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스크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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合同과 自負와 親睦- 두 協會를 하나로 뭉쳐보자
- 文化各界에 보내는 새해의 提言(제언) / 舞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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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협회를 하나로●
사랑하는 韓國舞踊藝術人協會員 그리고 韓國舞踊家協會員諸位! 벌써 우리가 親睦(친목)을 잃은 것이 四年째의 해를 맞이하게됩니다. 생각하면 얼마나 虛妄(허망)하고 부질없는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겨우 二O名밖에 되지않은 舞踊人들이 設或(설혹) 理由없는 分爭(분쟁)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理念의 問題가 아니고 感情的인 對立이 었었는데 이렇게 오랜歲月을 外面하고 살며 따로 따로의 協議體(협의체)로서 固執(고집)한다는일은 小人的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적어도 永遠(영원)한 藝術을 擔當(담당)하는분들의 雅量(아량)같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近者 두 協會가 文總傘下(문총산하)에 같이있게 되면서 이 생각은 더큽니다.
아직도 노여움이 남아있다면 이일은 서로 무릅을 맞대고앉아 時間을 두고 論議할 일이지 이대로 無交涉狀態(무교섭상태)로서는 돼질일이 아닌 것은 確實합니다.
于先 우리는 舞踊의 보다높은 位置(위치)를 위하여 意識(의식)을 하나로써 統一시켜야 하겠습니다. 보다크고 重要한 우리의 利益(이익)들이 하잘것없는 對立같은 것으로 말미암아 그대로잃게되고만다면 結局(결국) 舞踊人은 賢明(현명)하지못한 것으로됩니다. 59年을 期하여 우리는 보다 큰 利益을 위하여 두 개의 會를 하나로만드는 方向으로 努力(노력)하기 勸(권)하는 바입니다. 그리하여 全體 舞踊人이보다 오래 살수 있는 일을 構想(구상)하며 對外的으로 「하나의統一된 意見」으로서 이제 닥쳐올 어려운 일들을 打開(타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藝術人의 自負를
그 다음은 舞踊人은 藝術人다운 自負(자부)를 갖고 周圍(주위)의 期待(기대)에 失望(실망)시켜주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앞에서도 말한것처럼 우리는 스스로 높은 位置를 占하며 舞踊이 보다 값있는 藝術로서 認識(인식)돼지기 위하여서입니다. 事實 初期우리춤의 位置(위치)는 높았고 그 出發은 華麗(화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舞踊이 받고있는 待遇(대
우)란 도대체 어떻습니까.
저는 종종 왜이렇게되었을까하고 잠시 생각하여 보는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아마 우리의 決意(결의)가 社會(사회)에 適切(적절)히 反映(반영)되지 못햇던 것에 起因(기인)되겠습니다만 그 먼저 우리 個個人이 벌써 社會에서 認識돼지는 人格의 所有者(소유자)가 아닌(?)것이 더 큰 原因(원인)이 아닐까 생각도 돼지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問題가 먼저 先行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야 우리가 바라는 國家의 援助(원조)며 이밖의 우리의 同志(동지)를 모으는 일들이 힘들것이 아닐까 憂慮(우려)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보는 일로서 生活을 빙자하여 非藝術人的인 職業(직업)을 擇(택)한다든지 公演을 빙자하여 自己의 純粹性(순수성)을 잃는다는 일은 얼마나 슬픈일인지 모르겠습니다. 勿論 많은 理由와 事情(사정)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이러한 個人의 影響(영향)이 같은 命題(명제)밑에 從事(종사)하는 同志들에게 얼마나 큰 體面損傷(체면손상)을 줄것이야 ******* 더구나 藝術人들은 곧 敎育者(교육자)로서의 位置를 더불어가지는 宿命(숙명)에 놓여있다는 事實과 結付(결부)시킬 때 우리들의 沒知覺(몰지각)이 곧 社會의 糾彈(규탄)을 받게되는 理由도 明白하여집니다. 그보다도 藝術을 前提(전제)로서 訓練(훈련)한 素材
(소재)를 그렇지않은 곳에 그렇듯이 使用함으로써 對象(대상)으로하여금 절망과 昏亂(혼란)을 일으키게 하는 일은 어떻든 나는 罪惡(죄악)이라고 생각함에서입니다. 願(원)컨대 論理的(논리적)인 根據(근거)를 따진다든지 어떤 倫理問題(윤리문제)로서 말한다기보다 오히려 처음 出發하던 藝術家로서의 矜持(긍지)와 그런 良識(양식)에서 純粹(순수)와 不純(불순)의 差異(차이)를 決定(결정)하여주었으면 할 따름입니다.
評論家와의 親睦
舞踊評論家란 或 舞踊家들에게 있어서는 不必要한 存在일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評者들이 舞踊家의 勞苦(노고)를 도대체 考慮(고려)치도 않고 그대로 「偏見(편견)」과 「無識(무식)」과 「獨善(독선)」을 휘두르니까 그리고 無條件(무조건) 나쁜點 만을 들어 말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批評家(비평가)처럼 舞踊을 사랑하고 眞摯(진지)한 關心(관심)으로써 待하는 觀客(관객)은 또 드뭅니다. 말하자면 評論家는 ***** 不平만을 「말하는 觀客」이렇게 評하는 것이 더 適切(적절)할는지 모릅니다. 여하튼이런 「말만하는 觀客」은 舞踊家들이 춤을추는限 存在하게 됩니다.
즉 批評家와 舞踊家는 이러한 永遠(영원)한 關係(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顧客(고객)」과「主人」으로서의 關係로 그러면서 舞踊家들은 批評家를 마치 毒素的(독소적)인 存在로서 처음부터 敵對視(적대시)합니다. 허기에 批評家들 때문에 항상 不利(불리)하게된다고 徹底(철저)히 믿고있는 분에게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그보다도 되도록 顧客의 注文(주문)도 들을줄 아는 主人이 되어주기 바라는 마음도 없지않습니다. 觀客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들고 나와서 後에 그것의 註釋(주석)을 붙이고 그 意味(의미)가 어떻느니… 하고 辨明(변명)한다고 일이 解決(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要는 서로가 理解(이해)있고 雅量(아량)있게 그리고 謙遜(겸손)한 態度(태도)로써 이해를 맞이할 것을 眞心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좀 큰눈으로 앞일을 바라보며 서로의 잘못을 감싸주는 마음으로 지내주시기 바랍니다.
세계일보 1959년(4292年) 1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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