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8일 인쇄
2017년 1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7년 11월호 통권 501호 |2018년 10월 22일 월요일|
 

공연평

 

춤으로 미래의 예술을 상상하기
- 김성한·현대무용협동조합




박민경(朴玟京)(춤평론)

* 김성한 안무 『비트 사피엔스』(10월 20~22일 강동아트센터 드림소극장)
역사적으로 새로운 실험들은 춤의 영역에 한계가 없음을 증명해왔다. 최근에는 특히 극장 무대를 벗어난 춤들의 향방이 주목된다. 과거에는 그러한 움직임이 말 그대로 운동 성격을 띠었다면, 지금은 전통적으로 극장 무대에서 수행했던, 소위 공간을 규정한다는 의미를 극장 밖에서 실행함으로써 춤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여전히 극장을 중심으로 한 고전적 예술의 춤이 주류이긴 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급진적 예술로서 춤이 그 미래를 개척하고자 실험을 이어간다. 인간의 몸과 몸의 움직임이 춤의 기본요소로 규정되어 있지만, 인공지능과 테크놀로지 매체의 발전은 공연의 제작기반을 변화시키며 춤예술을 규정했던 제한에 도전한다. 먼 미래의 이야기 같지만, 어쨌든 20세기에 상상했던 21세기의 모습은 그런 것이었음을 상기하면 이미 시작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극장은 소멸하지 않고 새로운 예술장르로서 미디어아트의 산실로 거듭나고 있다. 가장 기술적인 장르로 분류되는 영화에서 3D의 등장이나 4D의 가능성은 가장 전통적인 장르인 극장예술을 주목하게 만들었으니, 그 결합은 미래 예술의 형식을 짐작하게 한다. 예술은 기술이 아니지만 예술이 기술의 진화에 기반하고 기술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테크닉이 아닌 테크놀로지의 문제에서, 춤과 기술의 결합은 분명 과학분야의 용어였던 ‘융합’으로 불릴만한 것이다. 인간과 기술의 결합이 예술과 기술의 결합 문제로 가시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미래 예술형식을 논의하고 있다. 지금 춤예술은 또다시 최전선에 서 있다.
이 같은 배경에서, 김성한의 신작 『비트 사피엔스』는 ‘미래의 인간’을 내세움으로써 극장, 테크놀로지, 인간을 연결하는 작품의 탄생을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네 명의 남녀무용수가 출연해 60여 분 동안 펼친 이번 공연에서 새로운 실험을 찾기는 어려웠다. 제작비 같은 현실적 제약은 차치하고, 기존 안무작들의 연장선상에 머묾으로써 새로운 춤으로의 방법론적 접근이 아쉬운 공연이었다. 안무자가 의도한 것일지라도, 김성한이 주제로 하는 인간 실존에 대한 물음은 20세기 산업화와 자본주의적 상황이 야기한 상태에 집중한다는 인상이다. 여전히 유효한 주제의식이긴 하지만, 새로운 시대환경에서 색다른 시각으로 문제화하지 못한 점이 공감을 약화시키지 않았나 싶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기술사회와 인간(혹은 개인)의 이분법적 접근이 작품의 내용으로 구체화되고, 이로 인해 춤과 테크놀로지는 결합하지 못하는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비트 사피엔스』에서 안무자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고민을 주제로 하고, 비트(bit, 컴퓨터 같은 디지털 체제에서 데이터를 표시하는 최소단위)로 상징되는 기술세계에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하고자 한다. 컴퓨터의 정보처리를 암시하는 영상 등을 활용한 무대배경은, 세기의 정도만 있는 전자음과 더불어 기술지배적 환경을 암시한다. 차갑고 딱딱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패션쇼의 런웨이처럼 기존 객석의 자리 끝까지 길게 무대를 연장하고 사이드에 관람석을 만드는 등, 무대의 전면적인 변화는 미디어 기술의 투입을 확장시켜 영상의 평면화를 벗어나게 했다. 움직임을 분절시키고 그것의 이어짐으로 움직이는 듯한 동작은 최소단위로 쪼개지는 듯한 인간의 한 단면을 상징화한다. 무대장치에 의해 계속 미끄러지는 인간은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좌절감을 표현한다. 안무가는 비트화된, 즉 ‘붕괴된 자아’와 그럼으로써 테크놀로지에 지배당하는 인간의 상황을 설정하고, 그에 대한 극복이 다시 연결하기, 이른바 관계맺기를 통한 인간성 회복임을 주제화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작품은 그러한 분위기만을 암시할 뿐 좀 더 깊이 있는 성찰이 되지 못한다.
요즘 우리사회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언급될 정도로 테크놀로지와 미래사회에 대한 관심이 크다. 지금까지 인간은 기계를 사용하기 위해 기계의 작동방식을 배우고 기술의 원리를 따라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인공지능은 인간의 기계화가 아니라 기계의 인간화를 뜻한다. 인간이 기계의 작동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의 사고방법, 행동방식 등을 익혀서 소통한다. 기술의 발전은 기계가 단순한 도구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자연과 기계가 적대적이고 대립적으로 나뉘어졌다면 앞으로는 그 경계가 사라질 것을 예고한다. 그런 점에서 엉뚱한 궁금증 하나 ― 미래사회를 현재로 소환해 무대화했다는 『비트 사피엔스』, 여기서 말하는 ‘비트 사피엔스’는 과연 (기계화된) 인간일까, 아니면 (인간화된) 기계를 가리키는 것일까?

