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살롱

얼마 전 어떤 트로트 여자가수가 취득한 석사와 박사논문이 모두 표절이라고 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표절심의 사이트 카피킬러가 표절률 74%라고 판정하고 그녀를 가르쳤던 교수 한 사람이 학교에서 거의 본 적이 없다는 증언을 내놓았으니 달리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문제의 트로트 가수는 표절을 부인하면서 석사와 박사논문을 반납하겠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한다.
연극 분야의 학위논문도 표절과 무관한 형편이 아니다. 학력 위조와 성추행이라는 큼직한 사안에 밀려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져 있었을 뿐이다. 학력위조와 성추행에 연루된 연극인들 중에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도 여러 명이나 있었다. 연극 분야에서 서로 경쟁하듯이 학위를 취득하는 진풍경은 지난 20년 이후 대학 연극학과가 우후죽순처럼 많이 설립되면서 연극,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의 연기자가 대학교수로 발탁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실기능력과 인지도에 의해 교수로 발탁된 연기자가 무슨 이유로 평소의 일과는 상관없는 논문을 작성하고 학위를 얻으려고 한 것일까.
연기자가 연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학위과정을 이수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내가 가르친 제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론연구를 통해 연기력이 향상된 사례가 얼마나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텔레비전 연기자로 활동하면서 나의 지도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제자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교수님, 저하고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여배우 한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은 고등학교 밖에 다닌 게 없는데 저보다 연기를 잘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요. 저는 대학의 연극 전문학과를 졸업하고 그것도 모자라도 대학원에서 석사과정까지 이수하고 있는데 말이죠.”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론연구가 연기력 향상에 근본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자신의 연기력이 어떤 수준에 있고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가 하는 객관적 안목은 갖게 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나의 조언이 추상적인 것이라는 사실은 나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른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대학에서의 이론연구가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문제가 되는 것은 강의에 참석하지 않고 논문을 자기가 작성하지 않고 남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경우이다. 남의 도움에만 의지하는 논문은 심사과정도 엄격하게 행해지지 않는다. 이런 경우 문제가 생기면 학생이 책임을 지고 교수는 모른다는 핑계를 대면 그만이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석사와 박사논문이 교수의 지도 아래 작성된다는 엄연한 사실로 볼 때 모든 책임은 교수가 져야 한다.
예술 분야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실기가 주연이고 이론은 조연이라는 인식이 정착되어왔다. 하지만 예술선진국이 되려면 실기와 이론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예술원에서도 예술가가 주인이고 이론가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외국에서는 그런 경우가 절대로 없다. 그런데도 연기자가 자기의 예술로만 만족하지 못하고 석사와 박사학위를 아동용 장난감처럼 취득하고 이를 과시한다고 하면 한국의 예술, 과학과 사회적 정의는 세계 최하위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