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7일 인쇄
2018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1월호 통권 503호 |2018년 9월 26일 수요일|
 

관무기

 

그래도 사랑을 믿는다
- 김보람·안성수




권경하(權炅河)(북쇼컴퍼니 대표)

*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김보람 안무 『바디콘서트』(12월7~10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국립현대무용단 안성수 안무 『투오넬라의 백조』(12월15~17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1. 시즌즈 그리팅스!(Season’s Greetings!) A
런던출신 팝가수 샘 스미스(Sam Smith)의 노래가 울린다. 쌉싸름한 보이스, 아름다운 가사, 부드러운 멜로디. 음악처럼 춤추며 길을 건너던 여성은 교차로 모퉁이에서 한 남자와 부딪힌다. 찰라의 순간. 둘은 음악을 나누고 손잡고 춤을 추며, 솟구쳐 도약을 하고 사랑의 순간을 만끽한다. 순간은 빅뱅처럼 폭발하며 음악과 춤을 통해 시공간으로 확장된다. 아이폰에 관심 없어도, 그 감성에 빠져 들지 않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필연적인 우연한 만남을 꿈꾼다. 딱 부딪히는! 최신형 아이폰을 구비하면 저 짜릿한 만남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2. 무대가 끝나고
잽싸게 빠져 나가지 못했다. 순식간에 ‘관객과의 만남’의 자리가 펼쳐졌고, 어정쩡한 스탠스로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학로예술극장 김보람 공연이 끝났을 때였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의 『투오넬라의 백조』 공연 후에도 마찬가지. 가장 안쪽자리에 쿡 들어 앉아 있어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공교롭게 내가 앉은 줄의 관객들은 대부분 대화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바로 옆자리의 여자분은 과감하게 앞좌석을 넘어가는 시도에 성공 했지만, 나로서는 가당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앉아 있어 보기로 했다. 급한 일도 없었다. 요즘엔 공연 끝나고 재빨리 ‘만남의 자리’ 까는 게 유행인가본데, 그 까닭이 궁금해진다. 안무와 연출이 얼마나 친절하게 ‘썰’을 푸는지가 중요한 평가기준인가. 관객들은 대체 뭘 물어 보는 걸까. 그러나 질문은 같은 것이었다. 김보람에 대한 질문이나 안성수에 대한 질문은 같았다. 물론 궁금한 장면과 디테일은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너는(안무는, 연출은) 뭘 의도 한 거니? 그게 무슨 뜻이니?”라고 묻고 있다. 무대 위에서 재미를 주기위해 한 동작에 대해 객석에선 심각하게 의미찾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보람에게 묻는다. ‘초록색 마스크를 쓴 사람이 하나 있는데요, 왜 그 사람은 따로 춤을 춰요? 무슨 의도죠?’ 또 다른 안무에게 ‘무대 끝까지 한꺼번에 뛰어나오는데 뭘 표현하신건가요?’ 안성수에게 묻는다. ‘한국춤이 나오고 국악도 나오는거 같은데 왜죠?’ ‘백조는 뭘 상징하죠?’ 질문의 요점은 이런 걸까 - 나는 네가 뭘 의도 했는지 알고 싶어. 내가 느낀 건 얘기 하지 않을거야, 틀리면 어떡해, 그러니 일단 너의 의도를 말해봐, 맞는지 비교해봐야겠어! 난 정답을 맞추고싶어!
이런,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있나. 현대무용 공연에 와서 정답 맞추기를 하다니. 한국사회전반에 뿌리깊게 내린 ‘정답증후군’ - 모든 것에 정답이 있다는 굳은 믿음. 한국에는 패션에도 정답이 있어서, 학생들은 모두 포대자루같은 벤치패딩을 입는다. 다른 거 입으면 땡! 선거 때도 모두 대세가 뭔지 눈치를 본다. 대세가 정답. 독서도 유행하는 책을 산다. 대세증후군! 정답증후군! 그러면 예술도 그럴 것인가. 아니다, 현대예술은 다르다. 현대미술 현대음악 현대무용 등 ‘현대’ 들어간 것은 그런 획일주의, 권위주의 말고 개인의 자유재량으로 표현하고 즐기자는게 기본 바탕이다. 왜 여기 와서 안무자의 의도가 알고 싶은 것인가. 안무자는 투오넬라의 백조든지, 핀란드 얘기든지, 뭐든지 춤 만드는 영감을 위해 이용한 거고 무대를 끌어가는 장치로 사용한 것 뿐.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안성수의 춤이 핀란드 설화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 졌을 리가 없는 것 아닌가. 김보람의 무대도 마찬가지였다. 비욘세의 음악에 신나게 춤출 때 고개를 돌려 관객석을 보았다. 젊은이가 대부분인 관객들은 진지하게 춤을 보고 있다. 뭔가 숨은 의도를 찾아내려는 듯. 그저 신나게 박수치고 환호성을 치면 좋았을 것을, 그저 즐기면 족할 것을 의미를 찾고 있다니, 도대체 이 ‘엄숙주의’란 뭐란 말인가. 대중예술이면 그냥 신나는 거고 현대예술이면 무조건 심각한 거란 ‘이분법’은 ‘정답증후군’과 더불어 한국의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어디서부터 문제일까.

