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살롱

창경원에서 서울대공원으로 이사 온 동물 중 가장 스타급 동물 중의 하나가 수컷 고릴라 ‘고리롱’이었다. 고리롱이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담배 피우는 고릴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특권인 양 길거리나 공원 아무 데서나 예사로 담배를 피우던 시절 창경원에 구경 온 누군가 창살 사이로 장난스레 담배를 건네고 피워보라는 시늉을 했을 거다. 그것이 습관이 됐고, 담배 피우는 사람이 지나가면 킁킁 소리를 내면서 창살 앞으로 다가와 큰 손을 내밀어 담배를 구걸하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고리롱이 창경원 시대를 마감하고 서울대공원으로 새로 입주하게 될 시설은 이전의 시설과 비교하면 근사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실내전시장은 철창 대신 렉산(lexan)이라는 폴리카보네이트로 유리처럼 투명한 재질이라서 관람객들이 안전하게 가까이서 동물을 볼 수 있었다. 햇볕이 잘 드는 외부 방사장은 오목하게 둘러싸는 곡면 벽체가 마치 야외 공연장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관람로와 방사장의 사이에 깊게 파인 해자를 두어 관람에 방해되지 않고 안전하게 동물을 볼 수 있게 설계되었다. 해자의 폭이 꽤 넓어서 이전의 창경원에서처럼 담배 피우는 관람객이 담배를 줄 수 없어서 자연히 ‘금연’을 하게 됐다.
사육관리 조건도 이전보다는 훨씬 좋아졌으니 2세를 보기 위한 노력도 시도해봤다. 비뇨기과 의사를 통해 비아그라를 처방받아 먹여보고 영양식도 주었으나 체중만 약간 불어났을 뿐 교미 행동은 관찰되지 않았다. 오히려 암컷 고릴라인 ‘고리나’의 앙탈만 늘어났을 뿐 점차 고리롱의 활동상태가 나빠져만 갔다. 결국 2세 갖기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살이 계속 빠져 겉모습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결국에는 따뜻하게 바닥 난방이 되는 내실의 구석에 쓰러져 버렸다. 자극을 줘도 귀찮은 듯 일어나지 않고 웅크린 채 누워만 있기를 며칠째 보내고 난 2월의 겨울 어느 날 추정 나이 48세로 생을 마감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한국에 처음 올 때도 1월의 추운 겨울이었는데 결국 겨울에 숨을 거두게 되어 마음이 더 아프다.
사체는 학술연구 및 표본제작을 위해 필요할 경우 냉동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리롱도 그럴 계획이라는 내용이 보도자료에 포함되는 바람에 동물보호단체 및 일부 시민들로부터 거센 항의와 비난이 쏟아졌다. 어쨌든 고리롱의 부검에는 비아그라를 처방해줬던 비뇨기과 의사도 참여했다.
고환에서 정액이 채취된다면 동결 보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무정자증으로 어떻게든 2세를 보기 위한 마지막 희망마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결정적인 사인은 무엇이었을까? 충격을 받지 마시기를 바란다. 폐암이 온몸으로 전이되어 다른 장기로 퍼져있었다. 창경원 시절의 끽연이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체중이 그렇게 줄어 피골이 상접할 정도였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동물원에서는 매년 11월 1일에 남미관 위쪽의 동물위령비 앞에서 동물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동물위령비의 뒷면에 이렇게 새겨져 있다. “오는 세상은 천국에서 누려다오, 가련한 넋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