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8일 인쇄
2017년 1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7년 11월호 통권 501호 |2018년 2월 21일 수요일|
 

관무기

 

여자 없는 남자들
- 황미숙·박순호·조슈아 퓨·유 키타카와·김지연·신정찬&이영훈&주오 지하오·신규상·김재승·아크람 칸




권경하(權炅河)(북쇼컴퍼니 대표)

빛으로 가득찬
* 무아모하닷사댄스프로젝트 황미숙 안무 『애니 엘러스』(10월26~28일 국립극장 달오름)
애니 엘러스는 누구일까. 왜 그녀를 기리는 공연을 할까. 그녀는 구한말 의료선교사로 조선에 와서 지금의 정신여중고를 설립한 사람. 평생을 조선여성의 교육과 선교에 바친 사람이며 동료 선교사인 벙커와 여기서 결혼했고, 죽어서도 이곳에 뼈를 묻은 사람.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정말 파란이 만장했던 때, 그녀는 어떤 인생을, 왜 그렇게 산 것일까. 여기 정신학교 동문들의 노력으로 동명의 무용극이 올려졌다. 남성 출연자를 제외한 제작 안무 출연 모두 재학생과 졸업생들이다. 많은 사람이 모이고 여러 곳의 후원으로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역사적인 인물은 사실의 고증부터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게다가 서로 다 아는 사이이니 여러 민원이 생기게 되고 잡음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은 둘째로 치고 설립자를 기리는 무대가 후배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여러 뜻있는 분들의 도움으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4회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것은, 그 자체가 작은 기적이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리라 하신 걸 실천한 것이다.
무대 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빈 암연과 빛, 그리고 댄서들. 장치와 배경도 없다. 시작하면 중간 반투명 가림막 너머로 영상과 함께 애니의 어린 시절을 보여준다. 피아노 음악에 맞춰 10분가량의 서장이 끝날무렵 가림막이 올라가며 애니는 빛을 향해 걸어간다. 오르골 소리와 함께 조선에 와서 명성황후의 어의를 하는 애니의 모습이 보인다.
작품전체는 두 개의 흐름을 보인다. 피아노 선율이 이끌어가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것과 남성내레이션과 드럼소리에 맞춰나가는 격정적 것. 작품은 이 두 개의 축을 왔다 갔다 한다. 명성황후와 애니의 이인무는 인상적이다. 등을 맞대고 팔을 걸어 도는 장면은 두 사람의 사랑과 신뢰의 상징. 애니가 황후의 가랑이를 빠져나가고 등을 빙글 돌아넘는 장면도 재미있다. 애니와 벙커의 이인무도 아름다웠다. 별다른 장치가 없는 무대는 조명이 큰 역할을 한다. 무대는 빛으로 가득한 것이었다. 애니는 항상 빛에서 나와서 빛을 향해 갔다. 저 텅빈 암연같은 무대에 한줄기 빛이 내려오고 애니는 그 빛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애니는 빛을 따라 갔고 그 빛줄기를 돌려 조선의 여성에게 비춘 것이다.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게 하라 하신 걸 실천한 것이다.
공연 시간은 1시간40분가량 된다. 좀 긴 느낌. 에필로그의 장황함을 줄이고 내레이션과 여기저기 루즈한 곳을 당기면 70분 내외의 깔끔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없어야 할 것이 붙어 있는걸 사족(蛇足)이라 한다. 그건 기(忌)하는 것이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것인가. 장차 발전된 모습으로 만나길 기대한다.