#3. 깊이에의 강요
문제는 이런 관객들의 태도에 안무자가 말려들면 안 된다는 것. 앞으로도 계속 관객과 대화해야 할 테고 사람들은 왜 왼팔이 아니고 오른팔이냐고 물을 텐데 어쩔 것인가. 안무자가 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스피치교육을 받아야 할까. 춤추는 사람에게 일일이 너의 의도를 ‘말하라’는 자리도 우습고 성실히 답변을 짜내는 것도 우습다. 말 잘하는 자가 춤 잘추는가. 춤을 말로 하는가. 이건 관객에 의한 ‘깊이에의 강요’ 아닐까. 그래서 나는 혹시 어떤 안무자가 있어 ‘자신의 의도’에 대해 고민에 빠져 매 동작마다 말로 의미를 부여할까 무서운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매우 재미없을 것이니 그런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드린다. 혹시 옛날 쥐스킨트의 소설처럼 ‘무슨 뜻이냐’ 물어보며 ‘깊이가 없네’라는 둥 궤변을 늘어 놓으면 그건 헛소리라 치부하시길.

#4.키오니, 마리 그리고 김보람
김보람의 무대를 보며 유튜브 1억2천만 뷰를 돌파한 저스틴 비버의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 뮤직비디오가 떠올랐다. 거기에는 재미있는 커플댄스가 나온다. 댄서는 키오니와 마리. 마리는 콜로라도 시골 출신, 13살 때부터 춤을 췄다. 성인이 되어 샌디에고로 건너왔고 들어간 무용단에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했다. 그들은 같이 춤추고 같이 공부하고 같이 영상을 만들었다. 그들은 공연을 하고 많은 스타들의 뮤직비디오에도 참여한다. 「러브 유어셀프」는 노래도 좋지만 이들의 춤은 매우 재미있다. 엄청난 조횟수에는 이들의 춤이 결정적이다. 몇 번이나 다시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김보람도 부부무용수,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K-POP과 더불어 돌풍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김보람의 춤은 기본적으로 뮤직비디오용 힙합댄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현대무용 연출가를 음악파와 비음악파로 나누면 김보람은 백프로 ‘음악파’. 아마 김보람은 춤보다 음악에 먼저 빠졌고 그 음악을 소화해 내느라 춤에 빠진 것 같다. 그의 무대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그는 클래식부터 힙합까지 여러 음악을 총출동시켜 무대를 만들었는데, 그는 음악에 맞춰 움직임을 분절해 대응하거나 기발하게 변형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들은체 만체하기도 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무대. 작품은 뮤직비디오의 백댄서 공연과 현대무용의 경계선을 왔다갔다 한다. 아슬아슬하기보단 현명한 것이겠다. 김보람이 차지한 중간지대의 영토는 넓어질 것이다. 언젠가 그가 출연하는 1억 뷰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기를!

