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살롱

자린이(자전거+어린이)들이 흔히 가지는 궁금함이 있다. 보기엔 똑같은 자전거가 왜 그리 종류도 많아 싼 놈은 커피 몇 잔 값이면 사는데, 비싼 놈은 새로 만든 첨단 오토바이도 고개를 숙여야 하는 비싼 값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냐다.
생김새로만 보면 자전거는 다 똑같다. 바퀴 두 개, 핸들 하나, 핸들 오른쪽 왼쪽으로 앞뒤 브레이크 레버와 앞뒤 변속기, 자전거의 뼈대를 이루는 프레임이 삼각형 두 개 모양으로 밑변을 맞대고 있고, 여기에 페달과 체인, 페달에 붙은 크랭크 기어와 뒷바퀴에 붙은 기어 뭉치, 그리고 엉덩이를 얹을 안장. 더는 가져다 붙일 것도 없고 있어 봐야 귀찮기만 하지 잔거질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다. 이런 달라지려 해도 달라질 게 없는 잔거가 그렇게 천차만별인 까닭을 누가 쉬이 받아들일 수 있겠나. 한 대에 몇 만 원 하는 생활 자전거도 많이 팔리지만 한 짝에 몇 백만 원씩 한다는데도 없어서 못 파는 바퀴가 있다. 자린이들은 ‘가진 이들의 돈 자랑’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자른이(자전거+어른) 세계에 발을 살짝이라도 들이게 되면 이 몇 백만 원 하는 바퀴가 낯설지 않다.
잔거란 제 몸을 써서 ‘좀 더 빨리, 좀 더 멀리까지, 좀 더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에서 태어난 거다. 그 인간의 욕망에 맞춰 태어났지만, 그놈의 ‘좀 더 빨리, 좀 더 멀리, 좀 더 편하게’는 브레이크 풀린 폭주 기관차가 되는 게 세상살이다. 생각이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생각에 꼬리를 물고 생각나는 생각이 생각이므로 생각을 생각하지 않는 생각이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과 같이 마냥 가속도가 붙어 ‘좀 더, 좀 더’를 외치며 여기까지 온 거다.
제 몸으로 ‘좀 더’를 쫓다 보니 좀 더 가벼우면서도 단단 튼튼한 잔거를 찾게 되었고, 가볍게 만드는 기술과 소재, 바람의 저항을 덜어주는 디자인이 값을 마구 올리게 된 거다. 슬로베니아의 제작사 버크(Berk)는 지난 1월에 3.9kg 나가는 잔거를 내놓았는데 프레임 무게만으로는 631g이란다. 한발 더 나아가 곧 500g도 안 나가는 프레임을 내놓겠다 밝혔다. 쇠고기 한 근이 채 안 되는 탄소섬유로 몸무게를 85kg까지 버틴다는 이야기다. 이런 첨단 자전거의 개발은 보통 회사 자랑을 위한 ‘실험실용’일 경우가 많은데 버크사의 이 초경량 잔거는 놀라운 기술이기도 하거니와 실생활에 타고 다니기에도 문제가 없는 잔거라니 내로라하는 자른이인 나로서도 궁금하다.
이 ‘가벼운 잔거’ 달리기에 제동을 건 게 세계자전거연맹(UCI)이다. UCI는 벌써 스무 해 앞선 2000년, 선수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도로 경기서 탈 수 있는 잔거 무게의 하한을 6.8kg으로 정했다. 요즘 이 무게 규정에 논란이 많다, 대부분의 잔거를 철과 알루미늄으로 만들던 때의 규정이니 카본과 티타늄이 더는 첨단 소재가 아닌 요즘 세상에 맞게 하한을 6kg으로 내려야 한다는 거다. 전국의 잔거길을 달리는 웬만한 자른이들이 타는 잔거가 10kg이 안 되는 세상이니 더 가벼운 잔거로 UCI 규정을 바꾸자는 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 10kg이 채 되지 않는 자전거를 일이백만 원에 살만큼 흔해졌다. UCI가 6kg으로 하한을 내릴 때도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