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8일 인쇄
2017년 1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7년 11월호 통권 501호 |2018년 10월 22일 월요일|
 

역사살롱

 

구동존이(求同存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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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문(朴赫文)(소설가)

1860년대 일본은 300여 개의 한(藩, 번)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이들 한(藩)은 독립된 나라나 다름없었으며, 각 한의 우두머리인 한슈는 바쿠(幕府)의 지배를 받고 있기는 했지만 사실상 왕이었다. 각 한에는 한슈 아래 무사계급인 조시와 하급무사인 고시 그리고 농공상이라는 신분질서가 엄격하게 지켜졌. 이들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없었다. 단지 자신이 소속된 한이 자신의 나라였을 뿐이다. 이런 일본인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854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일곱 척의 군함을 이끌고 나타나 화친조약을 요구하면서부터이다.
당시 가장 대표적인 반막부 존왕양이(尊王攘夷) 세력으로는 혼슈섬 남단의 조슈한와 큐슈섬의 최남단에 있는 사츠마 그리고 시코쿠섬 남단의 도사한이다. 도사한은 료마와 다케치 한페이타, 조슈한에는 가스라고고로(그의 부하가 이토 히루부미인데 그는 농민출신으로 발탁되었다), 사츠마에는 농민출신인 사이고, 고마츠 등이 있었다. 이들 중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조슈한이었다. 그들은 중신들을 설득하여 존왕양이의 기치를 올리며 막부에 대항하여 권력을 장악한다. 하지만 그들이 새로운 막부가 되는 것을 염려한 사츠마와 이즈미한이 연합세력이 형성하여 조슈한을 교토에서 몰아내고 그들을 고립시킨다.(금문의 변)
‘금문의 변’ 이후 막부는 다시 세력이 점점 강해져서 존왕파는 세력을 잃게 되어 천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는 유신의 기운은 점점쇠퇴하게 된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사카모토 료마다. 도사한의 하급무사인 고시출신인 그는 에도 유학 중 같은 도사한 출신인 다케치 한페이타를 만나 근왕파로 돌아서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다. 스승인 ‘사츠’를 만난 후 사민평등의 사상과 함께 미국과 같은 대통령제를 꿈꾸었으며, 해군세력을 키워서 대외무역을 해야만 나라의 재정이 늘어나고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선각자였다.
료마는 유신 사상의 주체인 사츠마와 조슈한이 원수지간으로 지내면 일본은 변화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두 세력을 화해시키려한다. 두 한은 화해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만나긴 했지만 서로에게 원한이 많아 협상 장에서 자신들의 억울함만 호소한다. 료마는 그들의 억울함은 그대로 두되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같다는 것과 화해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여 결국 조슈한과 사츠마를 화해시킨다. 또한 막부파인 도사한의 한슈인 요도를 설득하여 존왕파로 끌어들인다. 요도는 자신의 가장 절친인 한페이타를 할복하게 한 원수였지만 일본의 이익을 위해 그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 두 사건이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성공으로 이끈 가장 결정적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본과는 위안부, 독도 문제, 중국과는 북핵과 관련된 사드배치 문제 등으로 인해 이웃나라들과 원수처럼 지내고 있다. 그들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임에도 말이다. 결과는 ‘코리아 패싱’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외교적인 것은 없는 것 같다. 시진핑이 즐겨 쓰는 말이 있다. 구동존이((求同存異). 서로 다른 것은 그대로 두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 생각이 같은 것부터 먼저 추구하자는 것이다. 일본근대화의 아버지 사카모토 료마가 추구한 가치도 바로 이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