현대 도시인의 운명에 대한 패러디
* 박순호 『경인(京人)』(국립현대무용단 10월13~15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박순호의 『경인(京人)』과 조슈아 퓨의 『빅 배드 울프(Big Bad Wolf)』는 『국립현대무용단 맨투맨』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져서 기획되고 홍보되었다. 예술의전당 외벽에 큰 사각현수막이 걸렸고, 내가 이동하는 시내곳곳에서 광고판과 전단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게는 노출빈도가 같은 시기에 하는 뮤지컬이나 다른 큰 무용작품들보다 훨씬 많았다, 왜일까. 담당자가 일을 잘해서일까. 제목을 잘붙여서? 디자인을 잘해서? 예산이 넉넉했을까. 현대무용단에서 그만큼 자신있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일까. 두 작품 모두 초연작. 기획과 홍보는 좋아보인다, 그러면 작품은? 작품도 좋았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건 관객 구성. 관객의 비율이 남녀 반반, 청장년 반반, 내국인외국인 칠대삼. 이런 관객구성을 현대무용 공연에서 보다니! 이렇게 맞아 떨어지는 공연은 흔치않다. 빈자리는 없었다. 기획과홍보 A, 작품 A, 관객구성과 동원 A, 공연장 A, 게다가 날씨도 A.
경인(京人)은 서울 사람이란 말일 텐데 이런 용례를 거의 본적이 없다. 오히려 이 말은 일본에서 쓰이는데 ‘京人’이라 쓰고 ‘쿄오히토’라 발음한다. 천년 넘게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京都)사람을 ‘쿄오히토’라 불렀는데 지금은 도시사람이라는 의미. 도시는 현대의 것이니 경인(京人)이란 도시에 상관없이 ‘현대의 도시사람’이라 이해한다. 이 지점이 작품의 모티브인 듯하다. 그런데 모두가 알고 있듯, 현대도시는 또 하나의 콘크리트로 만든 정글. 약한 놈, 낙오된 놈은 순식간 사라진다. 그래서 모두 먹히지 않으려고 끼리끼리 얽혀서 사자탈을 뒤집어 쓰는 것. 독불장군은 없다.
작품이 시작하면 사자 한 마리가 꿈틀거린다. 엉덩이에서 한 사람 출몰. 이리저리 살피다 사자껍데기를 줄에 달아 벗겨버린다. 그 안에서 두 명 출몰. 이제 세 사람은 두리번거리며 눈치보다 서로를 붙잡고 매달리고 얽어매기 시작하다가 저울을 쭉 꺼내놓고 무게를 달아본다. 한 명, 두 명, 세 명 이렇게도 저렇게도 달아본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모자란 듯. 이제 본격적으로 세 명이 서로 얽히기 시작한다. 서로 매달리고 붙잡고 밀고 댕기고 걸고 발목잡고 목잡고 손목잡고 허리감고 허벅지 감고, 무더기로 쓰러졌다가 일어나고, 또 쓰러지고! 아, 저렇게 서로 뒤엉켜 있는 모습이라니. 그 옛날 나라를 뒤집어엎던 한 사나이는 얽히고 설키는 게 사는 방법이라 했다. 독야청청 하겠다는 사람의 피는 뿌려졌다. 독야청청은 없다.
세 명은 줄에 매달려 있던 사자껍데기를 내려 다시 뒤집어쓴다. 다시 도시 사자로 복귀. 이 도시에서 그 누가 얽히지 않고, 껍데기 없이 살 수 있나. 이 작품은 현대 도시인의 운명에 대한 패러디. 나는 내가 악몽을 꾸는 이유를 발견한다. 누가 내 등에 매달려 있는가. 나는 누구 발목을 붙잡고 있지? 이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글스는 「호텔 캘리포니아」에서 노래한다. “you can never leave~” 탈출은 없다.
음악이 인상적이다. 무대 왼편 위에 삼인의 악사가 배치되었다. 왼쪽부터 드럼작은세트, 거문고, 기타. 거문고가 드르륵 줄을 훑어내리자 장예모 감독의 「영웅」에서 이연걸과 견자단의 결투장면이 떠올랐다. 영화에서는 장님악사의 연주 속에 놀라운 칼싸움 합을 보여주었는데 이 작품은 두 사람이 아닌 세 사람이 결투하듯 합을 맞춘다. 체력소모가 심해 보인다. 세 명은 엉켜서 상하좌우를 골고루 이동하며 낙차와 반복을 보여주는데 그 와중에도 미묘한 긴장과 함께 균형과 질서가 보인다. 망가뜨리고 균형만들기의 반복이다. 전체무대에서 악사 앞 왼편을 편중되게 사용한다. 특별한 이유를 모르겠다. 현대의 도시인은 무채색부터 선호한다. 무대바닥은 화이트, 이외는 블랙. 등장인물 삼인의 상의는 톤 다운된 퍼플, 브라운, 바이올렛. 먼저 색채에서 도시에 사는 현대인임을 보여주었다. 작품은 재미있고 통찰력이 보이고 댄서들은 노력했다.

