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살롱

잘 안 가던 외지에서 점심 한 끼 하려면, 아는 음식점도 없고, 먹거리도 마땅치 않아서 늘 망설이게 된다. 그러다 검색이라도 해서 찾아가면 십중팔구 블로그나 맛집 선전에 낚인 듯한 실망을 한다. 그런데 우연히 얻어 걸린 괜찮은 집에 찾아 들어가면, 알고 간 집보다 먹는 기쁨이 더욱 크다. 평택에 집사람과 병문안을 가서 점심에 간단한 먹을거리를 찾다가 병원 뒤편에 신장개업한 지 3일밖에 되지 않은 베트남쌀국수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간 집이었는데, 이게 웬 일?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이리 맛있는 베트남 음식이라니. 한 마디로 먹는 즐거움이 터져 나왔다.
베트남쌀국수 퍼(Pho′i)는 20세기 초 북부 베트남에서 생겨나 하노이에서 애용되던 것으로 통일 후 베트남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으며, 세계적으로도 대표적인 베트남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쌀국수를 중심으로 한 베트남 음식점이 2000년대 이후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서 지금은 흔한 외국 음식점 중의 하나가 되었지만, 미국과 프랑스, 호주 등지에서는 이미 1980~90년대에 퍼가 널리 알려졌다. 1975년 베트남 통일 이후 공산화된 조국을 탈출한 남베트남 사람들이 타국에서 음식장사를 시작하면서, 퍼가 세계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 베트남 쌀국수에는 타국에서 난민으로 떠돌아야 했던 남베트남 사람들의 아픔이 배어 있다. 마치 우리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아바이순대 등에 북한 실향민의 전쟁과 분단의 상처가 스미어 있는 거와 같다고나 할까?
베트남쌀국수는 쌀로 만든 면인 바인 퍼(Banh Pho′i)에 삶은 쇠고기를 얇게 저며 고명으로 얹은 퍼 보 찐(Pho′i Bo Chin), 생고기를 얹은 뒤 뜨거운 국물을 붓는 퍼 보 따이(Pho′i Bo Tai), 쇠고기 대신 닭고기를 쓴 퍼 가(Pho′i Ga)가 있다. 여기에 양념 라임, 고추, 숙주, 향채, 양파절임 등이 들어가며, 양념으로 호이신소스와 칠리소스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한때의 웰빙 먹거리 열풍을 타고 낮은 칼로리와 담백한 맛 때문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밀이 아닌 쌀로 만든 국수라 위에 부담이 적고, 쇠고기나 닭고기를 넣고 푹 우려낸 육수로 국물을 내어 숙취 후 이른바 속풀이 해장음식으로도 제격이다.
베트남쌀국수집 ‘퍼이’는 주인장의 베트남 아내와 장모가 주방을 맡아 개업한 지 두어 달 남짓이지만, 서울의 퍼 체인점이나 전문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깔난 퍼를 만들어 낸다. 면발이 부드럽고, 육수의 거슬리는 냄새가 없는 국물은 시원하고 담백하다. 더욱이 식탁이 예닐곱 개밖에 없는 작은 집이지만, 손님의 취향을 생각해서 퍼에 들어가는 고수(향채), 양파, 소스 등을 따로 마련하여, 입맛대로 더 첨가해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한 주인의 마음 씀씀이만 봐도 이 집의 정성을 느끼게 한다. 쌀국수를 비롯해 짜요, 월남쌈, 볶음밥까지 맛과 정성의 값이 6,000원이고, 반미는 4,500원이며, 코코넛 통째로 빨대를 꽂아주는 후식도 3,500원이니, 이렇듯 가성비가 좋은 베트남 음식 전문점은 아마 어디에도 없을 터이다. 위치는 평택 박애병원 뒤편이며, 상호는 ‘퍼이 베트남쌀국수’다. ☎ 031-618-5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