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년 5월 28일 인쇄
2018년 6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6월호 통권 508호 |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춤 스크랩북

 

우리 젊은이들은 정말 멋있다
- 한국인의 멋




趙東華()

몇 해 전 경기도 양주 舊邑(구읍)으로 별산대놀이 구경을 간 일이 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까 벌써 저쪽에서 큰 깃발을 앞세운 길놀이 행렬이 새남소리 징소리 풍악에 맞춰 산쪽 놀이터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동리 사람들과 서울서 온 구경꾼들이 그 뒤를 따랐다. 정말 향수로운 풍경이었다.
차에서 내린 우리 일행도 논두렁 샛길로 해서 행렬 뒤에 따라 붙는다. 여기에 낀다는 것부터 옛날 속으로 뛰어든다는 감상을 만끽케 했다. 이 행렬 속엔 이미 이 마을에 관광차 온 외국인들도 많이 끼어 있었고, 뒤늦게 오는 서울 손님들이 계속 우리 뒤에 붙었기 때문에 행렬은 자꾸만 늘어났다. 그러나 마당놀이가 벌써 거기서 시작돼 늦게 다다른 우리는 별로 길놀이의 즐거움을 누리진 못했다.
놀이가 시작되기 앞서 演戱(연희)될 탈바가지를 앞에 쭉 차려놓고 차례를 지내는 행사가 있었다. 이 차례엔 기능보유자인 탈꾼 두세 사람을 빼고는 모두 20대의 젊은이들.
어떻든 이 젊은이들이 정중하게, 그리도 정중하게 엎드려 차례를 지내는 모습은 그리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차례가 끝나 찬 막걸리와 김나는 떡과 돼지고기 등이 여기에 참가한 모든 구경꾼에게 돌려진다. 태평성대의 멋진 풍경. 뭔가 형언할 수 없는 성취감 같은 행복 속에 나는 빠져 들어간다.
탈놀이는 5~6백 명의 구경꾼들이 둘러앉고 서고 한 마당 한가운데서였다.
물론 마당 공간이 넓고 탈바가지가 연희자들의 재담 소리를 막기 때문에 무슨 소린지 잘 들리지 않았으나 우리는 이미 그 내용엔 익숙해 있는 것―그저 거기서 그런 놀이가 벌어지고 볼 사람은 보고, 취할 사람은 취하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잔치가 이렇게 무르익는다.
처음부터 앞자리에 자리를 굳힌 대학생들은 연희자들의 몸짓을 따라 “~얼쑤, ~얼쑤”로 흥을 북돋아준다.
5월 오후 볕은 뜨거웠다.
놀이판은 장장 네 시간을 끄는데 구경꾼과 젊은 대학생들은 끄떡 않고 자리를 지킨다. 더구나 젊은 대학생들은 주위 어른들을 아랑곳 않고 연희자의 사설을 따라 외며 추임새와 몸동작에 신이 나 있다.
세상은 정말 많이 달려졌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 앞에서는 좀처럼 자세를 흐트릴 수 없었던 옛날 내가 살아온 시대와는 달리,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요즘 우리 젊은이들은 너무도 자유롭다. 아니 우리가 이렇게 평화롭고 풍요한 세상을 이룩하고 여기에 우리의 자식들을 거침이 없이 클 수 있게 한 것이 스스로 너무 대견스럽다는 생각, 이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한다.
이들 대학생 탈꾼들은 이곳 양주에 와서 며칠씩 묵으면서 춤을 배운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 흥겨운 잔치가 있으면 이들은 으레 놀이판이 끝나고 뒤풀이 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뒤풀이에 어울려 춤추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춤추기 위해’ 기다린다는 것. 춤은 굳이 여기가 아니더라도 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잔치 분위기에만 흥겹고 멋을 느낀다는 이 한국 젊은이들, 너무 너무 멋이 있다.
어떻든 탈놀음 여덟 科場(과장)이 모두 끝나고 타령장단이 계속되면서 뒤풀이가 시작되었다. 대학생 탈꾼들은 일제히 마당 한가운데로 털고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마당은 큰 춤판이 벌어진다. 정말 장관이었다.
한마당 꽉메운 춤판은 한 박자씩 춤추며 앞으로 움직이며 춤판 전체가 서서히 돌고 있었다.
맞은 편 산엔 벌써 저녁노을이 물들고 나는 돌계단 위에 서서 그 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저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감격이 가슴을 누른다. 구경꾼 누구도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았다. 필경 그들도 빙~ 빙~ 돌고 있는 그 춤판 한가운데 서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음이 분명했다.― 옛날에 옛날에 그 흥겹고 멋졌던 할아버지의 세월, 그때 그 잔치 마당으로 돌아와 자기가 바로 그 할아버지가 되어 춤추고 있다는 생각 속에 빠져 있음이 분명했다.

- 멋 1984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