빨간바지, 동그란 선그라스, 포대자루
* 조슈아 퓨 『빅 배드 울프(Big Bad Wolf)』(국립현대무용단 10월13~15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기억에 오래 남은 건 빨간바지였다. 영화 『스위니토드』의 조니뎁이 떠올랐다. 파이를 만드는 여자와 함께. 앞선 『경인』에서 내 악몽의 흔적을 보았던 때문일까.
작품은 속도감 있고 유머러스하며 동시에 스릴과 잔혹함까지 느껴진다. 움직임은 힘있고 부드럽고 끝까지 같은 컨디션을 유지했다. 댄서들은 기본기가 탄탄하고 연기력이 좋고 체력도 뛰어나다. 근래의 한국현대춤의 분위기와는 다른 모습. 한국의 현대춤은 주로 상황 속에 매몰된 사람을 표현한다. 그러니 상황을 설정하기 위해 장치와 무대가 필요하고, 대사가 필요하고, 그러다보니 춤출 시간과 장소는 줄어드는 것. 그래서 요즘 현대춤에서 춤 추는 것 보기가 어려워 진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개인이 역동적으로 춤추며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악당이 포대자루를 들고 잡으러 다녀도 개의치 않는다. 도망다니며 푸념도 하고 놀고 사랑도 한다. 쭈그리고 앉아 신세한탄하지 않는다. 문화차이인가.
빨간바지(악당역이 빨간바지를 입고 나온다)는 악당괴물같은 것이어서 드라큐라, 늑대인간, 연쇄살인범을 섞어 놓은 것 같다. 그의 파트너 역시 괴물. 영화 『스위니토드』에서 이발소 밑에서 파이집을 하던 여자 그대로다. 그러니 요즘 갖은 섬뜩한 뉴스에 오버랩 되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앞서 현시대의 괴물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나. 빨간바지가 포대자루를 질질 끌며 씩 웃는 모습은 미드의 시리얼킬러와 판박이. 악몽리스트에 추가버튼 클릭. 작품은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중 몰랐다. 무엇보다 댄서들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지치지 않고 열심히 춤춘다는 점에서 A.

정면승부
* 유 키타카와 『타이거릴리(Tiger Lily)』, 김지연 『맛〔만〕난대화』(SPAF2017 서울댄스콜렉션 10월11일 대학로예술극장극장 소극장)
‘글로벌 커넥션’이란 프로그램으로 네 작품이 같은 무대에 차례로 올랐다. 첫 번째 작품은 유 키타카와의 『타이거릴리(Tiger Lily)』. 일본 요코하마에서 온 그녀는, 찢어진 드레스같은 혹은 넝마 같은 것을 걸치고 무대중앙에 섰다. 음악은 드럼라이브. 그것은 거의 악기가 아니라 음향으로 이용한다. 댄서는 소리에 맞춰 움직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인데 동작은 단순하고 심플하다. 댄서는 춤을 추며 자신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왜 춤을 추는지 생각하는 듯 보인다. 원숭이 흉내를 내며 뒤뚱뒤뚱 뛰어다니기도 하고 새가 날아오르듯 점프도 해본다. 그렇게 20분간 열심히 뛰어다니며 춤추고 난 마지막은 입고 있던 넝마쪼가리를 벗어 던져버리는 것! 나타난 건 아래위 빨간 속옷! 키타카와는 춤과 정면승부했고, 댄서로서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에게 증명했다.
두 번째 작품은 김지연의 『맛〔만〕난대화』. 한 편의 콩트. 짧은 무용극. 어설픈 남자와 내숭떠는 여자의 밀고 당기는 사랑이야기. 재미있는 소품인데, 보여주고 싶은 것만 살짝살짝 보여주는 느낌. 뭔가 임팩트있는 순간이 필요하다. 약간의 감동과 진심을 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을까.

