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산책

2015년 말, 강남의 성암아트홀에서 열린 한 공연을 보러 갔다가 객석에 떨어진 공연 전단지를 우연히 집어 들었다. 그 종이에는 「장금도의 춤 재발견」이라는 공연에 대해 소개되어 있었고, 선보이는 작품 중에는 김백봉 선생이 창작한 신무용 『부채춤』보다 더 오래된 『권번 부채춤』이 있다는,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되어 있었다. 보고 싶은 마음은 컸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이 공연을 관람할 기회는 놓쳤지만 머릿속 한켠에 언젠가 이 춤을 보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꿈이 1여 년 만에 이루어졌다. 2017년 초, 『권번 부채춤』의 전수자인 신명숙 대진대학교 교수가 기획한 「춤, 부채로 말하다」 공연에 평소 지인이었던 홍경희 전 인천시립 단장의 소개로 사회자로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이 공연에서 현재 한국에 소개된 다양한 부채춤을 장인숙(김백봉 류), 최신아(북한부채춤), 홍경희(오방 부채춤), 홍은주(신 부채춤)에 의해 선보였다. 이 중 주목을 가장 많이 끈 작품은 단연 『권번 부채춤』이었다. 이 춤은 다른 작품과는 달리 합죽선을 양손에 쥐고 부채를 접는 일 없이 「남도 굿거리」에 맞추어 군무와 독무를 번갈아가며 추는 독특한 형태였다. 소박했을 원래의 형태보다 시각적인 화려함을 주기 위해 소박한 부채와는 달리 화사한 색상의 의상과 종이꽃으로 만든 꾸밈 족두리를 썼다. 그리고 공연 중간 중간에는 초기 『부채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상영하여 신무용 100주년을 즈음, 다시금 춤의 창작정신을 생각게 했다.
『권번 부채춤』을 전수한 장금도 명인은 군산의 소화 권번의 기생출신으로 이곳에서 이 춤을 배웠으나 권번의 폐쇄, 해방과 전쟁 그리고 결혼 등의 안팎의 변천사로 인해 예기의 활동을 접게 되면서 그간의 춤이 사장 될 뻔한 것을 신명숙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권번 부채춤』은 1930년대 장금도 명인이 소화권번에 입소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해 있었다고 한다. 이 춤의 기원이나 창시자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조선 기생에 관한 여러 사진자료를 통해, 또한 군산이라는 지역이 식민지 초기에는 쌀 수탈의 기지로, 후기에는 자본주의 상품의 소비시장이었음을 미루어 볼 때, 일본인들의 잦은 왕래로 자연스런 외래 문화가 유입되면서 미친 영향 중 일본식 부채춤도 식민지 중, 후기 정도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개인적 추측을 해보았다. 『권번 부채춤』 이전의 조선의 그 어떤 춤을 보더라도 부채를 양 손에 쥐고 추는 춤은 볼 수 없기 때문이며, 조선이 식민지화 되면서 샤미센을 연주하는 조선옷차림의 기생 사진이라든지 탬버린을 들고 서양춤을 추는 기생, 전기가 조선에 도입되자 창작한 『전기광무춤』, 단발머리 스타일 등, 거시적인 안목으로 볼 때 기생은 오늘날 연예인처럼 최첨단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받아들여 체득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조선에 맞게 변형시키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춤, 부채로 말하다」에서 장금도 명인을 작품으로 만났다면 공연 꼭 1년 후 2018년 새해 벽두에 장금도 명인을 스크린을 통해서 좀 더 가까이 만날 기회가 생겼다. 「기생: 꽃의 고백」(제작: 한국영상대학교·국악방송, 감독: 홍태선·임 혁)을 통해서인데, 엄밀히 말하면 장금도 명인에 대한 영화는 아니다. 조선의 기생의 역사 중 구한말에서 20세기 초의 조선의 기생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여 이제 고령의 노인으로 되어 몇 분밖에 생존하지 않은 예인들의 과거의 족적을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관에 온 관객들은 여태껏 몰랐던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하지만 그러나 장금도 명인 외 다른 이들은 가족들이 주위의 편견과 오해로 피해가 갈까봐 자신의 존재를 숨기며 살아가며 말을 최대한 아낀다. 당시 최신 문물을 접하고 문화적으로 최첨단을 걸었던 과거의 기억의 기록을 한사코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 변조를 약속 받은 후에나 허락했다. 오늘날 누구나 특정 분야와 종목의 무형문화재의 이수자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전통음악이나 전통춤의 대부분은 기방에서 유래됐지만 이를 연주하고 추었던 주체들의 위상은 형편없이 평가절하 되고 있는 것이 의아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이야기들이 묻힐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무리 의식 있는 몇몇 사람들이 조선의 기생이 여성 예인을 지칭하며 일본의 게이샤와는 여러모로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해도 일차적으로는 예로부터 우리가 사용해오는 단어의 한자적 뜻이 너무 적나라하다. 또한 일본의 식민지를 겪으면서 예인보다는 일본의 게이샤나 몸을 팔았던 조선의 3패 계급과 구분 없이 희석되어 버렸다. 유곽에 소속되었던 지난날의 게이샤와는 달리 오늘날 관광자원의 주요 수단으로 화려하고도 절도 있는 예능인으로 격상해 버린 게이샤의 위상에 비해 답보상태인 조선의 예인출신들에 대한 현실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왜곡된 인식을 제도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총체적으로 방치하고 있는 무관심이 문제가 있지 않는 것은 아닌지, “기생”이라는 본질과 글 뜻이 모순된 이러한 상황을 불식시키기 위한 개선책이 필요한 대목이었다.