* 현대무용협동조합 「코다와 함께」(9월 13~14일 강동아트센터 드림소극장)
지난 6월 출범한 ‘현대무용협동조합’(이사장 김성한)이 출발을 알리는 창립공연 「코다와 함께(With CODA)」를 마쳤다. ‘코다’는, 현대무용협동조합의 영어명인 ‘쿱-코다(COOP-CODA)’를 가리키는데, 대문자이긴 하나 어떤 단어의 약자가 아니어서 아직은 생소한 명칭이다. 보통 창립공연이 창립식과 동시에 행해지는 것에 비하면, 세 달의 시간이 흐른 후 이루어진 터라 기대감을 높였다. 무엇보다 이 단체의 성격과 목적을 제시할 창립공연을 주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무용단체 10팀이 참여한 현대무용조합은 창립식에서 이미 ‘현대무용의 대중화’라는 취지를 밝힌 바 있다. 이는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용단이 힘을 합쳐 그 곤경을 타개할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으로 이해되었다. 여기서 대중화라는 의미가 모호한 탓에 피상적이라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무엇을’과 ‘왜’를 분명히 한 만큼 결국 ‘어떻게’가 관건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던 것이다.
따라서 ‘가을운동회’라는 부제를 단 이번 공연은 작품성 측면에서 평가되기보다는 현대무용협동조합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연의 의미가 컸다. 먼저 이 단체가 택한 방식은 한마디로 합동공연이었다. 물론 이번처럼 10단체가 모두 무대에 오르는 공연은 앞으로 쉽지 않겠지만 어쨌든 몇 단체가 함께 공연한다는 형식이다. 이는 몇 개 단체가 출연하는 여타의 기획공연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조합에 소속된 무용단들이 스스로 공연을 기획한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하지만 보통의 협회처럼, 소속이긴 하나 앞으로 공연은 각자의 개별 활동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이처럼 10개 단체의 합동공연은 보기 어려운, 그야말로 특별한 이벤트였다.
공연은 드높은 푸른 가을하늘 아래 학교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어느 운동회를 묘사했는데, 각자 스토리를 갖춘 작품으로 10팀이 차례로 출연하고 그러한 장면들의 연결을 위해 몇 가지 연출이 가미되었다. 서사적인 진행은 이해를 쉽게 한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10분도 안 되는 길이의 작품 모음이라는 형식을 볼 때, 창립공연은 ‘코다와 함께’라는 타이틀처럼 협동조합에 참여한 단체들을 소개하는 이벤트와 같았다. 또한 개성이 다른 단체들이 따로 혹은 같이 섞여 있는 공연은 조금은 즐겁게 또 자연스럽게 전개되어 하나의 스토리로 연출되지만, 여전히 제각각이다. 이는 한 무대에서 통합이 어려운 이질성을 부각한다. 그리하여 현대무용은 특정 테크닉에 기반을 둔 장르가 아니기에 스타일이 자유로우며 독창성이 강점이라는 특성이 드러나지만, 출연단체가 생소한 일반관객에게는 그저 평범한 공연에 불과했을 수 있겠다.
이번 공연은 무엇보다 창립공연답게 ‘학교 운동회’를 모티프로 협동과 놀이, 화합 같은, 운동회에 내포된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기획이 앞으로의 포부를 드러냈다. 다만 여전히 대중화라는 지점은 여러 면에서 불분명하다. 현대무용의 생존이 정말 대중화에 달려 있을까? 혹은 일반관객(즉, 무용전공이나 전문이 아닌 애호가나 취미인)이 객석을 가득 채우면 대중적인 공연인가? 아니면 대중가수처럼 여러 행사들에 초청되어 불특정 다수에게 인기가 있으면 대중화에 성공한 것인가? 현대무용의 대중화란 춤추기의 대중화인가 작품의 대중화인가? 현대무용협동조합의 창립공연은 수많은 물음에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못한 채 막을 내렸고, 결국 현대무용의 대중화에 대한 답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