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7일 인쇄
2018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1월호 통권 503호 |2018년 7월 17일 화요일|
 

동숭문화광장

 

‘느림의 미학’과 ‘빨리 빨리 문화’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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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철(林然哲)(건양대교수, 예술경영)

일본 열도 중 시고쿠(四國) 북동부에 위치한 가가와(香川)현은 인구 100만 명 정도의 작은 현으로 우리나라에는 현의 옛 이름 사누키 우동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지금도 현의 곳곳에는 사누키 우동의 맛집임을 자랑하는 곳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아무리 사누키 우동이 유명하더라도 특별한 비즈니스도 없는데 우동 한 그릇 먹기 위해 찾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주로 외국인 관광객 수십만 명이 매년 가가와 현을 찾고 있으니 이는 작은 섬 나오시마(直島)를 예술 섬으로 재탄생시킨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76)와 예술 섬을 기획한 기업 집단 베네세 덕분이다. 안도가 설계한 지추(地中)미술관을 비롯해,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화가 이우환(李禹煥)미술관, 베네세 그룹의 자체 미술관이 섬의 남쪽에 걸어서 10여 분 거리로 위치해 있다. 이런 미술관들과 함께 호박조각으로 알려진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88)의 작품이 바닷가에 우뚝 우뚝 서 있으니 과연 예술섬임을 실감 나게 한다.
작은 섬(면적 7.8㎢)에서 느낀 것은 예술과 섬의 아름다움에 더해 ‘느림의 미학’이다.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예술과 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구조가 되어있고 운영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미술관의 안내원들은 무서울 정도로 원칙을 지켰다. 최근 영흥도 낚싯배·급유선 충돌 사건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같은 대형 참사가 원칙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사건이어서 미술관 안내원들의 ‘매뉴얼대로 원칙 지키기’는 아직도 인상 깊이 기억되고 있다.
2박3일의 짧은 패키지여행인데다 나오시마 관광은 귀국 비행기 사정상 오전 반나절짜리 자유 관광이어서 28명의 일행은 섬의 미술품들을 보기 위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행이 발휘하려던 ‘빨리 빨리 문화’는 첫 번째 관람 장소인 지추미술관에서 ‘느림의 미학’과 충돌했다. 지추미술관은 섬의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건축가 안도가 땅 속에 만든 공간을 통해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한 안도 건축의 걸작 중 하나이다. 특히 첫 전시실에 있는 모네의 대형 「수련」 작품 5점은 세계적 컬렉션으로 개장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 또 대형 공 모양의 구체(직경 2.2m)와 금박의 나무 조각 배치로 유명한 월터 드 마리아와 빛의 예술사로 알려진 제임스 터렐의 영구 전시 공간은 안도의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이 미술관을 보지 않으면 나오시마 관광은 의미가 없다고 까지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28명의 일행은 누구나 가장 먼저 지추미술관부터 보기를 원했다.
28명이 함께 빨리 움직여야 오전 중에 미술관 3곳을 다 볼 수 있는데 20대 여성 안내원들은 9인 1조로 30분 간격으로 밖에는 입장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비행기 시간 때문에 함께 보게 해달라고 아무리 사정을 설명해도 요지부동이다. 할 수 없이 3개조로 나뉘어 1조가 먼저 보기로 했지만 9명씩 나누어도 한 조는 불가피하게 10명일 수밖에 없었다. 4명의 일행과 6명의 가족이 1조로 편성돼 매표하는데 안내원은 9명밖에 안 된다며 막무가내이다. 10명 중 한 명은 초등학생이어서 아버지가 안고 다니겠다고 통사정을 해도 두 팔로 ‘X’자 표시를 하며 막는다. 할 수 없이 아버지가 관람을 포기해 가족은 졸지에 ‘이산가족’이 됐다. 쾌적한 관람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인원만 입장시키는 미술관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설명과 함께 모네의 「수련」을 처음 관람하는 초등학생이 가질 수 있었던 영원한 추억을 박탈할 만큼 미술관의 관람 원칙 지키기가 중요한가도 함께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두 가지 사안을 놓고 선택하라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막상 미술관 안에 들어가면 고요한 산속 같이 한적한데 “융통성 없게 아버지와 학생 딸을 이산가족 시켜 놓은” 고지식한 원칙주의자 안내원의 태도에 기가 찬다. 그러나 인천공항을 떠나던 날 발생한 유조선과 낚싯배의 충돌사건을 상기하니 고지식한 원칙주의자 안내원의 태도를 부정적으로 볼 수만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두 배의 충돌사건은 왜 났는가. 선장들은 시간 여유를 두고 침로와 속도 변경을 해야 하는 항해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점이 우선적으로 지적된다. 또 급유선은 야간에 2인 당직을 서야 하는데 한 명만 서고 갑판원은 자리 비우고 식당에 있었다는 경찰의 조사결과는 ‘규칙이나 원칙이 있으면 무엇 하나? 지키지 않는데…’ 하는 허탈감이 들게 한다. 제천 화재는 왜 그렇게 큰 인명 피해를 냈는가? 건물 외벽을 가연재로 마감하고 비상구 앞에 물건을 쌓아 놓아 비상구 문을 가리는 등 원칙을 무시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원칙을 무시하고 과적한 것이 근본 원인이었던 세월호 사건이나 이번 화재와 닮은꼴인 의정부 아파트 화재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나 됐다고 원칙을 무시한 대형 참사가 반복되는지 생각하면 우리는 언제 원칙과 기본을 지켜 후진국 형 참사를 막을 것인지 참담한 생각이 든다. 나오시마 관광 당시 모네 만년의 걸작 푸른색 「수련」시리즈를 보면서 ‘일상에서 원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금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지방 미술관의 평범한 20대 여성 안내원이 보여준 저 단호한 원칙 마인드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No rule without exception)”는 속담도 무시하는 안내원의 태도가 얄미우면서도 ‘그 원칙을 지키는 태도의 100분의 1만이라도 급유선 선장이나 스포츠센터 운영자가 갖고 있었더라면…’하는 부러움이 마음속에는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원칙이 무시되는 곳이 어디 그뿐인가를 생각하면 그 부러움은 더욱 커진다.
공연계에서 큰 화재 사건으로 기억되는 「라보엠」공연 중의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화재(2007년 12월 12일)가 난지 만 10년이 지났다. 무대 막이 가연재로 돼있어 일어났던 사고를 생각하면 전국 2000여 곳 중대형 공연장의 무대 막들은 이제 안전한 불연재 제품으로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또 관객 정원 지키기를 비롯해 비상 시 안내 시스템 매뉴얼 숙지 등 공연에 따른 안전원칙을 얼마나 알고 지키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자신이 없다. 원칙이 무너지면 사고는 반복된다. 과거의 사건과 비슷한 유형으로 낚싯배와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는 방법만이 공연장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는 길임을 새삼 깨닫는다.늦더라도 원칙을 지키고 조금 손해 보더라도 속도를 늦추는 지혜가 새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어야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