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7일 인쇄
2018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1월호 통권 503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연극살롱

 

12인의 성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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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길(高勝吉)(연극평론)

해가 바뀌어도 촛불혁신과 적폐청산의 여망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예술계의 블랙리스트 사건도 사안의 비중은 다소 낮을지 몰라도 오랫동안 누적된 불공정 사건인 만큼 한 번에 해결되기가 어려울지 모른다.
정치와 사회의 비합리성을 폭로하는 데는 창작극이 유리하지만 단시일에 그러한 창작극을 발표하기가 어렵다는 사정을 고려하여 연출가들은 유명한 명작의 번안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한 번안극 공연 중의 하나가 극단 산수유가 공연한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다.
이 공연의 원작은 너무나 유명하다. 미국의 방송극작가 레지날드 로즈(Reginald Rose)가 CBS 방송의 1시간짜리 텔레비전 드라마 대본으로 1954년 9월20일에 방송한 것인데 예상 외의 높은 평가를 얻게 되자 3년 후에 명배우 헨리 폰더가 제작, 주연을 맡아 영화화했으며 무대극으로는 개작을 거쳐 오늘날까지 세계의 수많은 국가에서 반복적으로 공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표된 최고 명작영화의 하나로 소개되었다.
이 작품은 미국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배우좌(俳優座)를 비롯한 여러 극단에서 번역극으로 공연했으며 1990년에는 한국에서 「웃음의 대학」 등으로 잘 알려진 미타니 고우키(三谷幸雄)가 「12인의 우아한 일본인」이라는 제목으로 무대화했다. 2007년에는 러시아에서도 이 작품의 영화화가 이루어졌다. 배심원의 인생항로에 바탕을 두고 사회적 환경과 정의의 문제를 함께 다루려 한 진지한 드라마라는 것이다.
극단 산수유의 「12인의 성난 사람」도 원작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번안을 행하고 있다. 말하자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한 소년의 범죄가 12인의 배심원들에 의해 유죄에서 무죄로 뒤바뀌면서 진실을 발견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대가 한국의 어떤 배심원 회의실로 설정되어 한번 회의가 시작되면 결론이 만장일치로 끝날 때까지 절대로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리고 원작에서 12인의 배역이 모두 백인 남성인데 비해 극단 산수유의 공연에서는 3인의 배역을 여자가 맡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이것은 백인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여성이 지배하는 세계적 변화를 암시하는 것으로 의미심장하다.
또한 산수유의 공연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배심원의 의견이 유죄에서 무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아무리 진실을 밝히기 위해 냉엄한 어조와 눈길을 주고 받는다고 해도 인간은 자기가 지닌 환경, 편견, 경험의 범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극 중에서 마지막까지 유죄를 고집하던 배심원 3번이 아들의 사진을 부수고 팔에 얼굴을 묻고 울면서 ‘무죄야 무죄’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은 우리들에게 암시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한국사회는 지금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있다. 연극인과 직결된 블랙리스트 사건도 감정에 치우쳐 있는 채로 해결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사건이 이성이 아닌 감정이나 편견으로 해결된다면 한국연극계는 또다시 멍에를 지고 힘든 세월을 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