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스크랩북

가난한 집 살림이어서 작은 돌 하나 마당에 앉히더라도 집사람 눈치를 살펴야 했다. 돌값 절반도 아니게 말했는데도 집사람은 깜짝 놀라곤 하여 대개 굴러다니는 것들을 공짜로 집어오는 것처럼 가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간에 그것과 정비례 되는 크고 작은 말들이 오갈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바위처럼 무거운 분위기가 며칠씩 지속되기도 하였다. 집사람은 결국 자기가 돌에 밀려날지 모른다고 농담처럼 정말을 말하기도 하였다.
國産(국산) 냉장고가 갓 나오기 시작할 때의 일이다. 돌을 넣기 위해서 냉장고를 먼저 뇌물로 바치는 방법도 써야만 되었다. 그래야 소리 없이 돌을 들여올 수 있으니 말이다.
13년 동안 근무하던 직장을 어느 날 예고 없이 갑자기 쫓겨나면서 뜻하지 않게 退職金(퇴직금)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걸로 石物(석물) 몇 개를 샀다. 오기였다. 돌만 보고 살 처지는 아니었으면서―. 그러나 그것들이 차에 실려 오던 날 집사람은 아무 말 않고 마당에 나와 그것을 맞아주었다. 요즘 그들 곁에 제법 조릿대로 무성하고 돌부채며 며느리미씨깨 덩굴들이 기어올라 그리도 어울릴 수가 없다.
무심코 농담처럼 한 말이 적중하여 좋은 怪石(괴석) 얻은 일이 있었다. 돌 주인은 아파트로 옮길 참이어서 아버지의 돌들을 간수할 사람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돌의 이름은 기억해내지 못했다. 언젠가 詩를 쓰는 친구를 불러들여 이름 없는 돌의 命名宴(명명연)도 차릴 생각을 하고 있다.
오래전 지금 퍼시픽 호텔이 있는 왼편 길로 쭉 올라간 그런 골목 한마당에서 나의 초막 같은 집이면 두 채 값이나 되는 값을 말하는 怪石 하나를 구경한 일이 있었다. 자연석 한 덩이 값으로는 엄청나게 비싼 것이어서 우선 기억에 남는다. 키는 5尺(척) 정도. 대나무 밑에 놓았으면 좋을 그런 마른 돌이었다. 투명한 푸른빛 옥돌이 굵게 가늘게 힘줄처럼 엉키고, 구멍 뚫린 허리 부분이며 돌 분위기는 장관이었다. 혹 선비의 눈에는 너무 속되게 보일 수도 있는 그런 화려함….
그런데 돌장수는 거기에 굉장한 哲理(철리)라도 응결된 것처럼 설명하였다.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해가 거듭해갈수록 그 돌이 생각나는 것은 이상하다. 좋은 돌이었던 모양이다. 더구나 그 돌 받침대는 돌과 잘 어울렸다. 형태며 네모에 새겨진 浮彫(부조)들은 훌륭하였다. 다만 凍傷(동상)을 입어서 그릇이 찢어져 있는 것이 흠이었다. 하나 깨진 것까지 볼 줄 알아야 돌을 보는 것이 아닌가.
樓上洞(누상동)에 있던 尹德榮(윤덕영)의 프랑스館(관)이 헐릴 때 그 庭園(정원) 입구에 놓였던 화려한 怪石 받침 한 쌍이 내게 굴러들어왔다. 그것을 가지려는 경쟁자가 여럿이 있기 때문에 힘든 고비도 몇 번 있었지만 원체 마음먹은 것이어서 내 뜰에 옮길 수 있은 것이다. 이제 좋은 緣(연)이 닿으면 여기에 얹힐 돌도 생길 것이다. 원하니까 얻어질 것을 믿고 있다. 그렇지 않고야 이 받침대가 내게 왔을 리는 없지 않은가. 아니면 기막힌 돌을 가진 분이 있다면 양보해야지. 돌 보는 사람은 욕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남의 돌들이 내 마당에 와 앉듯 내 것도 마침내는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가게 되는 것. 영원한 내 돌이란 도무지 있을 수 없다.
平安道(평안도) 사람 金씨에게서 얻은 3층 石塔(석탑)의 얘기까지 해야겠다. 이것은 그가 水安堡(수안보)에 가져온 것이었다. 中石(중석)과 기단은 없이 甲石(갑석) 이상만 있는 그런 볼품없는 탑이었다. 그런데 金씨가 이 탑에는 젊은 女人(여인)이 따라다닌다더라는 수안보 사람들의 말을 들려주었기 때문에 나는 갖기로 하였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니까 괜찮아요. 공연히 하는 소리겠지요. 그래서 이건 탈 없는 우리가 둬둘까 해요―.”
젊은 여인이 따라온다는데 내게 싫을 수가 없었다. 공연한 소리면 어떤가. 정말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후 15~16년 놓고 보아도 그런 女人은 꿈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밑둥이가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도 몇 년 되었다. C씨의 권위 있는 設(설)에 의하면 그래서 이런 탑은 반으로 갈라놓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내 견해는 그렇지 않다. 수안보 溫泉(온천) 물에 몸을 씻는 高麗女人(고려여인)이면 善神(선신)이지, 惡神(악신)은 아니잖겠는가―. 그래서 요즘 復元(복원)해서 그분 만날 생각을 하고 있다. 용케 蓮花(연화) 문양의 꼭 맞는 基壇(기단)을 얻었다. 이제 中石만 얻으면 된다. 틀림없이 찾아낼 것이다. 그러면 이 탑의 본래 주인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서울경제신문 1979년 7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