#5.뷰티풀 투오넬라!
핀란드 설화는 알지 못한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더군다나 스토리를 따라갈 생각은 없다. 무대 위의 소품들과 출연하는 배우들이 그곳 냄새를 풍긴다. 첼로, 드럼, 피아노 - 트리오의 연주는 수준급. 음악만 따로 들어도 될 정도다. 시벨리우스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헷갈려 지인에게 구박을 받았지만 들어보니 알겠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연주들, 표가 나게 드러나기도 하고 완전 다른 색깔을 보이기도 한다. 클래식, 프리재즈, 현대음악으로 변주된다. 세련된 음악과 연주다. 원래 큰 무대에 올랐던 것을 규모를 줄인 거라 하는데, 예전 것은 못 보았으나 이것보다 나을 것 같지 않다. 작품은 오밀조밀하게 짜여져 있고 오브제는 적절하게 사용되어 지겹지 않다. 소극장용으로 정교하게 세팅되어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잘 보이고 감정선이 느껴진다. 디테일이 살아있다. 소극장공연의 특장점!
하기야 무용수의 실력이 부족하다면 급실망으로 치달았겠지만 투오넬라의 댄서들은 A급. 근육들은 어디서 멈추고 꺽여야 하는지 안다. 어떤 동작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가볍게 말단을 제어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하지 못한 우문 하나 - 작품 구상을 마치고 무용수를 선발했는가 아니면 구상단계에서 이미 선발되어 구상에 영향을 미쳤나? 사실 하나마나한 질문이겠다. 답은 둘 다 일 것이다. 작품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완성되는 것 아니겠는가. 알고싶은 건 살짝 어느 쪽으로 기울었나 하는 것이다. 질문을 바꾸면 ‘무용수의 선발이 작품 완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궁금증이겠다. 질문을 또 바꿔보면 ‘한 작품이 안무자의 것인지 무용수의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이건 투오넬라의 무용수들이 아름다워서, 저들이 바뀐다면 같은 감동을 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인 것이다. 그만큼 여성 댄서들은 뷰티풀했다. 즐겁고 아름다운 무대. 인상적인 춤 세 가지를 소개한다. 제목이 없으니 춤마다 성격에 따라 멋대로 이름을 붙여 보았다.
「잠자는 백조」 첫머리에 나오는 남성 1명과 여성 3인의 사인무. 인트로 혹은 서곡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빠르지 않게 모데라토 정도의 속도로 팔을 둥글게 올리며 군무. 작품 전체의 성격을 보여준다. 이 춤이 공연을 편안히 볼 수 있도록 마음을 열었다. 작품과 무용수에 믿음을 주는 춤.
「물결 위의 백조」 여성 삼인무. 여성무용수 삼인이 길고 흰 장갑을 끼고 백조를 연기한다. 분절되어 꺾이는 마디가 인상적. 세 명의 6개의 팔이 순식간에 교차되어 백조가 되었다가 파도가 되고 물결이 된다. 세밀한 움직임이 아름답다. 소극장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호사.
「춤추는 백조」 여성 독무. 하얀 깃털로 만든 백조의 날개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 춤추는 백조를 연기한다. 날개 하나가 몸을 가릴 만큼 크다. 작품의 하이라이트! 백조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르다 지쳐 쓰러진다. 손을 오무려 깃털사이로 백조머리처럼 내미는 장면은 동화 속 이야기같다.

#6. 시즌즈 그리팅스!(Season’s Greetings!) B
다시 새해다. 점점 빨리 해가 바뀐다. 사랑이란 게 길모퉁이에서 부딪히는 청춘남녀의 전유물은 아닐 터. 좋은 문장을 만나고, 좋은 소리를 듣고, 좋은 춤 보는 것 모두 사랑이다. ‘리얼 러브 이즈 네버 웨이스트 오브 타임(real love is never waste of time)’ - 샘 스미스(Sam Smith) 「팰리스(Palace)」의 노랫말이다. 그래서 올해도 다시 한 번 사랑을 믿어본다. 사랑을 믿는다. 사랑을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