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살롱

“연습생으로 최고의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 꿈이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남극에서 한국까지 헤엄쳐 왔다고 한다….” 최근에 화제가 된 EBS 자이언트 펭귄 캐릭터 ‘펭수’다. 2020년을 ‘펭수 모셔가기의 해’로 만든 펭수가 급기야 올 10월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호출되기에 이르렀다.
국감의 펭수 호출은 즉시 논란이 됐다. 호출한 국회의원이 캐릭터 산업 종사자의 공정한 처우와 수익 배분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펭수 대리인은 “자칫 국정감사 출석으로 인해 펭수를 펭수답게 하는 세계관과 캐릭터의 신비감에 손상을 줄 것을 우려한다”며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펭수는 「자이언트 펭 TV」라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인 캐릭터 탈인형이다. 기존 탈인형은 인형에 성우가 목소리를 입히는 방식이었다. 일단 탈인형 속에 사람이 들어가면 무겁고, 앞도 잘 보이지 않고,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펭수의 경우 직접 사람이 탈인형 안에서 연기하고 목소리까지 낸다. 고난도의 요들송을 자유자재로 부르고, “맛있는 건 참치 / 참치는 비싸 / 비싸면 못 사 먹어”라며 끝말잇기를 즐기는 개성 만점의 캐릭터 탈인형 속 연기자가 누구인지는 지금도 베일에 싸여있다. ‘펭수 캐릭터=탈인형 속 연기자’인 동시에, 캐릭터의 신비감이 펭수의 생명이 됐다. 탈인형 속 연기자의 목소리 자체도 펭수의 고유한 정체성인 셈이다.
해외에서는 캐릭터 보호가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철저하다. 15년 전쯤 일본 도쿄에서 유명 특촬물 「울트라맨 뮤지컬」 연기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1966년 TV에서 방송된 「울트라맨」은 일본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메가 히트작이다. 괴수들로부터 지구를 구하기 위해 먼 행성에서 날아오는 「울트라맨 뮤지컬」도 큰 인기였다.
무대서 격투 액션을 소화한 울트라맨 배우는 인터뷰 중 비밀을 하나 털어놓았다. 그는 “지금 속옷을 입고 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빨간 수트가 워낙 얇고 타이트했다. 속옷을 입으면, 수트 위로 속옷 라인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속옷 라인이 드러나는 순간, 우주 히어로 울트라맨에 대한 어린이들의 환상이 깨지게 된다. 그들은 울트라맨 캐릭터의 신비감을 지키기 위한 의상과 메이크업의 특별한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미국의 월트디즈니 사는 또한 어떤가. 오래전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디즈니 캐릭터 아이스쇼」가 열렸다. 그때도 공연 후 팬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미키마우스, 도널드 덕 등을 만났다. 캐릭터 탈인형들은 어린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기념사진을 찍으면서도 절대 말하지 않았다. 옆에서 의전하는 사람이 별도로 따라다니며 캐릭터 탈인형을 지켜주었다. “말해봐” 하고 끝까지 요구하며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디즈니사도 캐릭터 탈인형 연기자의 규정을 엄격히 지키고 있다.
처우 개선이 목적이라지만 탈인형 연기자가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펭수 캐릭터는 죽고 만다. 어렵게 키워낸 캐릭터를 죽이기는 쉬운 일이다. 이런 해프닝은 한 번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