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8일 인쇄
2017년 1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7년 11월호 통권 501호 |2018년 5월 21일 월요일|
 

미술살롱

 

서예와 장수(長壽)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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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鄭在淑)(미술기자)

요즘 현장을 뛰는 기자들은 대개 노트북이나 스마트 폰으로 취재 내용을 기록한다. 수십 명이 참여하는 기자회견장에 앉아있으면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소음으로 들릴 정도다. 경력이 오래된 선임자들은 아직도 수첩에 받아 적는다. 일명 ‘볼펜 기자’다. 기사 작성 역사도 좀 과장하면 파란만장하다. 원고지에 세로쓰기로 시작해 가로쓰기로 옮아갔다가 컴퓨터를 사용하게 된 편집국 풍경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볼펜 기자로서 즐겨 쓰는 필기구가 붓 펜이다. 몸체에 ‘筆’ 한 자가 선명한 이 붓 펜을 쓴 원조는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라 알려져 있다. 만화가인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즐겨 쓴다. 서울 인사동 터줏대감인 한 화방에서는 이 물건을 아예 ‘문화재청장 붓 펜’이라 부른다. 유 교수는 지니고 다니기 편리한 이 붓으로 부채에 그림과 글씨를 써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를 즐긴다.
붓 펜으로 ‘붓장난’을 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한때 붓글씨를 배우겠다고 서울 인사동을 드나든 적이 있는데 하루 이틀에 될 일이 아니었다. 한 일(一)자 한 자 제대로 쓰는 것도 버거웠다. 나이 들어서 서예에 몰두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붓글씨는 인생 석양에 어울리는 예술이 아닐까 싶다. 혹은 나이가 들어서야 그 묘미를 알아 끝도 없이 매진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지난 달 25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인사동 희수갤러리에서 열린 「소지도인 강창원 100세 기념 서예전」이 있었다. 100세에 전시회를 여는 기록도 희귀하지만 여전히 발랄하고 독창적이며 다양한 작품세계를 수십 점 내놓은 그 열정 또한 놀라웠다. 소지도인(昭志道人)은 1918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평생 세속적 가치와는 담을 쌓고 오로지 붓글씨만을 즐기며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기인이다. 1977년 둘째 아들을 따라 미국 LA로 이주한 뒤에도 옛 스승과 선인의 명필을 임서하며 80년을 하루같이 꼿꼿한 자세로 글씨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전시장을 찾은 국내 후학들은 이 ‘100세 전’이 우리나라 서예계의 큰 경사이자 상징적인 사건이라 평가했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최고령 서예가가 여일하게 글씨로 삶을 밀고 나가고 있는 현장은 백세 시대에 하나의 전범이다. 후학인 서예가 송천(松泉) 정하건 선생은 “서예와 장수의 관계는 연구해 볼만한 주제”라 했다. 서지도인의 글씨를 흠모해온 송천은 “탈속한 도인의 천진난만한 글씨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젊어지는 느낌”이라 했다.
소지도인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딱 한 글자만 쓴다면 어떤 단어를 고르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아름다울 미(美)자를 써야겠지. 글씨의 아름다움에 미쳐 살아온 게 내 인생이니.” 서예와 장수의 상관관계를 푸는 열쇠 말은 혹시 이 미(美)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