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8일 인쇄
2017년 1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7년 11월호 통권 501호 |2018년 5월 21일 월요일|
 

공연평

 

한국춤의 정체성 문제
- 배정혜·조형준




이동우(李東祐)(춤평론)

*국립무용단 『춘상(春想)』(9월21일 국립극장 해오름)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 「춘향전」을 바탕으로 만든 『춘상(春想)』은 국립무용단의 2017-2018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 개막작이다. 안무를 맡은 배정혜와 연출을 맡은 정구호가 무대상에서 추구해왔던 색깔이 달라왔기 때문에 ‘춘상’이라는 제목과 매칭이 될 것 같지 않은 도시적 차가움이 주는 포스터의 이미지, 그리고 뜬금없는 계절적 선택이 이미 이 두 사람의 협업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배가시켰다. 특히 배정혜는 국립무용단 단장 재직 중 『춤, 춘향』으로 「춘향전」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대극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진수로 선보였으며, 배정혜가 평생을 추구해오는 춤의 성격이 연출가가 추구한 모던 클래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비록 새로운 음악을 사용하더라도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 생경한 장르를 풀어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라도 힘든 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정혜 자신도 ‘평생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고 프로그램에 피력한 이유가 그리 놀랍지 않다.
특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100여 가지의 대중음악을 안무가에게 제안했다는 연출가의 주문은 연출가의 대중음악에 대한 폭넓은 안목을 은연 중 알리기 위함이 목적인지는 몰라도, 이는 납득하기 힘든 무책임한 일이다. 안무 이외의 모든 요소에서 이 공연이 추구했다던 ‘네오 클래식’이 십분 보였다면 안무가 전체 색깔을 보지 못했다고 문제 삼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요소가 반쪽짜리 모던 클래식이 되어버린 채 그나마 안무가 열악한 상황에서 한국춤의 정체성을 힘겹게 지켜냈다고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음력 5월5일인 자연의 형형색색의 단오날이 먼저 떠오르는 성춘향과 이몽룡의 첫 만남을 무채색으로 재구성 한다는 것은 나름 창의적인 도전이다. 그러나 재해석의 기본은 고전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된다. 「춘향전」에서 보여주는 연인과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시련속의 재회, 행복한 결말은 모든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는 전개구조다. 굳이 「춘향전」을 재해석 했다 할 이유가 있었을까. 현대화, 재해석 했다고 하기에는 연출적으로 역량부족, 분석부족이었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유명 의상 디자이너가 꾸민 무대이니 대단하리라 여길 것’으로 작품을 안일하게 작업에 임한 것이 아니면 ‘국립‘이라는 칭호가 붙은 단체에서 대학 무용과 발표회 같은 안일한 수준으로 선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골격만 있는 백색의 건축구조, 아무 특징 없는 의상 등 어디에서 「춘향전」을 느끼며 봄을 생각하라는 것인가. 음악도 문제가 많았다. 녹음음악이었음에도 저렴하게 대충 녹음했다고 느낄 정도로 음폭도 부족하고 세션끼리의 음도 제대로 맞췄다고 보기가 힘들 정도로 듣기가 불편했다.
객석의 반응도 담담했다. 무용수들이 아무리 열심히 추어도 박수가 썰렁하다고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예전 같았으면 대극장 무대 한 가운데서 온 몸으로 박수를 받았을 법한데, 머리만 삐죽이 내민 정구호의 모습에서 자신도 이 공연의 참담한 결과에 대해 모르는 바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큰 무대이든 작은 무대이든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서 입장료를 내고 감상하는 만큼 완벽한 무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성의 있는 무대를 보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아무런 의미도, 철학적, 미니멀리즘에 대한 미적 근거도 내놓지 못한 한 연출가의 습작을 위한 수업료를 국민의 세금으로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것도 모자라 최고 7만원의 수업료를 관객이 대신 선뜻 지불했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국립극장측은 이번 공연에 대한 자성은커녕, 자사지에 『춘상』에 대한 자화자찬 일색의 페이지를 할애했으며, 차기 11월, 12월 국립무용단 공연작품을 또 다시 정구호가 연출한 『묵향』과 『향연』으로 꾸밀 예정이다.
정구호의 연출한 작품들 중에는 패션디자이너의 눈으로 무용가가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여 호평을 얻은 작품도 있었으며 이를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한두 번으로 그쳤어야 한다. 춤 공연에서 가장 먼저 주목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무용수와 안무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립단체에서 솔선하여 의상 디자이너를 지속적으로 춤 공연의 연출가로 고용하여 안무가보다 더 주목하게 만드는 기형적인 방식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의아할 따름이다. 이는 새로움 보다는 지명도에 한껏 의존하여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는 것을 게을리 하는 우리 춤계, 더 나아가 공연 예술계에 만연한 안일함에 대한 증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관객이 감당하고 있음을 목격한 이 가을밤, 말할 수 없는 상념에 잠긴다.

