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7일 인쇄
2018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1월호 통권 503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관무기

 

몸짓과 소리의 밀월여행
- 홍성욱 ·김소연·전미라·김재은




노흥석(盧興碩)(SBS 기자)

* 홍성욱 안무의 『바로크 고즈 투 프레즌트(Baroque goes to present)』(12월19~20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춤과 음악은 연애하는 사이임에 틀림없다. 혼자일 땐 새침하고 도도하다가도 둘이 만나면 다정다감해진다. 둘은 아주 죽고 못 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 잡아 봐라’하다가는 이내 얼싸안는다. 아끼듯 어루만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맞춘다.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격정적으로 휘감긴다. 춤은 눈이 돼 주고 음악은 귀가 돼 준다. 음악은 춤으로 형상을 입고, 춤은 음악으로 소리를 낸다. 소리가 흐느끼면 몸짓이 지척거리고 소리가 재잘대면 몸짓은 가볍게 돈다. 이따금 소리 없이 몸짓만 거닐거나 몸짓 없이 소리만 흐른다. 집착 없이 보내고 두려움 없이 만난다. 바로크 음악이 발레와 함께 지금 여기로 밀월여행을 왔다.
고뇌에 찬 작곡가는 악보를 그리다 구겨서 던져 버린다. 포도주를 병째 마신다. 악상이 떠오른 듯 책상 밑에서 여자가 튀어 나온다. 남자는 여자의 몸에 생명을 불어넣듯 팔을 들어 올리거나 안아 돌린다. 몸짓이 익는가 싶더니 여자는 금세 책상 밑으로 사라진다. 막이 오르면서 남자가 그리는 악보가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천재의 머릿속에서 잠자던 악상이 깨어나듯 누워있던 여자들이 차례로 일어나 기지개를 편다. 여자들은 오선지를 상징하는 듯한 다섯 개의 줄을 잡아당기며 자기의 음가를 짚어낸다. 여럿이 일어나 줄을 잡아 올리거나 잡아 내리며 엇갈리자 오선지엔 산이며 파도며 하늘이 생겨난다.
성냥갑을 세워 놓은 듯한 직육면체가 무대 위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아름다운 악상이 숨어산다는 피아노 건반 같다. 남자는 술래처럼 그 사이에서 악상을 찾아 헤맨다. 피아노 소리와 단둘이라 더욱 외롭다. 한 음이 잠자던 다른 음을 깨우듯 한 여자가 춤을 추며 누워 있는 여자를 깨워 함께 움직인다. 남자가 나와 자리를 일러주자 음의 높낮이가 분명해 진다. 여럿은 이열 종대로 좁혔다가는 이열 횡대로 넓히고 좌우로 움직였다가는 원으로 돈다. 어느덧 낮은음자리표며 높은음자리표가 생겨나고 마디를 갖춰 제대로 된 보표를 이룬다. 남자는 대열을 돌아다니며 소절마다 모습이 된 소리를 탐닉한다.
건반에서 캐낸 음악이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른다. 작곡가는 독주곡에서 시작해 관현악곡까지 작곡가는 열정적으로 작품을 쏟아낸다. 둘이 우아하게 손과 다리를 뻗고 안고 돌다가 여럿이 나와 4열종대로 서서 번갈아 팔다리를 내뻗고 꽃봉오리처럼 두 팔을 들어 올리고는 잰걸음한다. 구원을 갈구하는 아픈 영혼은 음악을 짚고 하늘을 향한다. 풍요를 거둬들일 땐 음악에 따라 몸을 낮춰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경쾌한 율동으로 축제를 즐긴다. 창작엔 끝이 없다. 막 태어난 악상은 새로운 몸짓으로 소리를 낸다. 악보가 무대를 롤러코스터 마냥 타 올라 아래로 내달린다. 바로크 음악과 발레의 밀월여행은 짜릿하고 달콤했다.

* 김소연·전미라·김재은의 『2017 함』(12월20일 춤전용극장M)
해질녘부터 눈발은 날리고 골목길은 좁았다. 초행길이라 네비게이션으로도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극장은 주택가 건물 지하에 있었다. 기분 탓일까? 계단에서부터 무대 앞에까지 온통 검은색이다. 칙칙한 기분은 하루 전 극장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을 때부터 들었다. 공연 소개는 찾을 수 없었고 극장을 소개하는 글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한 줄을 읽기도 전에 사라졌다 한참 만에 나타나서는 약올리듯 자취를 감춘다. 공연머리에 작품을 설명하는 순서에선 사회자가 들고 나온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 춤 전용극장이라 해서 대견하고 기특하게 여겼는데 문외한에게는 불친절하고 어두웠다.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야 개운치 않은 기분이 가시기 시작했다.

김소연 안무의 『감아 찬』 : 4명의 여자들은 눈을 감고 고개를 위, 아래 좌우로 천천히 움직인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시방세계를 마음속 망막에 비춘다. 눈을 감으니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려 허공에 속한 것들을 거머쥔다. 두 팔을 엇갈려 얼굴을 가리고 내 모습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 헛된 모습에서 떠나니 자유롭다. 형상을 비워낸 자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로 꽉 찬다. 근원에서 길어 올린 보이지 않는 생명수는 달고도 시원하다. 비로소 마음이 서로에게 흘러 거리낌 없이 스민다. 하나는 모두가 되고 모두는 하나로 통한다. 기대거나 누워 진정으로 쉰다. 걸림 없는 영혼의 춤이 허공을 가득 채운다.

전미라 안무의 『삭제된…』 :여자는 넷을 상대한다. 그 사이를 지나다니고 붙잡거나 안겼다가는 이내 멀어진다. 관계는 가면이다. ‘나’를 가리고 손을 내밀거나 내민 손을 잡는다. 남의 기대에 맞추는 삶은 벅차다. 몸을 기울여 내뻗은 손끝은 보일 듯 말 듯 파르르 떨린다. 가식의 ‘나’로 어울리며 바라고 좋아하고 미워하니 영혼은 시시각각 좌절한다. 추스리고 일어나도 참고 숨기고 거짓 웃음을 짓는 삶은 외롭다. 누구에게나 넘거나 허물 수 없는 벽을 느낀다. 벽을 기대고 만지며 서로의 벽을 수긍한다. 멀기만 했던 남이 가깝게 느껴진다. 함께 해도 빠지고 모자랐지만 이제는 쉽사리 채워진다. 충족감은 여유와 신명을 낳는다. 차분히 벽을 마주하고는 ‘나’를 보고 ‘우리’를 만난다.

김재은 안무의 『달, 조각』 : 하늘 향해 들어 올린 다리들이 달빛 아래 소리 없이 수근거린다. 매끈한 각선미하며 수줍고 조심스러운 발동작이 딱 여자들의 얘기다. 여자가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ㄱ’자로 꺾어 내리고는 옆으로 돌고 급히 걷는다. 몸을 기울였다 세우는 듯하다가는 옆으로 돈다. 외롭고도 자유로운데 사위마다 한이 비친다. 네 명의 여자는 각각 하나씩 등을 밝힌다. 여자들은 그 앞에 서고 앉고 돌며 어린 생명의 불빛을 하늘처럼 보살피고 받든다. 넷은 선녀의 춤을 춘다. 발끝마다 꽃이 피고 손끝마다 새가 날아든다. 하나는 꽃술이 돼 수줍게 숨고 셋은 꽃잎이 돼 살포시 벙근다. 달이 차오르면 그곳엔 천상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