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년 5월 28일 인쇄
2018년 6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6월호 통권 508호 |2018년 10월 20일 토요일|
 

시사살롱

 

길거리의 전단을 주고받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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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일(洪承一)(언론인)

번화가를 걷다 보면 넘쳐나는 전단(傳單), 이에 관한 왈가왈부가 많았지만 얼마 전 들은 것만큼 귀가 번쩍 뜨이는 표현은 없었다. 일간지 논설위원인 한 후배 기자의 ‘죄의식 마케팅’이란 말이었다. 함께 점심을 한 뒤 서울 중구 정동길을 걸으며 나른함을 달래던 중 아주머니들이 다가와 인근 점포 광고 전단을 잇따라 떠넘기듯 건네자 그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전단 잘 받아주면 마음씨 좋은 사람, 안 받아주면 매정한 사람, 양심의 이런 이분법을 만들어 전단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몰고 가는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다. 전단 영업은 죄의식 마케팅으로 행인을 괴롭히는 처사다.“
나도 근래 이에 관한 불편한 심경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던 터였다. 나이와 함께 노여움만 커진다고 했나? ‘동행자 중에 왜 나한테 유독 전단이 몰릴까. 내가 잘 받아 줄 것처럼 보이나.’ 그러다가 마침내 ‘내가 만만하게 보이는 건가’에까지 이르렀다. 또 엄청난 물자 낭비는 어떻고? 전단 받아 읽지도 않고 쓰레기통이나 길거리에 버려지는 분량이 태반일 텐데, 이보다 환경보호에 역행하는 짓이 어디 있단 말인가. 환경미화원들한테도 못 할 짓이다. 전단 영업 자체가 불법인 경우도 많다.
사실 나는 오랜 기간 ‘전단 잘 받아주는 맘씨 좋은 아저씨’였다. ‘보통 수백 장 되어 보이는 전단 할당량은 다 돌려야지 쥐꼬리만 한 시급이라도 빨리 받아가겠지’ 하는 동정심이 작용했다. “길 가다가 전단 몇 장 받아줄 아량이 없는 이들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한 어르신의 이야기도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런 취지로 많은 이들은 번민(?)을 감수하면서 전단을 받아왔다. 평화학·여성학 연구자인 정희진 작가는 한 신문 기고를 통해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10분 동안 겪는 전단 스트레스를 가시에 비유했다. “전단이 눈앞에서 뒹구는 민망함, 받지 않으려고 걸음을 재촉할 때의 긴장, 갈 길을 방해받는다는 짜증, 전철역에 도착하면 ‘두 장씩 받은 사람도 있었을 텐데’ 하고 몰려드는 죄책감…. 왜 사소한 일로 머리가 아파야 하나. 전단은 은근한 가시다. “ 전단을 “1초의 갈등 끝에 받아든다” 고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앞으로도 전단 돌리는 사람은 늘면 늘지 줄지는 않을 것 같다. 경기가 나아져서가 아니다. 실업률은 17년 만에 최고 수준(미국은 17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전단 돌리기에 내몰릴 사람이 늘 것이다. 분배정의를 외치는 진보정권 집권 1년이 넘었지만, 하위 20% 계층은 더욱 가난해져서(평균 월 소득 128만원) 빈부 격차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소득주도성장의 경제철학에 따라 최저임금의 인상 등으로 한계 계층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오히려 이들의 일자리만 줄이는 역효과를 낸 게 아니냐는 비판을 듣는다. 시급 7~8천 원의 최저임금을 가장 잘 반영하는 전단 알바는 나이·성별·학력을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청소년의 생애 첫 알바가 되기도 하고, 실직 남편 대신 뛰어든 주부의 생활 전선이기도 하다. 전단배포 체험 르포기사를 쓴 한 일간지 기자는 “전단 살갑게 받아주는 행인이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죄의식 마케팅’ 같은 찜찜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전단을 계속 열심히 받을 생각이다. 전단이 넘쳐나는 선거의 계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