여자 없는 남자들
* 신정찬·이영훈·주오 지하오 『에피소드#002』, 신규상 『첵갈피』(SPAF2017 서울댄스콜렉션 10월11일 대학로예술극장극장 소극장)
‘글로벌커넥션’의 세 번째와 네 번째 작품이다. 『에피소드#002』에서 세 명의 남자는 남중국해의 해적 잔당 같다. 거창하게 출동했다가 무인도에 표류하는 해적. 그러나 해적도 칼 있고 배 있고 사람들이 있어야 해 먹는 것.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혼란에 빠진다. 문제는 뭘까. 『첵갈피』에서는 세 명의 남자가 모여 비보이 댄스 배틀을 한다. 누가 몇 바퀴 돌 수 있는지, 누가 더 많이 꺽고 멋있는지 겨룬다. 그러나 그것도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맛. 문제는 뭘까. 이 남자들에게는 여자가 없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다. 동명의 유명한 소설집도 있지만, 여자가 없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에피소드#002』의 남자들 눈엔 해변가에 밀려온 마네킹이 여자로 보여 변태왕으로 변해가고, 비보이팀은 점점 과격한 동작으로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러면 진짜 문제는 뭘까.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장면이 없고 거칠고 투박하다는 것. 보여주고 싶었던 건 그저 그런 거였나. 부드럽고 세련되게 춤추면 안될까. 여자 없는 터프한 남자들에게 무리였을까!

두터이 할 곳, 엷게 할 곳
* 마홀라컴퍼니 김재승 안무 『모래의 여자』(SPAF2017 국내초청작 10월14~15일 대학로예술극장극장 대극장)
국립발레단에서 은퇴하고 학교로 옮긴 김주원이 연극무대에 데뷔했다. 인터뷰에서 이런 얘길한다. “연극이 발레보다 관객과 더 직접적으로 소통한다는 느낌이다.” 즉 지금까지 그가 춰 온 발레가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는 얘기. 이런 느낌은 춤추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일까. 요즘 춤공연에서 연기자가 출연하거나 댄서가 직접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그렇다면 춤공연에서 언어의 사용이 ‘전가의 보도’처럼 몇 마디 던져 넣어서 판을 확 바꾸고 관객과의 소통을 고조시키는 비장의 무기로서 기능하고 있을까.
『모래의 여자』는 유명한 소설을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모래구덩이에 빠진 것 같은 현대인을 그려낸 것일까. 남자는 모래밭을 헤매다 구덩이에 빠진다. 거기에는 여자가 살고 있고 남자는 나갈 방법을 모른다. 남자는 말을 하고 여자와 그의 가족들은 춤을 춘다. 여러 장치가 동원 됐다. 커다란 바퀴달린 사다리, 모래를 상징하는 누런 천, 모래에 사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누런 의상. 움직임은 답답하고 여주인공의 역할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남자는 계속 나가려 하고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구성은 단순하고 연출은 이야기에 빠져들 장치를 충분히 만들지 못했다. 관객은 남자와 여자가 소통하지 못함이 답답하고, 대체 어디서 공감하고 작품과 소통할 수 있을지 기다린다. 교감은 이루어 졌을까.
남자의 말과 여자의 몸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대결의 장을 기대했다. 남자는 거칠게 욕을 하며 달려들고 여자도 격렬하게 몸으로 말하며 부딪히는 맹렬한 싸움을 기대한 것이었는데 남자의 말은 짧고 여자의 춤은 감동이 없다. 남자의 대사는 결정적인 무엇이 아니었고, 여자의 춤도 군무도 결정적인 게 아니었다. 춤으로 교감하지 못하는 것이, 말이면 가능 할 것인가.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김주원의 얘기대로 그저 “연극이 발레보다 관객과 더 직접적으로 소통한다는 느낌이” 들뿐인 거다. (이 역시 김주원이 한 말을 이용해서 말장난을 해보는 거다.) 말하는 것은 어렵다. 춤추는 것도 어렵고. 춤 공연에 말을 섞는 건 더 어렵다. 관객과의 소통이 말단이라면 근본은 뭘까. 모든 답은 어디에 있을까. 정답은 춤. 춤을 열심히 잘 추는 것이다. 거기에 해결의 방법이 있다. 즉 춤을 열심히 잘 추지 않는데 교감이 일어날리 만무하다는 것, 가장 중시해야 할 춤은 놓아두고 다른 곳에 집중한 듯한 연출은 춤공연에서 없어야 한다는 것 - 근본이 문란한데도 말단이 잘 다스려지는 일은 없으며 두터이 할 곳에 엷게 하며, 엷게 할 곳에 두터히 함은 있지 아니한 것이다.(其本亂而末治者否矣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未之有也)

