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살롱

“시몬! 너는 좋으냐 /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이 프랑스 시가 생각나면 가을은 익을 대로 익어 막 겨울에 접어들 무렵이다. 나무들이 잎새를 떨구는 이때쯤이면 꾼들은 껴입기를 시작한다. 반 팔 반바지는 벌써 추석 지나며 바꿔 입었고, 그동안 조금씩 두꺼워지던 긴 팔 긴 바지에 얇은 속옷은 물론 조끼나 바람막이도 바깥에 두르게 된다. 이렇게 ‘갈아입으며’ 꾼들은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한다.
덥고 습한 장마와 여름을 지내고 맞는 가을보다 잔거질이 신나는 철이 또 있을까?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아기 손 같은 색색의 단풍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달리는 기분은 달려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지난 스무 해 가까운 내 잔거질을 돌이켜 보면 날이 짧아지면서 먼 길을 가는 일은 힘들어지지만 그렇다 해도 한 100km쯤 타는 잔거 나들이는 여름보다 오히려 가을에 많이 했다. 지난 11월 초에는 그냥 심심해서 낮에 서울 집에서 나와 용인, 안성을 지나 진천까지 100km 넘게 잔거질을 했는데도 아직 해가 머리 위에 있기도 했거니와, 땀도 거의 안 나 진천서 서울 오는 길에 같은 버스 안에 사람들에게 미안해할 일이 없었다.
11월이 저물 때면 은행도 노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에 짙은 노랑의 은행 몇 알만 남긴다. 은행이 한창 떨어질 때는 걷는 이들도 은행을 피해 주위를 살펴 걷지만 잔거꾼에게도 은행은 기피 대상이다.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우리 곁에 많고 또 가로수로 많이 심은 탓에 잔거질 하다 보면 자동차에 밀려 길가로 다녀야 하는 꾼들에겐 어쩔 길 없이 은행이 여기저기 떨어져 냄새를 풍기는 곳을 지나야 한다. 지난가을도 잔거에 붙은 은행을 떼어 내느라 몇 번이나 닦았는지 모른다. 진천까지 다녀온 잔거 나들이 뒤에도 잔거에 들러붙은 은행 겉껍질을 떼어 내느라 바로 샤워도 못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에 수북이 쌓인 낙엽 길! 이 낙엽 길을 보면 바삐 차를 타고 지나다가도 내려서 일삼아 걸어보고 싶어지는 건 나만이 아닐 터이다. 잔거꾼들도 이런 낙엽 길을 보면 달려보고 싶다. 호기심에 넘치는 눈동자로 무엇이나 새로운 걸 보면 건드려 보거나 두드려 보는 꼬맹이들이야말로 이런 길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떨어진 잎새 가운데 남들보다 빛이 곱거나 아직 남의 발길이 닫지 않은 잎새 몇을 들고 걷거나 잔거로 쌩~하고 달려보기도 한다. 잔거 바퀴에 날리거나 깔려 으스러지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잔거질을 하다 보면 나도 “시몬!…” 하며 노래한 그 프랑스 시인 마냥 영감이 떠오를 듯도 하다. 하지만 낙엽 길은 천천히 잔거질을 하거나, 걸어야 하는 길이지 달려서는 안 될 일이다. 밑에 젖은 낙엽이 있다면 자빠링을 할 각오를 해야 한다. 특히 굽은 길의 젖은 낙엽은 썰매 수준이다. 뒷바퀴로 젖은 낙엽을 디디면 그나마 다행으로, 넘어지는 일 없이 그냥 놀라는 데 그치고 말겠지만, 굽은 길에서 앞바퀴가 젖은 낙엽을 디디고도 자빠링을 안 했다면 하늘에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가끔 낙엽에 묻혀있는 굵은 나뭇가지를 못 보고 걸려 넘어진 꾼도 많다. 신나는 가을 잔거질이지만 이 또한 살피고 또 살피며 해야 하는 일임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