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7일 인쇄
2018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1월호 통권 503호 |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음악살롱

 

로저 와그너 합창단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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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만(李相萬)(음악평론)

1957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고 승전국의 기세를 높일 때였다. 그러면서 메이드인유에스에이(Made in USA)는 온 세계에 새로운 제품으로 휩쓸었다.
1945년에서 48년까지 미국의 군정을 겪은 우리나라는 정치 문화 교육 예술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미국의 바람이 거세었다. 그중에서 합창 분야는 1947년 창단한 로저 와그너 합창단과 로버트쇼 합창단이 미국에서 탄생하여 합창음악의 새 주류를 형성하였다. 로저 와그너 합창단은 서부에서 로버트쇼 합창단은 동부(조지아)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특히 서부지방은 영화산업과 관광산업의 융성으로 할리우드, 디즈니랜드 등 새로운 문화의 온상으로서 정착하게 된 시기였다.
1914년 프랑스 디종의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를 따라 일곱 살에 미국으로 이민한 로저 와그너는 열두 살 때 교회의 보이스 소프라노와 오르가니스트, 합창장의 경력을 쌓으면서 천재 음악가로서의 두각을 나타낸다. 변성기에 들어서서 와그너는 프랑스로 유학, 당시 프랑스의 거장 마르셀 뒤프리에를 사사한다. 5년간 그 밑에서 철저한 훈련을 받는다. 당시 미국은 좋은 교육기관과 스승이 없어서 유럽에 유학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는 시대였다.
1937년 미국으로 돌아와 성요셉교회의 지휘자가 된다. 이때만 해도 와그너는 프랑스 음악의 전도사 역할을 담당한다.
1947년 로저 와그너는 자기 이름을 내건 합창단을 조직한다. 미국의 민요, 그리고 스테판 포스터의 미국음악, 디즈니랜드의 새로운 영화음악 등을 프랑스 고전의 섬세하고 심도 있는 음악과 접목시킨 감성적이면서도 대륙적인 합창음악을 만들어낸다.
특히 LP음반의 탄생과 더불어서 그의 음악은 전 세계로 퍼지게 되어 문화산업의 메이드인유에스에이를 대표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로저 합창단의 음악은 특히 라디오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전파를 타고 들려져 한국의 청중들이 미국을 좋아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로저 와그너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딸 지미가 합창단을 이어받았다.
그는 철저한 합창음악 교육을 받았고, 세계적 거장들을 사사했고, 특히 지휘에 있어서는 아버지를 버금가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 시대의 독점 역은 시대가 바뀌어 유지할 수가 없었다.
지난 12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나로서는 오랜만에 이 합창을 접하였다. 아버지가 닦아놓은 기반과 빛깔을 유지하면서 나름대로의 심도 있는 음악의 해석을 통해 특히 나이가 든 청중들은 감회가 깊은 연주회였다. 단지 우리나라 합창단의 수준과 청중의 귀도 옛날과는 달라졌고, 단원들도 대부분 나이가 들어 음악의 위세도 한풀 꺾였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 합창단은 음악적으로 깊고 세련된 합창단이다.
한국출신 독창자도 돋보였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음악적 깊이와 한국 사람의 좋은 소리와 정감을 담은 진정한 한국다운 합창단의 출현을 이 합창단을 통해 타산지석으로 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