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춤산책

그 사람은 수십 년간 중소규모 회사의 월급쟁이로 받은 월급을 모아 부모님께 맡기고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일개의 소시민이다. 그의 부모 역시 자식에게 크게 물려줄 것도 받아야 하는 것도 없는 보통의 서민이다. 그러다 그들은 자식이 맡긴 월급통장을 좀 더 불려 더 큰 돈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모두 주식에 넣었는데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주식으로 돈 번 사람들이 있다더라’는 말만 듣고 감으로만 투자했다가 몽땅 날리고 살아 온 집까지 정리해야 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나날이 오르는 물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월급만으로 경제적 타격을 만회하기 어려운 것이다. 어른 한 몸만이면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었으나 부양할 부모가 계신 마당에 일개의 월급쟁이가 경제적 타격을 복구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인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만회하기만 해도 감사할 일이었다.
그러던 중 그 사람은 부동산 투자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어쨌든 ‘한국은 부동산이 불패’라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매체를 통해 부동산에 관한 정보를 배워나가던 중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이 분야에 유명하다는 전문가가 개설한 수업까지 수강하며 주중 낮에는 직장, 밤에는 산더미 같은 과제, 주말에는 수강을 하며 쉬지 않고 공부에 매진했다. 타고난 안목도 있어서 큰 실패를 겪지는 않았다.
이렇게 근 몇 년 동안 비싼 수강료가 아깝지 않게 쉬는 날과 잠자는 시간을 희생해가며 자신보다 훨씬 체력이 좋은 젊디젊은 수강생들 못지않은 열정을 불태우던 중 한 가지 회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일개미로 대표되는 소시민들이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해서 돈을 모으는 일은 더 이상 불가능하며 그렇다고 부업을 해서 돈을 불릴 수 있는 범위의 폭도 아주 좁기 때문이었다. 결국 조금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주식, 부동산 그리고 로또 밖에 없는데, 확률이 가장 높아 보이는 부동산은 이를 알면 알수록 이마저도 기득권 그리고 이미 부를 가진 자들에게 유리한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자신같이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 퇴직을 앞두고, 활동에 제약이 생기는 시점의 사람이 가세를 좀 일으켜보겠다고 부동산 투자 공부를 시작한 사람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 - 이른바 투기꾼들과 동등시하고 동등하게 규제해 오히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집 한 채만으로는 부족하게 만드는 불합리한 시스템이 더 부동산 과열을 일으키는데, 정작 부동산 과열을 부추기는 이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종편 TV 채널에서 즐겨 방영하는 건강 프로그램은 몸에 유익한 정보도 주지만 지나칠 정도로 한 종목에만 편중, 미화 시킨다는 생각을 시청자라면 한 번 쯤 해봤을 것이다. 예를 들어 꿀을 소개했다면, 그 하나를 가지고 한 시간의 분량을 뽑아내기 위해 꿀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꿀의 효험과 다양한 쓰임새를 넘어 이에 대한 미화 그리고 예찬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보고나면 꿀을 사먹어야겠다는 소비심리가 생기는 것은 물론, TV에 방영된 특정 양봉농가는 한동안 전화연결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100채의 집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면, 이 100채의 집을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 100채의 집들에서 편차 없이 좀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집값이 올라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하자면 부동산 투자를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부동산 투자의 수익 기대 혹은 투기를 부추겨야 하고 선망하는 사람을 키워 내 자신의 판을 유지, 내지는 더욱 확대시켜야 하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자 새싹들을 유지, 독려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그들에게 “치열함”을 요구하는 것이다. 치열함이란 한국인이라면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들어온 단어이자 공공연한 분위기이며, 치열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낙오된다고 믿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투자에 대한 관심이 미온적이다 싶으면 “치열하지 못하다”로 몰아 부치며 치열해지도록 독려를 받는다고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헛된 것은 아닐 것이고 그들 역시 자신의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를 할 것이기 때문에 그 노고를 인정하지만 이것이 과연 다 함께 잘 살기 위한 노력을 권면하는 것인지, 돈 버는 사람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는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듯, 결국 인구는 갈수록 줄고 활동 범위도 일부러라도 줄여나가려는 이 시국에도 변화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지금과 같이 현상에만 집중하고 수습하려 할 것이 아니라, 차원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여유 있게 살아보겠다고 처지에 맞춰 부동산 투자라도 하려는 갈급한 심정의 사람과 자신의 판을 키우기 위해 남들에게 같이 잘 살아보자고 부동산 투기를 독려하는 여러 채의 집을 가진 사람을 동급 취급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초등학교 시절 국산품 애용운동의 일환으로 불시에 소지품 검사해서 외제 학용품이 나오면 선물을 받은 것인지 돈 주고 산 것인지 앞도 뒤도 안 재보고 무조건 압수하고 도덕점수를 감점하던 시절이 이 시점에 불현듯 생각나는 이유는 왜일까.

어찌 생각해보면 자기 판을 넓히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시대와 경제 상황을 초월해 그 체제를 유지시키고 있는 부류가, 이렇게 하다가는 끝내 자기 판마저 없어질 것이 빤한데도 내 욕심만 최대치로 차리다가 많은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고 결국 폐과(廢科)로 전락해버리게 만드는 어떤 이들의 어리석음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인류는 과거, 노력한 만큼의 보람을 느끼고 서로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무작정 있는 자에게 빼앗아 없는 자에게 줘보기도 했고 엄격한 법의 잣대로 규제도 해 보았지만 모두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법과 규제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 모든 사회적 부작용은 과욕이 빚어내며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부동산이 문제가 아니라 생활, 교육 등 전반적으로 우선 이 “치열함”이라는 고질병에서 벗어나도록 제도와 사회 분위기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인간은 치열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의 필요이상의 욕심, 그리고 비교의식이 인간의 마음을 늘 가난하고 배고프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현상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있다. 갈수록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들어지는 세상에 아무리 대책을 세워도 나아지지 않는 데는 돌출된 현상에만 집중하고 진화하려는 대처하는 방법과 발상이 너무 순진하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