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8일 인쇄
2017년 1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7년 11월호 통권 501호 |2018년 10월 22일 월요일|
 

연극살롱

 

가마골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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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길(高勝吉)(연극평론)

부산은 영화의 도시로 유명하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면서 영화제작과 보급은 물론, 영화자료의 보고로서 교육의 첨병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에 비해 연극분야는 초라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산시의 지원 아래 국제연극제를 개최하고 있지만 「부산국제영화제」와는 목표, 규모, 시설에서 전혀 비교가 되지 못한다. 극단과 공연장도 인구 400만 명에 걸맞지 않게 매우 적은 편이다. 전국적으로 이름이 난 극단도 소수에 불과하다. 레퍼토리의 공급은 서울에 의지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형편이다.
만일 가마골소극장이 없었다면 부산연극이 성장하고 명맥을 유지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가마골소극장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부산연극의 고난과 극복의 드라마를 실감할 수 있다.
가마골소극장은 연희단거리패의 모태이다. 이 극단의 설립자인 이윤택이 부산일보 기자라는 비교적 안정된 직장을 내던지고 부산에서 시작한 연극활동의 근거지이기 때문이다. 1986년 부산 광복동에서 둥지를 마련한 가마골소극장은 중앙동, 광안리, 광복동, 거제동, 밀양, 기장군 일광면으로 이전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30년에 이르는 기간에 실험극과 대중극의 두 바퀴 공연이라는 곡예를 절묘하게 연출하면서 「산씻김」, 「시민 K」, 「오구」, 「바보각시」 등 한국연극의 최고 걸작을 세상에 숫하게 내놓았지만 가마골소극장 자체의 운영은 그야말로 간난의 연속이었다. 일시적으로 폐관을 하거나, 예술적 공연만으로 지속하기 어려워서 전문기획자에게 운영권을 넘겨준다거나, 부산이 아닌 밀양연극촌으로 이전하는 악순환을 감수해야 했다.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기 위해 부산에 잠시 들렸다가 가마골소극장을 찾았다. 지난 7월에 부산 인근의 기장군 일광면에 신축하여 개관한 가마골소극장의 규모는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연희단거리패가 신축하여 10년간 운영하다 폐관한 서울 혜화동의 게릴라소극장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지상 5층의 건물로 1층에는 목로주점 ‘양상박’, 2층에는 카페 ‘오아시스’, 이윤주 기념관, 도서출판 도요, 3층과 4층은 소극장, 5층은 배우들의 숙소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1층의 ‘양상박’ 이라는 이름의 주점은 이윤택이 부산일보 기자 시절에 기자 4명과 함께 광복동 입구에 자본금 10만원으로 개점했던 포장마차 술집의 복원이며 2층의 카페는 1970년대 음악다방을 복원한 것으로 배우와 관객이 만나고 다양한 문화적 행사를 개최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기장군 일광면의 가마골소극장도 아직은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남의 건물을 임대한 것이 아니고 극단의 재정적 자립을 통해 신축한 것이어서 다른 극단의 경우보다 여건이 훨씬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극장은 건물이 전부가 아니고 관객의 확보가 선결되어야 한다. 개발 단계의 한가한 어촌에서 부산은 물론, 한국과 세계로 발신하자면 수준 높은 공연으로 관객을 안정적으로 유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밀양공연예술제」를 한국최고의 연극축제로 빗어낸 경험이 있는 극단이니 만큼 가마골소극장의 미래도 낙관적으로 기대해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