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살롱

일반적으로 일본의 조선 침략 시발점을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본다. 강화도조약 이후 경술국치까지는 무려 34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따져보면 일본은 1867년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이후 강화도조약 때까지 우리보다 10년 먼저 개항을 했을 뿐이다. 한일합방 전까지 두 나라에 똑같이 30년의 시간이 있었는데 도대체 조선은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그 해답이 될 만한 단서가 강화도조약 이전에 벌어졌던 두 나라의 외교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 나라 사이의 마지막 조약은 숙종 9년(1683년)에 맺었다. 일본인은 초량을 벗어날 수 없으며 벗어나면 사형이었다. 그래서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대마도인들이 초량에 들어와 무역을 했고,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문서도 대마도인들에 의해 초량의 왜관을 통해 전달되었다. 유신 이듬해인 1868년 메이지 정부는 이 관례에 따라 국서를 전달한다. 일본 정부의 대표는 막부가 아닌 천황임을 밝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천황이니 황실이니 하는 말은 청나라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라며 초량의 책임자인 안동준이 국서접수를 거절했다.
2년 뒤인 1870년, 메이지 정부는 또다시 국서를 보냈다. 이번에는 대마도인이 아닌 외무성 외교관들이 직접 찾아왔다. 일본 외교관들은 숙종 때 맺은 조선과의 조약을 준수하여 초량 밖을 벗어나지 않고 1년 동안 부산첨사, 동래부사 등을 상대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1872년 1월, 또 외무성 관리를 파견하였다. 이번에는 직접 국서를 전달하겠다며 숙종 때 맺었던 조약을 깨고 초량 밖으로 벗어났다. 동래부사가 이들을 막아섰다. 결국, 이들은 체포됐다. 이를 보고받은 일본 조정은 조선에 무시를 당했다며 매우 분개했고, 그때 정한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1874년, 이번에는 국서가 조선조정에 전달됐다. 그러나 천황이라는 구절을 문제 삼으며 국서를 다시 써 오라며 1년 동안 일본이 기다리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군함을 출동시켰다. 1875년 운요호라는 군함을 이끌고 직접 부산, 거제도, 여수, 목포를 거쳐 한강의 입구인 강화도까지 접근했다. 결국, 운요호는 조선군이 지키고 있던 강화도 초지진을 포격하고 또 강화도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영흥도를 점령했다. 300명 이상의 조선군이 전사했고, 수많은 양민이 학살됐다. 그때야 조선은 이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는 이듬해 1876년 강화도에서 다시 3척의 일본군함이 나타나자 급하게 강화도에서 일본 관료와 만나 새로운 조약을 맺은 것이다.
이렇게 조선의 위정자들은 세상의 변화를 몰랐다. 그들이 숭배하던 청나라는 이미 30년 전에 영국과 프랑스군에 의해 황제가 있는 북경이 점령당하고, 온 국토가 유린당한 것을 애써 외면하며 공자왈 맹자왈 한 것이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조선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나라를 지킬 수 없는 나라가 되고 만 것이다. 지금도 40년 50년 전의 이데올로기에 얽매어 세계의 흐름을 놓치고, 결국은 국민의 삶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일이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