예인으로서 증언해주실 분들이 많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마저도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의 제작과 진행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 제작의 의도가 과거 기품 있는 기생의 본질이라든지 명인의 이미지임에도 오늘날 관광 상품으로써의 게이샤의 위상에 너무 많은 시간에 할애한 반면, 비록 기생이었던 할머니들이 얼굴을 가리고 인터뷰를 했어도 허접한 옷차림에 허접한 장소에서 마루바닥에 앉아 수박을 먹으며, 또 간간이 수박씨를 뱉어가며 인터뷰를 하는 모습 그대로를 필름에 담은 것은 상대적으로 조선 기생의 이미지만 감독 스스로 상쇄시켜버린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기 때문이어서 제작의 의도만 앞섰을 뿐, 이를 뒷받침 할 만한 연출의 부재가 심각하게 드러났다.
그나마 어딜 가나 기생이었음을 숨기지 않고 기품을 잃지 않는 장금도 명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현재 가족 없이 요양원에서 몸을 의탁하고 있기에 건강을 회복하고 장수하시기 바라는 마음이다. 영화의 후반에 장금도 명인이 춤을 추다가 앉은 후 노구를 추스르지 못해 한참을 일어나지 못함을 보다 못한 젊은 무용수들이 부축하려 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힘으로 벌떡 일어나 다시 춤을 추는 그 모습에서, 여전히 기품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그에게 있어서 춤이란 무엇인지, 조선의 기생의 고고함이 무엇이었을지 유추할 수 있었다.
의식을 바꾸려면 본질의 가치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과거 권번 기생들은 그 긍지가 대단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 필름을 보는 우리들은 그 긍지를 가지게 하는 정신과 법도 그리고 교육과정을 모른 채 무작정 ‘기생은 그랬대’ 차원으로, 교과서 외우듯 은근이 강요받는 느낌도 있다. 당대 예술인으로서 근대 연극과 대중가요 등에도 큰 획을 그었던 그들은 예인으로서 누렸던 과거와 퇴색해버린 자신의 아름다움을 그리워할지언정 기생이었다는 사실자체는 슬픈 경험이 아닐뿐더러 그렇게 보일 일도 아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지적하고픈 곳이 많지만, 엔딩으로 가며 이런 다큐멘터리가 나왔다는 것 만 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으로 치닫는 순간, 기생으로서 예쁘고 아름다웠으며 화려했던 인생의 순간을 연출하기 위해 특별 출연한 배우(김가애)가 흘리는 한줄기 눈물이 여태껏 전편에서의 이야기들을 한순간에 부정해 버린 듯 되어버려 혼란스러웠다.

「기생: 꽃의 고백」의 기획 의도는 단지 ‘기생’에 대한 호기심이 아닌, 천민이면서도 교양과 양식이 풍부하여 지식인들을 상대한 본연의 예인으로서의 특수한 위치와 삶, 동시에 한국 전통예술의 뿌리를 재확인하려는데 그 의의를 들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기생(妓生)을 단지 예인 기생 (技生)으로 생각한 나의 생각이 현실의 인식과 괴리가 있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위에서 지적한 바대로 아쉬운 점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찮게 여길 법 하거나 자칫 창피하게 여길 수 있을 고고한 우리의 여흥문화를 일깨우기 위해 비상업 다큐멘터리를 제작, 기획한 감독과 제작진들 그리고 후원한 국립국악원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