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살롱

창극 전성시대는 1980년대! 연출은 허규
(許圭, 1934~2000)였고, 주연은 안숙선. 허규는 판소리 다섯 바탕을 ‘창극’으로 정립해갔다. 연극적 드라마로서도 손색없이 창극을 압축시켰다. 판소리를 존중하면서도, 무대예술로서의 재미를 잘 살려냈다. 창극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무대예술로 성장했을까? 조선성악연구회의 전신인 ‘조선음악협회’의 활동을 근대적 창극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명실상부하다. 1928년 2월10일, ‘조선음악의 부활운동’을 목표로 설립된 ‘조선음악협회’는 명칭은 바뀌었으나 주도적인 구성원은 같았다. 조선성악연구회에서는 김용승(金容承)이 여러 작품을 연출했다. 해방공간에는 국극사의 「만리장성」(1950년 5월12~16일)을 연출한 박춘명(朴春明)이 있다. 국립창극단의 창단(1962년)과 함께 김연수(金演洙, 1907~ 1974)가 중심이 되었고, 이후 창극연출에선 이진순(李眞淳, 1916~1984)과 이원경(李源庚, 1916~2010)을 빼놓을 수 없다.
앞의 창극연출가와 허규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허규가 국립창극단을 만난 건, 「심청가」(1977년 3월24~27일)가 처음, 「흥보가」(1998년 11월10~15일)가 마지막 연출작이다. 창극을 언제나 ‘민족극’과 ‘전통극’의 범주로 접근했다는 점이 허규의 특장(特長)이다. 다른 연출과 같이 ‘연극’의 범주로 생각하지 않았고, 아시아의 전통극과 완전하게 변별되는 창극을 만들고자 했던 점이다.
1970년대 말,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안숙선에 주어진 역할은, 마을사람들, 광대패의 한 사람, 향단이었다. 1970년대 중반에는 김동애, 김성녀, 김영자, 강정숙, 전정민 등이 창극의 여주인공으로 역할을 했던 시기였다.
1980년대 초, 허규는 국립창극단 배우들과 함께 낙원동 아구찜을 먹으러 갔다. 그 자리에서 허규는 창극단 여배우를 연출가의 시각으로 꽃에 비유했다. 김동애(金洞愛, 1948 ~1985)는 난초, 전정민은 모란에 비유했다. 김성녀는 장미라 했고, 마지막으로 안숙선을 진달래라고 했다. 그 당시의 안숙선은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곱씹을수록 앞의 세 배우는 물론이요, 안숙선을 진달래에 비유한 것이 아주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진달래는 한반도의 여기저기에 피어서 봄을 알린다. 참 흔한 꽃이지만, 참 친근하고 편한 꽃이다. 허규의 연출과 만난 안숙선은, 여주인공으로 많은 역할을 했지만, 돌이켜보니 그 작품 속에서 안숙선은 여주의 화려함이라기보다는, 친근한 조선의 여자로 존재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국립창극단의 안숙선 예술감독은 허규의 마지막 연출작을 부탁했다. 그 때 허규는 「흥보전」을 연출했다. 그리고 「흥보전」에 등장하는 관운장의 역할을 광대패의 할아버지로 바꿨다. 안숙선은 허규에 관한 여러 기억 중에서, 이 얘기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꼭 후세에 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문화재재단이 주최한 「허규傳」(11월17일 한국문화의집)이 열린다. 「물도리동」과 「다시래기」의 대본은 요즘 오히려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민족극의 선구자’ 허규를 다시 돌아보는 건, 앞으로 우리나라 연극과 창극의 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을 결정한다는 면에서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