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살롱

서울 도심이 자본의 힘으로 재개발되면서 예전에 음식점들이 그 자리에서 대거 사라지고 신축된 대형 주상복합 건물에 입점하거나 다른 곳으로 쫓기듯 이전해 간다. 종로의 대표적인 먹거리 골목이었던 피맛길이 사라지고, 정겨운 골목 가게가 남아 있는 곳은 을지로와 퇴계로 일부 지역이다. 이곳에는 ‘오래가게’
(일본식 한자어로 노포)가 아직 제법 잘 살아 있다. 순희상회가 있는 곳은 개편된 행정 지번으로는 중구 퇴계로지만, 예전 동네 이름으로는 이 일대의 대표 격인 필동이다. 남산 아래인 필동 일대는 조선 시대에 퇴락한 양반들이 거주해서 남산골샌님이나 딸깍발이라는 말의 유래를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는 동국대 학생들이 저렴하게 이용하는 가게부터 오랜 전통과 명성을 지닌 음식점까지 신구 가게들이 골목마다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필동 골목을 어렵사리 찾아가면, 3년 전에 기존 식당을 인수하여 새 단장을 해서 문을 연 ‘순희상회’라는 자그마한 횟집이 있다. 횟집치곤 좀 독특한 상호를 가지고 있는데, 대표 이름 ‘순희’에 횟집 명칭으로 ‘상회’를 붙인 거란다. 상회는 요즘 유행하는 아재개그형 언어유희로 상회의 회가 원래 상회의 회(會)가 아니라 생선회의 회(膾)를 뜻한다고 한다. 아재개그를 들을 때처럼 별반 큰 감흥 없이 처음 들어간 집이지만, 기본 상차림 음식부터 맛깔이 났다. 주 차림인 회는 제철 생선을 중심으로 모둠을 내어주는데, 먼저 두툼하게 썬 것에 구미가 동한다. 정식 코스의 모둠회(모듬회로 잘못 쓰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임)로 다소 아쉬우면, 철에 맞는 병어나 갑오징어, 참가자미세꼬시 등 고급 횟집에 못지않은 생선회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2018년 11월호 음식살롱 ‘단비’에서 언급했듯이, 생선회 하면 ‘사시미’를 연상해서 우리는 원래 먹지 않다가 일제 강점기에 왜식문화의 일환으로 생긴 식습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생선을 날 것으로 먹었는지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고려 시대의 문인들의 글에 농어 등을 회로 먹은 기록이 있고, 조선 시대의 문헌에는 ‘어회(魚膾)’와 ‘육회(肉膾)’로 구분하여 생선회의 종류를 나열해 놓았다. 우리 조상의 탁월한 입맛이 어찌 생선회의 맛을 모르고 그냥 지나쳤겠는가.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 횟집 코스 중 마지막으로 내어놓는 음식이 생선탕인데, 거의 모든 횟집에서 특별히 따로 지리(일본말의 잔재로 싱건탕으로 순화했으나 잘 쓰이지 않음)를 청하지 않으면 매운탕을 준다. 그런데 이 집은 맑은 탕을 내어주기에 매운탕을 먹고 싶으면 반드시 따로 얘길 해야 한다. 알다시피 지리는 매운탕에 비해 조리에 자신이 없으면 쉬 하지 못한다. 이 하나만 봐도 ‘난 내 음식에 자신 있어’ 라는 주방장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하니 가격대에 따른 5가지의 정식 코스 외에 생선초밥이나 회덮밥, 물회, 생선조림, 대구탕 등 단품 식사류 또한 입맛을 당기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더욱이 가격도 착하니 골목 누벼서라도 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다. 알다시피 필동 일대는 남산과 한양도성, 남산골 한옥마을이 지근거리여서 산책과 눈호강을 할 수 있는 덤도 있다. 충무로역 1번 출구로 나와 잘 찾아가야 한다. 문의 02-2268-8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