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년 5월 28일 인쇄
2018년 6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6월호 통권 508호 |2018년 12월 10일 월요일|
 

꽃향시향

 

메 꽃
-




박제영(朴濟瑩)(시인, 월간 太白 편집장)

이 글을 연재하면서 나팔꽃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때 잠시 언급했던 꽃이 있지요. 네. 메꽃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이란성 쌍둥이쯤 될까요? 아니지요. 메꽃은 그야말로 순수 토종, 나팔꽃은 외래종이니 엄연히 다른 꽃입니다. 단지 닮아도 너무 닮아서 메꽃을 보고 사람들이 나팔꽃으로 오해할 뿐이지요. 자세히 보면 다르고 알고 보면 다른데, 대충 보고 나팔꽃이라 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나팔꽃이라 하는 것이지요. 메꽃의 잎사귀가 폭이 좁고 길쭉한 것이 쟁기 모양이라면 나팔꽃은 둥근 심장 모양이지요. 나팔꽃이 진보랏빛을 띤다면 메꽃은 연분홍빛을 띠고 있지요. 나팔꽃이 아침에 핀다면, 메꽃은 한낮에 피고, 나팔꽃이 일년생이라면 메꽃은 여러해살이지요. 나팔꽃이 종자로 번식한다면 메꽃은 땅 속 줄기로 번식하지요. 그러니 달라도 참 다른 꽃인데, 그저 모양이 좀 닮았다고 같은 꽃이라 부르면 나팔꽃은 나팔꽃대로 메꽃은 메꽃대로 섭섭하겠지요?

뒤뜰 푸섶
몇 발짝 앞의 아득한
초록을 밟고
키다리 명아주 목덜미에 핀
메꽃 한 점
건너다보다

문득
저렇게,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한
것이

내 안에 또한 아득하여,

키다리 명아주 목덜미를 한번쯤
없는 듯 밝히기를
바래어 보는 것이다
- 이안, 「메꽃」 전문

그거 아세요? 명아주라는 식물, 워낙에 흔하게 자라는 풀인데, 그 풀이 민간에서 약으로 쓰인 것은 물론 그 줄기를 지팡이로 썼다는 것을요. 예전에 우리 아버지네들은요 아버지가 쉰 살이 되면 명아주 지팡이를 선물했다는 것을요. 장자라고 아시죠? 중국의 공자 다음 그 맹자 선생. 그분이 즐겨 사용했던 지팡이도 명아주 지팡이였던 것을요. 도산서원에 가면 이황 선생의 명아주 지팡이가 전시되어 있는데, 오래전부터 명아주 지팡이가 부모님의 장수와 밝은 눈을 기원하는 상징으로 쓰였다고 하지요. 메꽃 얘기하다 말고 뜬금없이 웬 명아주 얘기냐구요? 이안의 시 「메꽃」 때문입니다.
명아주를 감고 올라 명아주 목덜미에 메꽃 하나 피었다잖아요. 그게 또 뭐냐구요? 시를 읽다보면 이게 참 복잡하거든요. 보세요. 하필이면 시인은 왜 명아주를 얘기하고 그 명아주 등에 업힌 메꽃 얘기를 꺼냈겠습니까?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 살지만 그러나 자식들 업어 키우고 그 자식 꽃 피우게 만드는 존재가 부모란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지요. 그런데 또 반대로 생각하면 그 없는 듯 있는 듯 살아온 게 부모, 더 늙기 전에 활짝 삶의 불을 피워드렸으면 하는 마음이 또 자식 된 마음이잖아요. 명아주가 부모라면 메꽃은 자식이겠지요. 지금 시인의 마음이 또한 그러하겠다는 생각. 저만의 착각일까요?

무찔레꽃
애기똥풀꽃
시계풀꽃
중얼거리다가
중얼거리다
아, 저것은
메꽃
간들거리는
종꽃부리
폐교된 산골 초등학교
아이들 없는
복도에
대롱대롱
목을 매단
녹슨 구리종
- 나태주, 「메꽃」 전문