* 차진엽&대런 존스턴 안무 『미인:MIIN』(10월17일 문화비축기지 T1 파빌리온 & T2 공연장)
왜 페미니즘은 방어적일 수밖에 없을까. 왜 페미니즘은 결혼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여자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사는 일은 정말 슬픈 일일까.
『미인:MIIN』은 ‘여성성’이라는 다소 미묘한 소재로부터 다각화된 이미지를 이끌어 낸 작품이다. 때문에 작품의 구성과 더불어 작품의 진행에 더 눈길이 가기도 한다. 『미인: MIIN』이라는 큰 제목 아래 첫 번째 장소인 T1 파빌리온에서는 차진엽의 『바디 투 바디(Body to Body)』가, 이어서 대런 존스턴의 『프라스틱시티(Plasticity)』가 두 번째 공연장인 T2에서 각각 진행됐다.
차진엽의 미인의 시각은 미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남성 지배사회에서의 아름다움, 그리고 여성성의 기준이 세대가 바뀌어감에 따라 왜곡되어가는 것에 대한 고발에 가깝다. 1부라 할 수 있는 T1 파빌리온에서의 『바디 투 바디』는 차진엽과 다섯 명의 여성 무용수들(김혜윤, 유수경, 곽유하, 양한비, 이정민)에 의한 여성성, 결혼, 임신, 모정 그리고 희생 등으로 이어지는 평범한 여자의 정해진 삶의 순서에 대해 냉소적이고 다소 이기적인 시선으로 풀어내며, 보이지 않는 굴레에서 벗어날 것을 공격적으로 제안한다.
공간의 전후좌우 및 안팎을 모두 활용한 1부의 공연이 끝나면 건물에서 나와 옆 건물인 T2로 자리를 옮긴다. 건물의 정문인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마네킹처럼 꾸민 무용수(김유정)가 관객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맞이한다. 안내에 따라 관객들이 좌석도 없는 시멘트 바닥에 앉으면 다양한 각도의 모습의 이미지를 보게 된다. 마치 핍쇼(peep show)를 보듯 성적이며 관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무용수의 몸짓이 점점 기괴해짐에 따라 미의 기준이 오늘날에 와서는 비현실적이며, 비 인간적인인 외모로 변색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무용수가 사라지며 유리문이 열리면서 조명에 따라 원근 효과를 통해 미인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동경에 대한 머릿속 생각을 묘사해냈다. 춤 공연 보다는 공연장과 주위환경을 안무의도에 맞추어내는 재료로 창조해 낸 다원적 퍼포먼스에 더 가까웠다. 특히 건물에 원래 비치되어 있는 유리천장, 유리벽 그리고 유리문 등을 적용하여 여성의 한계, 보이지 않는 폐쇄성,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 와 같은 상징성을 우연인지 의도적인지는 몰라도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한 재료로 탈바꿈시킨 적용성이 특히 돋보였다.
막이 오르면 미동 없이 앉아서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프로시니엄 극장 형태에서 벗어나 퍼포먼스를 감상을 하기 위해 정해진 코스로 관객들이 움직여야 하는 형태는 과거 차진엽이 연출한 『로튼애플(Rotten Apple)』 등 다수의 작품과 다름없었다. 이번 공연의 전후에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인솔자에 이끌려 들어간 T1 파빌리온 에서의 첫 파트인 『바디 투 바디』의 시작은 전시 감상부터 시작됐다.
미로처럼 생긴 흰 벽에 카메라를 응시하는 평범한 여자의 모습(나츠코 나츠야마), 그리고 1980년대 TV광고였던 염색약 ‘페미닌 (feminine)’과 여성용 내복 ‘뉴인나 (New人나)’ 광고 두 가지가 연속 반복해서 돌아간다. 예로부터 남성의 시선을 끌기위해서 여자는 늘 꾸미고 고치고 다듬어야 한다는 역사적, 사회적 인식에 대한 고발인 셈이다. 공연이 끝나서 또다시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프롤로그에서 봤던 한 여자의 민낯의 평범한 모습을 야외의 대형 스크린으로 관람(?)하며 에필로그를 장식하는 것이다.
단순한 춤 작업뿐만 아니라 하나의 큰 제목 안에서 두 예술가가 풀어낸 독특한 구성방식, 무용수들이 홑으로 혹은 떼로, 서로의 몸을 겹쳐 뭉치다가 흩어짐을 반복하며 유려하거나 거친 움직임으로 표현해낼 때 그들의 몸짓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는 모래의 시각적 효과, 다소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소재임에도 과하지도 않은 음량과 악기가 표현해내는 청각적 이미지, 공연장으로 쓰인 비축기지의 지형과 건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 그리고 이를 아우르고 있는 자연적 환경을 놓치지 않고 극대화한 조명 연출 등은 성공적이며 특기할 만했다.
그러나 몇몇 관객들은 인파에 밀려 T1 본 공연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감상하는 영상이라든지 삐뚤어진 금테 액자 속의 남성 무용수(김성민)의 무브먼트를 스쳐 지나치게 되거나, 자리를 찾지 못해 공연 내내 서성거려야 하는 등의 이유로 시야가 가려서 관객이 놓칠 수 있는 단점도 있었음을 앞으로도 이와 같이 메시지가 있는 공연을 기획하면서 유념해야할 것이다.
춤의 장르로 시작하여 다원예술의 장르로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는 차진엽은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 다양한 요소를 이용한 시각의 가지치기를 통해 최대한 화려하게 포장할 줄 아는 영리한 예술가임에는 틀림없음을 이번 퍼포먼스에서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