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살롱

무엇이든 줄여 쓰는 시대다 보니 말도 줄여 쓰는 일이 많다. 그중 영끌, 빚투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영끌은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뜻이고, 빚투는 빚내서 투자한다는 말의 줄인 말이다. 월급은 쥐꼬리만 하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자 세대를 가리지 않고 영혼까지 끌어모으고 빚까지 내가면서 주식 등에 투자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까 영끌, 빚투는 서민들의 팍팍한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말인 셈이다. 경제학자 박정호의 「이코노믹 센스」는 이런 세태를 지혜롭게 넘기는, 즉 합리적 소비를 위한 방법들을 제시한 책이다. 우리는 나름 알뜰살뜰 아끼며 생활한다. 하지만 통장 잔고는 항상 제로 혹은 마이너스다. 그럼 이렇게 생각한다. ‘좀 더 아끼고 덜 써야지.’ ‘내년부터는 저축을 시작해야겠다.’ 하지만 그때뿐, 아껴 쓰지도 저축도 언감생심이다.
저자에 따르면 돈을 쓰기 전에 우리 무의식부터 점검해야 한다. 혹시 31가지도 넘는 아이스크림을 판다는 가게에 가본 적이 있다면 공감할 것이다. 어떤 점원이든 아이스크림을 수북하게 담아준다. 내게만 그러는가 싶어 주변을 확인해 보면 백이면 백 수북한 용기를 들고 자리에 앉는다.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가득 담긴 아이스크림의 모습에 쉽게 현혹된다. 직접 무게를 달아 비교하기 전까지 큰 컵에 담긴 8온스의 아이스크림보다 작은 컵에 수북이 담긴 아이스크림 7온스를 더 선호한다. 무의식적으로 가득 담긴 아이스크림이 당연히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 탓이다. 이처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소비를 결정한다. 기업은 이런 소비자의 무의식을 이용하고 조종하기까지 한다.
경제학자인 저자는 어떤 물건이든 구매를 결정하기에 앞서 ‘진짜 가격’을 확인한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본 적은 없지만, 무려 100만 원이 넘는 와인을 판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팔려고 메뉴에 올린 것은 아니다. 고가의 와인이 팔리지 않아도 그보다 싼, 이를테면 50만 원짜리 와인이 훨씬 저렴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 100만 원짜리 와인이 메뉴에 없다면, 사람들은 50만 원짜리 와인을 쉽게 선택할 리 만무하다. 저자는 구매를 결정하기 전에 “저렴해 ‘보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가격이 아닌 진짜 가격을 확인하라”고 모든 소비자에게 조언한다. 영끌과 빚투에 나선 사람들에게, 즉 어딘가에 투자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조언도 있다. 대개는 해외 투자보다 국내 투자를 선호한다. 하지만 해외 투자 시장에 비해 국내 투자처는 극히 적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국내 투자에 집중하는 이유는 “우리가 친숙한 것을 더 잘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 때문이다. 잘 아는 것과 잘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일상에서 광고를 통해 자주 노출된 브랜드명이 익숙하다고 섣불리 투자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언어의 장벽이 있어 어렵다고? 요즘은 해외 투자를 돕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시대가 변하고 세태가 달라졌지만, 소비자의 마음은 한결같다. 싸고 좋은 물건을 사고 싶을 뿐이다. 현명한 소비를 해야 하는 시기, 연말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