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후폭풍
멀티플렉스 CGV가 영화 관람료를 인상했다. 할인혜택도 줄어들었고, 주차요금지원 등등도 모두 사라졌다. 코로나사태 이후 비상경영체제를 도입했지만 역부족. 더 이상 요금인상 말고는 다른 묘책이 없다는 것. 어쩔수 없는 수순이라 할 수 있겠다. 관객이 없으니 먼저 직영점 영업 중단, 희망퇴직, 휴직 등등 자구책 시행, 그다음엔 요금인상과 영업중단. 뉴욕의 공연장들도 감봉, 감원이 이어진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것도 당연한 것. 일본에서는 신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경질되었고, 10월부터 『해적』을 공연하고 있던 일본의 K발레단은 코로나로 상연이 중단된 이후 주역 무용수들이 은퇴했다. 영화관에서는 옛날 영화 재개봉 러시, 공연장에는 고정 레파토리 새 단장 러시. 새로운 작품 나오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은 오페라 「라 보엠」을 새 단장 해서 12월에 올리고, 국립발레단은 『해적』을 새 단장해서 11월에 올렸다. 코로나가 겨울을 통과하며 긴꼬리를 휘두른다. 후폭풍이다.

기초공사
발레 전막공연에서 음악은 기초공사다. 바닥과 뼈대를 세우는 일. 어떤 멋진 인테리어나 그림도 이 틀안에서 벗어나 구현될 수 없다. 짜여진 뼈대 위에서만 가능한 것. 고로 발레작품에서 음악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발레가 하나의 독자적 예술장르로 부상한 것 역시, 차이코프스키,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 하차투리안 등 단순한 반주 음악이 아닌 발레없이도 연주와 감상이 가능한 뛰어난 음악을 만들어낸 특급 작곡가를 영입한 이후에 가능 했던 일. 차이코프스키 음악에 매혹되고 「백조의 호수」를 음악으로 먼저 사랑했던 나는 정작 처음으로 발레 『백조의 호수』를 직관했을 때 어리둥절했던 것이다. 연주는 수준급이 아니었고, 춤이 음악의 매력을 반감시키고 있다는 생각까지 했던 것이다. 무대 위의 한정된 비주얼이 미묘한 청각 위에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환상을 넘어 설 수 있을까.

‘만찢남’
국립발레단 『해적』의 재안무는 송정빈, 음악의 작·편곡자는 김인규. 1막이 시작되기 전 짧은 전주는 작품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가볍고 날렵하고 즐거운 분위기의 음악이다. 약 1분의 짧은 전주의 분위기는 작품 전체의 상징 같은 것. 이야기와 춤 역시 날렵하고 가볍게 질주한다. 의상은 반짝반짝한다. 콘라드 역의 박종석은 ‘만찢남’ 분위기. 너무 미끈하게 잘생겨서 해적이라기보다는 바람둥이 왕자같다. 인상적인 선율도 들리지 않고 속도조절 힘조절도 없이, 작품은 골짜기없는 산등성이를 달렸다. 유치찬란하고 붕 떠있는 만화같은 재미가 만재한, 남성 무용수의 필살기가 아낌없이 투척된 화려한 작품. 송정빈의 『해적』은 작품 분위기, 캐릭터의 설정, 음악, 질감 등 작품의 성격 모두에서 강효형의 『호이랑』과 대척점에 서 있다. 『해적』의 해적은 왕자 같고, 『호이랑』의 장수들은 해적 같았다. 비슷하지 않다는 건 좋은 것이다. 오히려 좀 더 자기 분위기에 매몰된 모습을 보고싶다. 두려워하지 말고 더 강하게 자기 색깔을 보여도 좋을 것이다.

『호두까기 인형』
12월, 발레단의 돈방석 『호두까기 인형』이 과연 상연될 수 있을까. 설사 공연이 가능하다해도 지방 공연 취소분 등을 고려하면 잘해봐야 예년의 반의반도 못되는 매출을 올릴게 분명하다. 영화관체인점 같은 자구책이 필요할까. 일본신국립발레단 역시 연말의 『호두까기 인형』이 큰 이벤트인데 아직 상연취소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 코로나 감염자가 늘어나도 각종 스포츠 관람 등이 허용 되고 있다. 일본신국립발레단은 『호두까기 인형』의 한 회분을 온라인 송출하고 라이브온라인 시청권을 판매하고 있다. 일반 공연 관람과 섞여서 촬영하는 게 아닌, 별도의 한 회를 카메라 셋팅해 제작 송출한다. 라이브온라인 시청권은 3000엔.

‘사랑’과 ‘자유’
넷플릭스에서 미드 「검은 해적(원제 Black Sails)」을 ‘정주행’했다. 시즌4에 총 38화. 10권짜리 대하소설 본 느낌이다. 해적은 해상에서 상선을 약탈하는 게 기본이다. 잔인한 폭력은 필수 장착. 원시적인 ’약탈경제‘의 구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들은 살던 곳에서의 잔혹한 노예노동과 세금, 그리고 갈취에서 탈출해 나온 자들이며 이들이 거부하는 것 역시 그러한 억압.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드라마 속 해적선 선장들은 자신들의 ‘영업’이 영국 본토에 과대포장 선전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영국의 통치자들은 우리가 필요해. 우리를 미친 살인 괴물로 만들어 놓았지. 우리를 핑계로 각 지역 총독들은 보호비를 갈취하고, 선주들은 운송료를 올리고, 보험료를 올리고, 본토 정부는 시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세금을 더 거두고 해군을 만들어. 이제 우리의 명성은 점점 더 올라 갈 거야” 해적들은 좋은 핑계거리가 된 셈. 식민지에서 보내는 금괴가 없어지는 것이 몽땅 해적 소행이었을까. 총독이 자기 주머니에 넣고 털렸다고 하면 그뿐. 해적나라가 실제 세워졌던 바하마제도는 지금도 역시 이름 높은 조세피난처이고 비자금들의 세탁공장이다. 그렇다면 발레 『호이랑』의 호이랑이 원했던 성별과 신분을 뛰어넘는 자유과 사랑, 발레 『해적』의 해적들이 원했던 사랑과 자유, 드라마 「검은 해적」에서 해적들이 원하던 자유는 쟁취 되었을까. 하지만 눈만 뜨면 ‘의리’를 외치는 조폭세계에 ‘의리’없듯, 티비과 무대에서 저렇게 ‘자유, 사랑’을 외치는 것 보니, 우리에게 지금 주어진 자유와 사랑은 우리의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치는게 분명하다. 그러니 내년에도 계속 더 외쳐야 한다. ‘사랑’과 ‘자유’를 위해서. 예술가들은 힘든 시절일수록 더 열심히 외쳐주길 바란다. 그것은 당신들의 소명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 손아귀에 쥔 작은 풀잎같이 연약한 사랑과 자유가 녹아 없어질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