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8일 인쇄
2017년 1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7년 11월호 통권 501호 |2018년 2월 21일 수요일|
 

꽃향시향

 

박태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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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朴濟瑩)(시인, 월간 太白 편집장)

“예, 예. 진정했습니다. 그 사람을, 살려둬서는 안 됩니다. 온 세상의 적입니다. 예, 모든 것을 전부 말씀드리지요. 저는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곧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어설프게 질질 끌지 말고, 그대로 죽여주십시오. 그 사람은 제 스승입니다. 주인입니다. 하지만 저하고 같은 나이지요. 서른넷입니다. 저는, 그 사람보다 겨우 두 달 늦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큰 차이도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차별은 있을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도 저는 바로 오늘까지 그 사람에게, 얼마나 지독하게 부려지고 있었는지요. 얼마나 조롱당해왔는지. 아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습니다. 참을 수 있는 만큼 참아왔습니다. 화날 때에 화를 낼 수 없으면, 인간으로 태어난 의의가 없지요. 저는 지금까지 그 사람을 성심을 다해 보호했습니다. (…중략…) 그래, 그거, 그거다. 자기 입으로 자백하고 있는 거야. 베드로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야곱, 요한, 안드레, 토마, 멍청한 것들뿐. 어슬렁거리면서 그 사람을 따라다니며, 등에 소름이 돋을 만큼 입에 발린 아첨만 늘어놓으면서, 천국이 어쩌고 하는 바보 같은 소리에 빠져서 열광하고 있지. 그 천국이 다가오면 그놈들은 모두 좌대신, 우대신이라도 될 셈인가. 바보 같은 놈들. 당장 먹을 빵조차 부족해서 내가 어떻게든 조달해오지 않았으면 모두 굶어죽었을 게 아닌가. 나는 그 사람에게 설교를 시키고, 모여든 군중으로부터 헌금을 걷고 마을의 부자들에게 공물을 받아 숙소를 잡고 의식주의 모든 것을 도맡아서 일했어. 그런데도 그 사람은 바보 같은 제자들처럼 나에겐 감사의 말 한 마디 안 하는 거야. 감사는커녕, 그 사람은 내 이런 숨겨진 고생 따위는 모르는 척 하면서 언제나 사치스러운 소리만 하고. 빵 다섯과 물고기 두 개밖에 없었을 때에도 눈앞의 대군중에게 음식을 주라는 불가능한 명령을 했어.”

조금 길게 인용했는데, 인용한 글의 화자는 누구일까요? 눈치채셨나요? 네, 맞습니다. 유다입니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 인용한 글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1909~1948)가 쓴 단편 소설 「유다의 고백」이고요.
꽃 얘기가 아닌 웬 유다 얘기냐 하시는 분도 계시겠네요. 실은 박태기나무가 유다나무, 박태기꽃이 유다꽃이라 불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결국 이 나무에 목을 매달고 피를 흘리며 죽었다고 합니다. 그 피가 스며들어 붉은 꽃이 피었는데, 그 꽃이 지금의 박태기꽃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시쳇말로 배반의 꽃이란 건가요? 실제로 박태기꽃이 유럽에서는 배신을 상징한다지요.
이 박태기꽃이 중국으로 건너오면 이번에는 오히려 다른 나무, 다른 꽃이 되는데요…. 중국에서는 박태기꽃을 자형화(紫荊花)라고 하는데, 이 꽃을 ‘우애(友愛)’ 혹은 ‘우정(友情)’에 비유하여 이르기도 합니다. 그리 된 사연은 일명 「전진(田眞)의 분형(分荊) 고사」라는 것에서 비롯되었는데, 중국의 고전, 「이십사효(二十四孝)」 ‘전진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십사효」는 고대 중국의 유명한 효자 스물네 명에 대한 전기(傳記)와 시(詩)를 수록한 일종의 교훈서인데, 여러 이본(異本) 중에서 원(元)나라 곽거경(郭居敬)이 편찬한 것이 가장 유명하지요. 암튼 「전진의 분형 고사」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중국 남북조 시대 남조(南朝)의 양(梁)나라(502~557) 때 전진(田眞)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전진은 부모가 죽고 두 명의 아우 광(廣)과 경(慶)과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서로 분가하기로 하고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었다. 그런데 뜰에 심겨진 박태기나무(紫荊) 한 그루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의논 끝에 나무를 세 조각으로 쪼개서 나누어 갖기로 하고 다음 날 나무를 자르려고 했는데, 그 순간 박태기나무가 순식간에 시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이를 본 전진이 깨닫고 두 아우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나무가 본래 한 뿌리에서 자란 같은 줄기인데 쪼개어 나누려 한다는 우리의 말을 듣고는 저리 시들어버렸구나. 사람인 우리 삼형제가 나무보다 못하구나.”
삼형제가 나무 자르기를 그만두자, 나무는 다시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고, 잎도 무성해졌다. 이에 삼형제는 감동하였고, 나눈 재산을 다시 전처럼 하나로 모아 셋이 힘을 합쳐 집안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집안은 더욱 번창해졌다. 전진은 벼슬하여 대중대부(大中大夫)에 이르렀다.