진짜 A급
* 아크람칸컴퍼니 『언틸 더 라이언즈』(SPAF2017 10월12~1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아크람 칸(Akram Khan)은 40대 중반.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전체에 출연하는(Full-Length) 작품은 없을 거라 선언했다. 은퇴가 너무 빠른 거 아니냐 묻자 칸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난 실비가 아니다!”
『언틸 더 라이언즈(Until the Lions)』는 압도적이다. 무대 위에 다시 원형의무대를 올려놓고 기묘한 타악과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보컬 속에서 댄서들은 쉴틈 없이 엄청난 체력을 보여주며 고난도의 동작들을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다. 출연하는 캐릭터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힌두의 신들인 것 같다. 여성이었다 남성이고, 동물인 것 같았는데 사람. 이 혼란하고 액션 넘치는 세계는 마치 인류이전의 혼돈기같다. 작품에 순식간에 빠져든다. 지루할 틈이 없고, 계속 변화하고 진화화고 의표를 찌른다. 대충짐작해서 이렇게 저렇게 진행하겠지 하는 순간, 완전 다른 길로 들어서는 구성! 몇 번이나 짐작이 틀린다. 60분은 금방 지나갔다. 그의 기묘한 세계는 새로운 안목을 열어준다. 이 세계는 무엇인가.
칸은 지금 지젤(Giselle)을 가지고 세계 투어중이다. 맞다, 지젤! 칸은 영국국립발레단(ENB)의 제안을 받아들여 새로운 안무로 지젤을 무대에 올렸다. 물론 출연하지는 않는다. 가디언 지(紙)는 ‘매혹적, 웅장한’이라는 수식을 붙인다. 뉴질랜드에서까지 2018년 3월1일 개막한다고 티켓 오픈했다며 난리. 성공적 투어인 듯하다.
『언틸 더 라이언즈』까지 서울에서 세 작품을 보았다. 지젤 공연 소식을 보고 칸에게는 자기자신을 탐험하는 한 피리어드가 끝났구나 하는 감상을 갖게 된다. 『신성한 괴물들』에서 칸은 어린 시절을 소환했고, 춤추기 시작하는 자신을 소환했다. 『데쉬』에서 칸은 고향을 소환했고, 이번 공연에서 까마득한 과거를 소환한다. 즉 『신성한 괴물들』은 나는 누구인가, 『데쉬』는 나는 어디서 왔는가, 『언틸 더 라이언즈』는 인간으로서 시원(始原)은 어디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이다. 그리고는 다시 현재로 백(BACK)! 영국국립발레단과 『지젤』을 공연한다.
처음 『신성한 괴물들』에서 칸을 보았을 때 기겁한 것은 시작부터 끝까지 100M 달리기하는 것처럼 춤추었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체력과 지구력. 오로지 춤으로 보여주고 말겠다는 자세는 공연 끝으로 갈수록 섬뜩한 느낌까지 드는 것이어서 ‘저 사람 쓰러지면 어떡하지’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가 공연할 때도 그랬다. 메스니는 3시간 정도의 공연시간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100M 달리듯이 연주를 했다. 그때 알게 되었다. 진짜 A급, 세계 정상 아티스트의 실력을! 이제 대학로에 칸을 뛰어넘는 강력한 ‘승부사’가 출현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