의 확장은 다원주의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춤은 그 누구에게나 평등하므로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갖는 것일 뿐이다. ‘쌍방향 소통’이라는 표어가 가리키는 바는, 예술이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수용자가 항상 수용자에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의 춤이 모두 예술작품이 아니듯 비전문가들의 춤이 예술작품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러한 예는 무수히 열거될 수 있다. 일상의 춤이 새로운 춤이며, 따라서 그것은 예술춤의 영역 밖에서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매일 증명한다. 다원주의의 대세 속에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선언만이 유효한 지금, ‘어디까지 가나 보자’라는 냉소적 시각이나 ‘이미 춤예술은 끝났다’는 체념적 시각이 미래를 전망하는가?
컨템포러리댄스는 모던댄스나 포스트모던댄스와 같은 하나의 양식이 아니며, 무엇이 춤이라는 특성 그리고 춤은 어떠해야 한다는 규정이나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의미였지만, 그것은 곧 그러면 절대 안 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무엇이 춤인지 규정해서는 안 된다, 춤은 예술로서 어떠한 방향도 제시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이것은 새로운 규범인가? 단토는 컨템포러리아트가 예술의 역사에서 배제되어 왔던 것에 그 권리를 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무엇이 예술이라고 규정하며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긋고, 그 틀에 들어맞지 않은 수많은 것들을 배제해 온 작업이 예술의 역사라면, 지금은 그렇게 예술사 밖으로 밀려난 것들이 예술의 지위를 얻게 될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예술의 지위를 얻는다면 그 어떤 것도 예술이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역설적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서 사정은 한층 복잡해졌다. 어쨌거나 2000년 이후 그 어떤 것도 춤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코로나19 이후 혹은 그냥 다가올 시간 – 빨라진 인공지능 시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춤은 달라질 것인가? 코로나19라는 위기는 이 같은 춤의 현재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코로나19 시대 초중고뿐만 아니라 대학교까지 나라 전체의 교육현장이 전면 ‘온라인 수업’이라는 한번도 가지 못한 길을 가게 되었다. 여기저기 교육의 현실에 대한 우려와 한탄과 실망과 때론 기대까지 갖가지 반응과 조언이 쏟아졌다. 예술현장과 교육현장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교단의 선생이 마치 무대 위 연기자처럼 카메라 앞에 선다. 카메라를 향해 그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설마 학생이 아니라 카메라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본래 교실은 그런 곳이었을까? 학생들은 강의가 하나의 쇼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교육이란 무엇이며 학습이란 무엇인가? 배움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교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무엇이 소통인가? 등등 교육현장의 수많은 질문이 예술현장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럼에도 질문은 곧 공허해질 것이다. 비대면 상황에 대한 하나의 대처법, 소통의 방식으로 온라인 매체의 활용은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지금보다 더 활성화될 수 있다. 그것의 편리함과 유용함이 입증된 만큼 오프라인의 삶을 보충하여 가능한 삶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교육의 목적에 맞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온라인 공연의 활성화가 춤의 미래, 예술의 가능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온라인 공연이 발전할수록 춤은 자신의 경쟁상대가 방탄소년단도 블랙핑크도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것이며, 그럴수록 극장 무대는 더 필요할지 모른다.
코로나19 이후의 춤은 영화와 같은 영상매체화가 아니더라도 극장예술로서 무대를 완전히 벗어난 춤일까? 가령 ‘성스러운 미’와 같은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춤을 위해 만들어진 전당 말이다. 그렇게 극장을 벗어난 춤은 도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20세기 초 현대무용의 태동기에 무용이론가 루돌프 폰 라반(Rudolf von Laban, 1879~1958)은 ‘모든 움직임이 춤이다’와 같은 현대무용의 이상을 세웠다. 말 그대로 그것이 춤예술의 이념이자 이상이다. 그건 그저 ‘나도 춤을 추고 싶다’, ‘나도 춤을 출줄 안다’와 같은 욕망만으로 도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누구든 춤을 출 수 있다는 선언만으로 도달되는 것도 아니다. 또한 그것은 그저 극장이냐 미술관이냐 같은 장소 특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몸의 움직임’ 예술에서, ‘몸=물질, 움직임=운동’과 같은 도식으로 인해 춤은 물질의 운동에 불과하며, 따라서 모든 움직임은 춤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라반의 말은 인류 해방, 자유로운 인간의 실현이라는 예술의 목적에서 이해될 만한 것이다(한편으로 발레의 움직임은 신체 구속과 인간 억압의 문화적 표식으로 이해되었으니까). 코로나19 이후 춤은 진정한 춤의 이상이 실현된 모습으로 등장할까?
그 하나의 대답은 과학기술이 제공할 것이다. 코로나19가 미래를 앞당겼다고 한다면, 그것의 의미는 기술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철학자와 과학자와 예술가는 ‘기술의 발달’에 주목했다. 인류해방의 열쇠는 테크놀로지의 수준에 달려있으리라 예측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기계와 인공지능에 대립해서 성립하는 물음이 되었다. 제작의 측면에서 예술의 모든 관심은 인공지능의 창작에 집중되어 있다. 이미 많은 안무가 데이터화 되고, 인공지능이 딥러닝을 통해 기존의 안무를 모두 학습한 후 새로운 안무를 제시한다는 예견은 실현가능한 시나리오로 판명되었다. 지금 이미 미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인공지능의 안무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춤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코로나19 이후의 춤이다. 만약 컨템포러리댄스 이후의 춤을 묻는다면 그 답은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내놓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춤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다시 진지하게 물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서 그만 ‘이제 춤은 AI에게 맡겨두자고요, 우리는 해방이에요’ 이렇게 끝나면 좋겠지만, 인간의 역사는 인공지능의 역사보다도 더 길어서, 예술의 오랜 역사는 벌써 그 대답도 알고 있는 듯하다. 비록 예술의 뿌리는 기술이지만 예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근대 미학이 분명히 증명하였기에, 인공지능의 과제는 실로 막중하다. 인공지능의 춤은 기계기술을 뛰어넘어 진정으로 춤예술이 실현하고자 한 목표로 우리를 안내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시화되기 전까지 여전히 춤은 예술가의 몫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