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년 5월 28일 인쇄
2018년 6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6월호 통권 508호 |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춤 스크랩북

 

선구적인 예술인 조택원 선생과 그의 춤 袈裟胡蝶(가사호접)
- 추억 속에 산다




조동화(월간「춤」발행인)

중학교 다닐 때 어느 겨울방학에 우리 고향의 작은 극장으로 찾아온 ‘조택원 무용’을 본 것이 그와의 첫 대면이었다. 그 후 다시 한 번 고향에 온 그의 무용을 보았다.
늙은이가 흥을 이기지 못해 춤을 추다가 마침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그만 주저앉고 마는 『身老心不老(신로심불로)』라는 작품과, 밀레의 그림 「만종」의 화폭을 그대로 옮겨놓은 부드러운 갈색조명의 무대 위에 기도드리는 젊은 부부의 동작으로부터 시작되는 작품 『만종』은 나를 사로잡았다.
해방이 되던 다음해에는 을지로4가 국도극장에서 또 한 번 그의 『만종』을 대했다.
그 후 내가 무용계와 관련을 맺게 되면서 말하자면 무용계에 발언권을 갖는 위치에 있게 되면서 그의 작품들을 영원히 남겨 놓아야겠다는 생각에 문예진흥원 기금으로 『신로심불로』와 『만종』을 계승 전수 작품으로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조택원 선생은 자기 작품을 전수시켜야 한다는 나의 공식 의견에 대해 왜 그랬던지 선뜻 응하지 않았다. 어떤 작가든 자기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이 관객이나 독자가 좋아하는 작품과 일치하지 않듯, 뜻밖에 조 선생도 『신로심불로』나 『만종』에 관객 입장인 나와는 다르게 특별한 애착은 없어보였다. 결국 『신로심불로』와 『만종』 두 작품에 그의 청으로 『袈裟胡蝶(가사호접)』을 하나 더 보태어 세 작품으로 낙착을 보았다.
내가 보기에 『가사호접』은 전체적인 분위기나 음악이 민속춤 『승무』와 거의 다르지 않아 그다지 강렬한 감동을 주지는 못하는 듯했다. 그런데도 조택원 선생의 『가사호접』에 대한 애착은 대단했다. 그는 그의 자서전 이름도 「가사호접」이라 하였고 늘 자신의 대표작으로 이것을 쳤다. ‘가서호접’이란 이름이 그의 절친한 친우인 鄭芝鎔(정지용)이 명명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신무용 초기에 우리 춤의 현대화 작업의 효시인 때문이라 여겨진다.
현재 이 작품은 전수자 宋范(송범)씨와 그리고 鞠守鎬(국수호)씨에게 이어지고 있으니 그는 다른 세상으로 갔어도 그의 춤은 아직도 남아 있게 되었다.
그는 말년에 죽음으로 치닫는 병과 싸우면서도 끊임없이 말을 즐겨 웃고 흥분하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몸이 불편하여 연신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도 몇 시간이고 계속 이야기를 하곤 했다. 파리에서 고생하던 이야기서부터 정치이야기 특히 젊었을 적의 사랑편력을 주로 들을 수 있었다. 병간호를 하는 젊은 부인 K여사를 옆에 두고도 옛날 애인에 대한 찬양을 거리낌 없이 늘어놓는 호방한 성격이었다.
젊은 날의 조택원 선생은 무용가 이전에 전국테니스대회 선수권 보유자였고 미남에 글 잘 쓰고 말 잘 하고 언제는 마음대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음껏 사랑을 했으니 보기 드문 예술가였다.

- 생활 속의 이야기 1986년 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