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스크랩북

이번 국립무용단 제17회 공연(1978년 10월6일~8일)은 中南美(중남미)를 도는 民俗舞踊團(민속무용단) 20명을 뺀 나머지 단원 40명과 무급 무용단원(저명 무용가)을 가지고 하는 ‘종합무용제’였다. 그래서 신문엔 공연작품들이 소개되었는데, 문제는 그 춤들은 이미 보아온 것들이라는 점이다. 기대할 수 없는 무대공연을 맞는다는 일은 맥빠지는 일이다. 더구나 다시 보지 않아도 될 춤들을 또 들고나와야 한다는 일이 한없이 슬퍼지기만 한다. 큰 극장의 공연이 기껏 이거냐 하는 생각도 든다. 관객이 이렇게 환영 않는 춤이라는 말을 들으면 춤추는 사람인들 뭐 신날까 하는 마음이 들어 연민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떻든 기대 않는 공연을 봐야 하는 일처럼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긴긴 세월 허구한 날 곱게만 추면 되는 것처럼 돼버린 우리 한국 춤 스타일에 그만 신물이 났다는 표현이 옳다.
사실 관객은 그 춤에 충족되지 못해 구경을 그만뒀는데, 무용가들은 그것도 모르고 그대로 추고 있다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곱다’ ‘예쁘다’는 것은 예술의 부분요소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곧 예술은 아니다. 더구나 감명 없고 영혼을 울리는 힘을 갖지 못한 춤이면, 설혹 그것이 예쁘다 하더라도 그것과 연결되리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착각이 아닐까. 말하자면 그 예쁨은 춤(예술) 그것과 상관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을 부르지 못하는 굿은 아니 하는 것만 못하다. 무용가가 무대에서 춤을 춘다는데 관객은 맹숭맹숭 신도 흥도 나지 않는다면, 신을 부르려는 굿 이전에 벌써 무엇인가 잘못돼져 있는 데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바로 자기의 춤이 아니고 곱게만 다듬어진 규격화된 춤을 춰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우리 무용가들의 무용觀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어느 시골구석의 무명 춤꾼들이 전통무용이란 이름으로 서울로 불려오고 있으며 거기엔 관객이 모인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면 잘못이다. 한마디로 인스턴트 음식에 싫증 난 사람과 연결시켜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우선은 신선하고 파격적인 것에 향수를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近代舞踊 초기의 선구자들이 만든 춤에는 그래도 ‘우리의 춤의 현대화’라는 뚜렷한 가치가 있었고, 그 춤 형태엔 충분히 역사적인 진실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의 무용가들이 그 춤에 하나도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그대로를 가지고 살아가는 배짱은 대체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근대무용이 모든 예술思潮(사조)와 美意識(미의식)으로 큰 변화가 있었는데도 유독 우리 무용가만이 달라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근대무용들이 이미 古典의 생명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명확한 대답은 그 근대무용들은 절대로 우리의 고전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거기엔 옛것을 무대화하려는 큰 동작만 계산되어 있지 우리 춤의 내용을 나타내는 세밀한 마음은 담겨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춤의 아름다움의 특징은 큰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작은 부분에 숨겨져 있었고, 그 속에 깊은 생각과 표현을 담았었다. 만일 우리가 아직 우리 춤의 현대화에서 깊이를 얻지 못했다면, 바로 큰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작고 세밀한 부분에 눈을 돌리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그마저도 큰 것은 이제는 너무 다듬어져 그저 막연히 미끈하게만 되어버렸다.
미끈한 것에서 개성을 찾을 수는 없다. 이제 우리 춤의 과제는 이 미끈한 것을 대담히 파괴하는 데 있다. 그렇지 않고는 오늘의 관객을 잡을 수가 없을 것이다. 춤의 기교도, 음악도, 의상도, 표현도 모두 고우면 된다는 이제까지의 미신에서 뛰쳐나오지 않는 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뛰쳐나오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용기 있는 자 누구냐에 따라 우리 춤의 판도는 달라질 것이 확실하다. <趙東華>

新東亞 1978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