이 이야기가 전승되면서, 중국에서는 박태기나무(紫荊) 혹은 박태기꽃(紫荊花)이 우정과 우애의 상징이 된 것이지요. 형제끼리 우애가 깊어지라고 가정마다 박태기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당(唐)나라 때는 아마 많은 집에서 이 박태기나무를 심었던 모양입니다. 당나라 자연파 시인의 대표자로 당시 왕유(王維, 701~761)와 더불어 왕맹위유(王孟韋柳)라 불렸던 위응물(韋應物, 737~804)은 박태기나무를 보면서 고향을 떠올리고, 고향의 나무를 떠올리고, 고향의 사람들을 떠올리니 말입니다.

雜英紛己積 잡영분기적
含芳獨暮春 함방독모춘
還如故園樹 환여고원수
忽憶故園人 홀억고원인
- 위응물, 「견자형화(見紫荊花)」 전문

“많은 꽃 어지럽게 떨어져 쌓였는데 / 향기 머금고 늦은 봄 홀로 피었네 / 고향의 나무와 같아서 / 문득 고향 사람 생각하네”

봄날 피었던 꽃들이 필 만큼 핀 꽃들이 이제는 지는 때, 늦은 봄이 되어서야 박태기나무는 꽃을 피우는 것이니, 그 모습 보면서 시인은 고향을 떠올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중국 고사와 중국 한시가 전하듯이, 박태기꽃은 중국이 원산지입니다. 예로부터 절 주변에서 많이 자라, 옛날 스님들이 중국을 왕래할 때 들여온 것으로 추정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분홍색의 꽃이 먼저 피며 꽃 색깔이 화려해 지금은 정원수로 많이 심기도 하지요. 우리나라로 전해져서 박태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꽃봉오리 모양이 밥풀과 닮아 ‘밥티기’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는 밥티나무라고도 부르고, 북한에서는 꽃봉오리가 밥풀이 아닌 구슬처럼 생겼다고 하여 구슬꽃, 구슬꽃나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날 좀 보소
이 박태기꽃 동남동녀네들
피어나기까지
지지난해 지나
지난해 봄 여름 가을 겨울
올봄으로
1년 열두 달이나 걸렸다고?
누님이 죽었다고?
죽어
묵은 거울 속에 들어 있다고?
아니것소
아니것소
이도 아니라면
2천 년이나 3천 년이나
그런 아마득 아마득한 무작정의 밤낮들을 다 바쳐서
여기 박태기꽃 눈곱 법열(法悅)에 이르렀다고?
정녕 그렇겄소
- 고은, 「박태기꽃」 전문

고은 시인은 박태기꽃을 보면서 밥풀도 아니고 구슬도 아닌, 눈곱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눈에서 나온 진득진득한 액이 마침내 말라붙은 것. 그것이 눈곱이지요. 아니면 아주 적거나 아주 작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고요. 아무튼 박태기꽃을 일러 눈곱 법열이라 하네요. 시인이 깨친 이치가 무엇인지, 시인이 깨친 진리가 무엇인지, 그 해석은 여러분께 맡길 밖에요.

온몸의 솜털이 일어선다
그가 오고 있는 이 불길한 낌새!
찌르르 모공에 뜨겁고 끈적한 피들이 고여 드는지
혈관의 피돌기가 빨라지고 있다

꽃을 기다린 적 없는데
전피층 깊숙한 모낭살점마다
그가 붉디붉은 독을 풀고 있나 보다
덧날 줄 알면서도 죽죽 골이 패이도록 다그치며 긁는다
좁쌀 크기에서 쌀알로, 옥수수알갱이로 뭉쳐지는
진액의 전언들, 가시로 고동을 발라내듯
마른 뼈를 눅진하게 쑤셔댄다
묵은 살갗이 터진다
지울 수 없는 진자홍, 더 이상은 벗겨낼 수가 없다

봄을 긁어대는 저 박태기꽃들
지독한 가려움이다
- 박수현, 「박태기꽃」 전문

박태기나무에서 그 붉은 꽃이 피려할 때, 나무를 뚫고 밥풀 같은 꽃들이 돋아날 때, 가렴움처럼 돋아나는 그 모습 보시면 박수현의 시가 조금은 더 환하게 들어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밥이라고 하는 박태기꽃.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그 이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장 눈물겹게 황홀한 꽃은 진짜로 오늘 한 끼로 올라온 밥상 위의 밥풀, 그 밥풀이라는 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