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살롱

무용가 최승희(1911~1969), 화가 나혜석(1896~1948), 작가 김명순(1896~1951)은 ‘신여성(新女性)’이라는 한 단어로 묶이던 예술가였다. 신여성은 개화기 때 신식 교육을 받고 교양을 쌓은 여자를 이르던 말이다. 사회·정치·제도적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자유와 해방을 추구한 근대 시기에 새롭게 변화한 여성상이라 풀이된다. 1890년대 이후 출현해 잡지와 신문 등 언론 매체에서 1930년대까지 널리 쓰였다. 여성 문화인을 지칭할 때 굳이 ‘여류(女流)’라 구분하던 잣대와는 다른 진취적 기상이 엿보이지만 역시 모순에 처한 조선 여성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지난해 12월21일부터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신여성 도착하다」(4월1일까지)는 근대 시각문화에 등장하는 신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한국 근대성을 여성의 관점에서 조명한 국내 첫 전시다. 500여 점 다양한 시청각 매체를 입체적으로 구성해 재미와 의미, 두 측면에서 관람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한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 단발머리를 한 여성들이다. 이름 하여 ‘단발랑(斷髮娘)’이다. 1920년대 단발머리는 ‘나, 독립된 인격체요’ 선언하는 1인 시위로 받아들여졌다. 쪽진 머리를 풀어 자르는 일은 여성의 의지를 보여주는 담대한 행위였다. 이들은 안방마님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집 가장 깊숙한 곳에 묻혀 살다가 머리를 자르고 거리로 나섰다. 양주남 감독의 1936년 작 영화 「미몽」에서 여주인공 애순은 “나는 새장의 새가 아니야”라고 외치며 가족을 남겨둔 채 집을 뛰쳐나간다.
신여성은 남성만이 점유했던 다양한 영역에 도전했다. 미술, 무용, 문학, 음악 등 예술 분야는 신여성에게 일종의 탈출구였다. 최초의 여성 화가이자 문인으로 꼽히는 나혜석은 여성의 주체성을 주장한 근대 여성운동가로 더 기억된다. 최근 출간된 「조선여성 첫 세계일주기」는 “여자도 인간이다”를 외친 논쟁가로서의 나혜석을 재조명했다. 그는 “양처현모는 남성 본위의 교육이며 여성을 노예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비판했다. 이들 신여성에 대한 새 해석을 작품으로 시도한 현대 여성작가들의 영상과 비디오 설치물이 신선하다. 그들은 2018년을 살고 있는 여성들은 저 시대로부터, 신여성으로부터 얼마나 발전했는가, 되묻는다.
「신여성 도착하다」의 전시장을 나서며 소설의 한 구절이 입가를 맴돌았다. 이번 전시에도 등장하는 여성 혁명가 주세죽(1901~1953) 등을 다룬 조선희 작가의 「세 여자」 마무리 부분이다. 조 작가는 주세죽을 비롯한 허정숙, 고명자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훑은 뒤 세 여성의 삶을 한마디로 “혼자 몸으로 역사를 상대했다”고 썼다. 어쩌면 이 전시에 등장한 모든 신여성이 그러했는지 모른다. 유토피아를 찾아 삶을 던졌던 우리의 어머니이자 할머니 세대에게 큰 인사를 올린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여성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