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7일 인쇄
2018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1월호 통권 503호 |2018년 9월 26일 수요일|
 

역사살롱

 

‘온달’의 역사적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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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문(朴赫文)(소설가)

요즘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사이에서 오가는 외교적 상황을 보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면서 군사 대국인 한국의 위상은 너무 처참하다. 대한민국 국민인 것에 대한 자존감이 짓밟히고 마치 식민지 시대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감정마저 느낀다. 그나마 군사적인 문제로 얽히지 않는 일본과는 ‘위안부 합의문’ 문제로 거의 국교를 단절한 것 같고, 미국과 중국에는 거의 비굴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 민족은 오천년이라는 긴 역사를 이어 왔는데 때로는 굴욕적인 순간도 맞보긴 했지만 그렇지 않은 시기도 많았다. 조선시대의 외교정책이었던 ‘사대주의’가 마치 우리 민족의 오랜 모습인 것처럼 인식하며 현재의 상황에 체념하려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천년 역사 중 사천년을 이어왔던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가 우리역사의 중심이었던 시절은 진취적이고 당당한 기상을 보였다. 단지 우리가 이들 왕조에 대해서 잘 말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아서 잊고 있을 뿐이다. 이번 호에선 그중 한 인물인 온달에 대해 살펴보자.
고구려, 아니 우리 민족사 전체를 통해 가장 영웅적 인물이 누구냐고 질문하면 대부분 광개토 대왕을 꼽는다. 그는 산골마을인 환인에서 고구려가 건국된 이후 산골 너머의 만주 평원까지 영토를 넓히고 미천왕 때 점령했던 낙랑, 대방군의 영역을 확실하게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한 위대한 영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이 다스릴 때는 중국이 통일되지 못했다. 위, 촉, 오 삼국으로 분열됐던 중국이 잠시 진나라로 통일되지만 또다시 남북조로 분열된 기간 동안에 그는 마음껏 영토를 넓힐 수 있었던 것이다. 분열된 중국이 통일된 이후 그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인데 그 힘든 상황을 이겨낸 인물이 광개토대왕 이상으로 영웅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양왕, 고건무, 을지문덕, 연개소문 등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업적을 쌓았음에도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이 하나 있다. ‘온달’이다.
고구려 건국 이후 고구려를 침공한 가장 강한 나라는 북주였다. 북주는 350년간 선비족을 비롯한 다섯 오랑캐들이 16국을 세우며 싸웠던 중국 북쪽 지역을 통일한 나라다. 영웅적 군주였던 무제 우문옹은 북제를 멸망시키고 북조를 통일했다. 그의 부하 중에는 훗날 수나라를 세웠던 양견도 있었다. 우문옹은 남조와의 통일 전쟁을 치르기 전에 배후를 안정시키기 위해 고구려를 침공했다. 사실상 통일 중국이 공격한 것이다. 이를 물리치고 다시는 고구려를 침공하지 못하게 만든 인물이 온달이다. 지면 관계상 온달의 출생비밀 등 자세한 것을 설명하지 못하지만 당시 정세를 볼 때 이는 정말 대단한 사건으로 이 패배 이후 무제는 죽고 북주는 망하여 양견에 의해 수나라가 탄생하게 된다.
우리는 ‘온달’이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고 단지 평강공주와 결혼한 신데렐라 같은 존재로만 알고 있는데 실상 그의 활약은 대단하였다. 만약 그가 신라와의 한강유역 쟁탈전에서 전사하지 않았다면 신라는 한강유역을 잃게 되어 훗날 당나라와 연합군을 형성하지도 못하였을 것이며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에 가졌던 백제와 신라에 대한 지배력을 되찾아 당나라에 맞설 수 있었을 것이고 민족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