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7일 인쇄
2018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1월호 통권 503호 |2018년 7월 17일 화요일|
 

공연평

 

춤이라는 목표를 향해 떠난 두 유목민의 종착지
- 권예진&사라탄·제임스 전&김지연




이동우(李東祐)(춤평론)

* 권예진&사라 탄(Sara Tan) 공동안무의 『비 롱잉(BE LONGING)』(12월3일 포스트극장)
한 사람이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 그는 자신이 내려왔던 계단을 올려다보며 누군가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앞에 나서길 주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 한 명이 나타난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입구로. 관객들은 이 둘 사이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줄 알았지만 서로 연관이 없으며 겉돌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각자는 상수와 하수에 때론 앞뒤로 겹칠 때도 있고 각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할 뿐이다. 그리고 어느덧 2인은 1조가 된다.
권예진과 사라 탄은 각각 한국과 싱가포르 국적의 신예들이다. 그리고 『비 롱잉』은 그들의 첫 협동안무작이다. 국적과 언어 그리고 정서 등 문화적 배경이 다른 두 사람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생소함과 서투름, 충돌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둘은 브뤼셀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활동하며 영어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등 중립적인 환경과 수단으로 서로를 알아가게 되면서 종교 면으로도, 예술의 지향점도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 롱잉』은 그런 그들의 이야기다. 문법적으로는 틀리지만 한 의미로만 인생을 정의할 수 없는 제목에 담긴 다원적 의미답게 논리와 이치만으로 해석할 수 없는 삶 속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어떠한 인연이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은 채 각자의 삶의 과정의 파도타기를 하다가 발견한 춤이라는 목표를 향해 도착한 두 동양인의 종착지라 할 수 있는 벨기에, 브뤼셀이라는 중립지대는, 이 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넘어 글로벌해진 동시대 사람들에게서 ‘고향’이란 무슨 의미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퍼뜩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권예진과 사라 탄은 지역적, 공간인 관념에서 벗어나 환경의 주체가 되는 인간임을 강조하며 호모 노마드 (Homo Nomad) 즉 ‘유목민’이라는 보다 글로벌한 단어를 작품의 콘셉트로 택했다. 유목하는 중 맺게 된 특별한 인연을 그린 『비 롱잉』이 공연되는 동안 시종 김재진의 「만남」이 꼭 어울리는 작품이라 생각한 것은 이 작품의 깊은 내면에는 결국 어떠한 작품이든 인간의 이야기며, 인간이 영원한 주제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통째로 그 사람의 생애를 만나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아픔과, 그가 가진 그리움과
남아 있는 상처를 한꺼번에 만나기 때문이다.
- 「만남」 김재진

* 제임스 전&김지연 공동안무의 『에너지 버스』(11월11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존 고든은 자신의 저서 「에너지 버스」를 통해 인생을 손님을 태운 버스 운전기사에 비유한다.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인생의 과정을 지나는 동안 여러 정류장을 거치며, 승객이 존재하기 때문에 버스가 존재하듯 개개인의 인생 과정 중에는 반드시 누군가와 반드시 함께 해야 하며, 활력이 있는 주도적인 인생을 위해서는 자신은 물론 함께 하는 공동체를 긍정의 에너지로 이끌어야 한다는 진취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자기개발 부서에 있을법한 소위 전략서적이다. 이러한 책을 기초하여 제임스 전과 김지연이 공동 창작 재해석한 발레로 창작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2016년 「서울무용제」 자유참가부문으로 처음 선보였고, 이번 11월11일 두 차례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의 공연은 제임스 전이 이끄는 발레 아이리스 2017년 정기공연이기도 하다. 그러나 존 고든의 원작과는 달리 구체적인 이야기와 캐릭터 설정이 없이 대중음악에 맞춰 각 장면이 주는 감각적인 분위기를 전달하는 형식으로 새롭게 재해석 한 발레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구성 때문에 발레의 뮤지컬, “발레컬”이라는 합성어를 수식어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 어떤 음악도, 심지어 무음까지도 춤 반주음악이 될 수 있듯, 그 어떤 이야기도 춤 작품의 참신한 대본이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에너지 버스』는 일깨워주고 있다. 사실 대부분 안무가들이 문학작품에 연연하는 이유는 예술성과 대본에 대한 안정성 때문이다. 그러나 춤으로 표현 할 수 있는 대본을 순수 문학작품의 장르에서 지경을 넓혀 그 어떤 것이라도 안무가의 상상력만 있다면 텍스트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레 『에너지 버스』는 보여주고 있다.
문학서적을 찾는 독자들은 줄어드는 반면 기능성 서적 독자들만 늘어간다는 우려를 나타내는 오늘날, 춤계조차 이러한 대중적 추세에 편승하는 듯해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성은 어떤 소재를 선택하느냐 보다는 그 어떤 소재일지라도 그 재료를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른 것이다.
원작에서 발견하는 긍정이 넘치는 에너지와 현실에 부딪치는 좌절이 반복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작품에 반영하기에는 아직 발레 아이리스 단원들이 젊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발레 『에너지 버스』가 수많은 창작 발레작품들 중에서도 크게 눈에 띈 또 하나의 이유는 제임스 전의 세월을 거스르는 에너지와 녹슬지 않는 기량 그리고 안정적으로 이끌어간 연륜이 모두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