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년 5월 28일 인쇄
2018년 6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6월호 통권 508호 |2018년 12월 10일 월요일|
 

춤산책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말 (1)
-




이동우(李東祐)(춤평론)

영화 「킬링필드」(1984)는 당시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시키기도 했을 만큼 한국에서는 최고의 반공영화 영화였다. 이제는 그 존재조차 가물가물한 그 영화가 학생들의 심금을 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가 끝난 후 흘러나오는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 만큼은 잔잔한 인상을 남겼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상적인 세상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음악을 적절한 타이밍에 사용했다기 보다는 선율이 주는 음악의 힘 때문이 더 큰 것 같다, 그렇지만 존 레논이 살아있다면, 이 영화가 냉전시대에 자유진영에서 제작됐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자신의 노래를 여기에 사용하도록 허락했을지 궁금하다. 그 이전에 존 레논이 왜 이 노래를 작곡했는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새록새록 공감이 가고 있는 중이다.
인간의 문명이 진화되면서 이전에는 당연했던 생각과 제도들이 오늘날에 와서는 생각 할 수도 없게 된 것들을 - 예를 들어 신분의 귀천, 인종차별, 여성의 차별, 아동 착취 등등 생각해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 들을 - 떠올릴 수 있게 되며 섬뜩하지만 이러한 제도들이 많게는 100년 적게는 50년 정도 이전에는 당연히 자행된 것들이다. “섬뜩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전 세계적으로 여러 형태의 “섬뜩한” 인권 문제는 완전히 없어진 게 아니다. 단지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일수록 이러한 인권에 대한 문제가 비교적 적은 거라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행복지수 연속 1위를 자랑하는 나라라 한들 그 지대만 있으면 사람이 변하고 그 일대가 천국으로 변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단,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고 쾌적하며 인격적으로 살아 갈 수 있는 국민의 인격적, 도덕적 수준과 정치의 청렴도가 가장 관건이 될 것이다.

중학생 시절, 나이 지긋하신 담당 영어선생님께서 “너희는 지금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시절을 살고 있다”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1980년대 내가 살던 여의도는 중상층들이 많이 산다는 이유로 선생님들로부터 일종의 얄미움의 대상이었기에 무슨 마음으로 말씀하셨는지 짐작은 됐다. 게다가 그분이 힘주어 말씀하셨던 것은 “부유함”이었다. 학생 데모가 한창이던 그 시절, 인성교육이랍시고 전교생이 1교시 직전 강제로 눈을 감고 들어야했던 ‘명상의 시간’이 내게는 이방원의 「하여가」처럼 들렸던 터였다. 학생 때에는 국민계몽 차원에서 포스터 그리기 대화나 표어 짓기나 무슨무슨 운동이 유독 많았다. 민방위의 날 같이 무슨 날만 되면 표어가 적힌 표찰을 가슴에 달아야 했고 잊어버리고 등교하면 체벌이 기다렸다. 이런 범국민적 운동의 배경에는 당시의 어려웠던 시절을 어떻게든 타개해보고자 마련한 궁여지책이긴 했겠지만 말이 ‘운동’이지 국민의 자율에 맡기지 못하고 민심을 조장한, ‘반 강제 운동’이기에 마냥 낭만적 추억으로 넘기기엔 어딘가 슬픈 구석이 있다.
국민적 단합을 꾀한다고 해도 학생들의 도시락을 일일이 검사하며 쌀밥을 싸오는지 서로를 감시하게 하고 불시 소지품 검사에서 외제 학용품이 나온 학생에게는 징벌과 함께 매국노 비슷하게 몰아가던 흑백논리 교육방식은 비인격적 방법이며 오늘날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풍조의 초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언제는 밀가루가 건강에 그렇게 좋다고 홍보했는데 요즘 매체들에 밀가루가 인체에 끼치는 악영향이 수면위로 떠오르며 이에 대한 의혹이 한창이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에는 대기업이 독점한 질 낮은 식재료가 널리 사용됐을 텐데, (묵은) 밀가루가 인체에 해롭다면 정부의 지시에 열심히 따른 국민들은 누구에게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인권 신장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의 생활과 심지어 목숨까지 바쳐가며 싸웠기 때문에 겨우 이루어져 가고 있으며 아직도 완성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배웠음에도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치와 법을 다루는 정부기관이 국민을 두려워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내 자신은 내가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는 중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다수 승객들은 정부에서 “전원 구조됐다”며 국민과 피해 가족들을 기만하는 바람에 충분히 구조 할 수 있었던 아까운 생명들을 지척에 두고 가슴에 묻어야만 했다. 유족들과 국민들의 바람은 무시된 채 세월호 인양조차 허락되지 못했다. 위정자의 자녀와 가족들이 있었어도 똑같았을까. 무엇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할 나라가 이를 업수이 여겼다는 데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 이후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과 진위 은폐 등이 누적되면서 과거 정권이 보여준 부패 그리고 무능과 맞물려 마침내 국민들의 촛불을 들고 일어나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과를 이루어냈다. 이로써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헌법 1조 2항을 다시 한 번 짚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간에 누적된 치명적이고도 부인할 수 없는 실정(失政)의 증거들이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탄핵까지 3개월이나 걸린 것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런 상황은 내게 ‘국가’와 ‘정치’ 그리고 ‘애국’이란 단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전환점이 되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하려면 국민의 생각이 성숙할 때 가능하며, 성숙한 사고의 국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교육환경은 암기위주, 입시위주, 경쟁위주 등 독재정치 시대에나 적합한 교육방식이 아직도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보여주는 성숙도는 그 어느 선진국 못지않다. 대통령 탄핵 이후 어떤 일본 언론인은 한 일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과격하다고 표현하는 일본 진행자에게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법정에 세울 만큼 일본인들이 보기엔 무서울 정도로 한국국민들의 뜨거운 반응이 나라를 더 좋게 만드는 것 아니냐”며 정치에는 담담하면서 연예인 스캔들에는 목을 매는 일본의 반응에 일침을 놓을 정도다. 그러니 좀 더 나은 제도에서 교육을 받는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의 시민의식이나 자존감은 이 나라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에 부족함 없을 것이다.
국민의 뜻은 재수가 좋으면 국민의 뜻이고 재수가 없으면 불순분자로 여겨질 수 있는, 아직도 ‘위정자가 주인인’ 세상이 완전히 바뀌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좋은 쪽으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