나태주 시인께서는 메꽃을 일러 종처럼 생겼다 하여 ‘간들거리는 / 종꽃부리’라 하고 ‘대롱대롱 / 목을 매단 / 녹슨 구리종’이라 합니다. 기왕에 나팔꽃이라는 서양식 꽃이 있으니, 선생께서는 종으로 구분하셨겠다 싶다가 문득 ‘폐교된 산골 초등학교’에 닿으면 그게 아니라 정말로 폐교된 산골 초등학교 복도에 매달린 녹슨 구리종이야말로 메꽃과 같겠다 싶기도 합니다. 나팔이야 군인들 아침에 기상을 알리는 소리니, 아침에 피는 나팔꽃으로 쓸 수 있겠지만 학교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어디 아침에만 울리던가요. 얘들아 쉬는 시간이다 놀자! 점심시간이다 밥 먹자! 수시로 알리는 소리로는 나팔꽃은 어딘가 어색하지요. 생김새로야 비슷하지만 그 피는 때가 다르니 종으로 쓰려면 메꽃이 제격이지요.
메꽃의 이름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요? 어릴 때 할아버지 산소에 오르다 보면 이런저런 꽃을 만나기 마련인데, 그 꽃들 이름 물을 때면 할머니는 그냥 메꽃이라고 했습니다. 이꽃도 메꽃 저꽃도 메꽃. 그리고 마침내 할아버지 산소에 오르면 거기 정말 메꽃이 피었더랬는데, 그 꽃은 그냥 메꽃이 아니라 멧꽃이라고 했습니다. 사십 년도 더 된, 아주 오래전 얘기지요. 나중에 알았습니다. 할머니까 이 꽃도 메꽃 저 꽃도 메꽃 했을 때 그 메꽃은 뫼꽃, 그러니까 산 꽃, 산에 핀 꽃을 얘기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마침내 멧꽃 했을 때 그 멧꽃은 진짜 메꽃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더 나중에 알았습니다. 실제로 메꽃의 메가 예전에는 산을 뜻하는 뫼 자를 써서 뫼꽃이라 불렀고, 묘지를 뜻하는 뫼 자를 써서 뫼꽃이라 불렀던 것이 점차 변하여 메꽃이 되었다는 것을. 물론 이 얘기는 정설은 아니고 어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이긴 합니다.
한편 ‘메’가 메꽃의 뿌리를 말한다고 하고, 그 메가 ‘먹이’의 옛말이라고도 하지요.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 호미 들고 괭이 메고 / 뻗어가는 메를 캐어 / 엄마 아빠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이라는 노래를 기억하시겠지요? 「햇볕은 쨍쨍」(최옥란 작사, 홍난파 작곡)인데요, 여기에 나오는 ‘메’가 바로 메꽃의 뿌리줄기를 뜻한다고 하고, 실제로 메꽃의 뿌리줄기를 쪄서 먹기도 했다는데, 저로서는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 들었던 산 꽃 이야기, 묘지 꽃 이야기가 오히려 더 그럴 듯하기는 합니다.
박용래 시인의 「할매」를 아시는지요? 박용래 시인은 메꽃을 일러 할매라고도 부릅니다. 할미꽃을 두고 왜 메꽃을 일러 할매라 했을까요?

손톱 발톱
하나만
깎고
연지 곤지
하나만
찍고
할매
안개 같은
울 할매
보리잠자리
밀잠자리 날개
옷 입고
풀줄기에
말려
늪가에
앉은
꽃의
그림자
같은 메꽃
- 박용래, 「메꽃」 전문

“그대와 내가 못내 그리던, 짙푸른 가을 하늘 청메아리 끝 간 데, 마침내 들메꽃으로 태어나 재로 져버린 많은 사연들”이라고 했던 임동확 시인의 「유배지에서 보낸 내 마음에 편지」를 들어보셨는지요? 아니면 ‘돌무덤가에 핀 이슬 맺힌 들메꽃’이라 했던 곽재구 시인의 「봄」이란 시는 들어보셨는지요? 임동확 시인과 곽재구 시인이 말한 들메꽃은 어쩌면 우리 할머니까 말씀하셨던 그 묏꽃이 아니었을까요?

다시 그리움이 일어
봄바람이 새 꽃가지를 흔들 것이다
흙바람이 일어 가슴의 큰 슬픔도
꽃잎처럼 바람에 묻힐 것이다
진달래 꽃편지 무더기 써갈긴 산언덕 너머
잊혀진 누군가의 돌무덤가에도
이슬 맺힌 들메꽃 한 송이 피어날 것이다
- 곽재구, 「봄」 부분

바닷가에 피는 메꽃도 있습니다. 갯메꽃이라 불리는 꽃이지요. 바닷바람과 모래와 염분을 딛고 연분홍빛 꽃 피운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니 심호택 시인은 갯메꽃 보면서 눈물을 흘린 것이겠지요.

모래가 흘러내려 식구들 애태우던
그 논을 우리는 엿 마지기라 불렀지요
옹달샘 아래 내 작은 동무들
소금쟁이 물장군 즐겁게 헤엄치고
나는 그것들 곁에 앉아
둑을 쌓고 수문을 여닫고 배를 띄우며
세월 모르고 놀다가 퍼뜩
건너편 밭두렁 쫙 깔린 갯메꽃 보면 눈물 났지요
- 심호택, 「엿 마지기」 부분

갯메꽃도 좋고 들메꽃도 좋으나 나팔꽃이라 하지는 마시길요. 어느 늦은 봄날 오후이거나 혹은 어느 여름날 오후이거나, 나팔꽃 같은 연분홍 꽃을 보거든 나팔꽃이라 부르지 말고 꼭 메꽃이라고 바로 불러주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