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년 5월 28일 인쇄
2018년 6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6월호 통권 508호 |2018년 12월 10일 월요일|
 

춤 스크랩북

 

도까비부채
- 5月의 꽃 이야기




조동화()

獨逸(독일)의 國花(국화)이며 5月의 代表的(대표적)인 꽃에 <도깨비부채>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쩐일로 이 꽃에 <도깨비부채>란 어마어마한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英名(영명)은 Corn Flower 日本名(일본명)으론 矢車草(시차초)(야구루마소오)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 꽃잎이 톱날처럼 돼있는 모양이 異狀(이상)한 부채를 印象(인상)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도깨비부채는 오월花壇(화단)에서 가장 華麗(화려)하고 優雅(우아)한 品(품)의 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게 國花(국화)란 榮譽(영예)스런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 꽃 이름에는 사랑스런 것이 없지는 않으나 암만 생각해도 우수광스런 이름이 많습니다.
例(예)컨대 <닭의밑씨깨>니 <며느리배꼽><애기똥풀><홀아비바람꽃><소경부랄>… 따위 허나 이 이름의 主人公(주인공)들이 아름다운 빛깔과 향내를 가진 꽃일 때 오히려 여기에 愛嬌(애교)와 사랑을 느낍니다.
앞에 말한 것처럼 도개비부채를 Corn Flower라고 하는 原因(원인)은 옛날 東西貿易(동서무역)이 시작되던 初期(초기) 東洋(동양)에서 가져가 穀食(곡식)속에 이 꽃씨가 들어있었던지? 곡식을 밭에 심었을 때 그 밭에서 도깨비부채가 꽃펴 났다는 것으로 <穀食(곡식)의 꽃>Corn Flower 라고 부른다는 이야깁니다.
도깨비부채는 菊花科(국화과)植物(식물)로서 봄에 심은 씨가 6月부터 펴나 9月까지 또 가을에 심은 씨면 5月부터 7月까지 펴있으므로 市場(시장)에는 가을꽃도 봄꽃도 다 나오는 셈이 됩니다.
나는 <도깨비부채>에 대할 때 마다 解放(해방)이 되던 1945年9月에 쏘비에트 進駐軍(진주군)에게 無慘(무참)히도 銃殺(총살) 當(당)한 獨逸(독일)神父(신부)의 일이 생각납니다.
나는 當時(당시) 天主敎(천주교)系統(계통)의 私立小學校(사립소학교)에서 敎員(교원)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죽은 神父(신부)와 자조 接觸(접촉)할 機會(기회)가 있었고 또 聖堂(성당)이 바로 學校(학교)곁에 있는 關係(관계)였던지 그는 每日(매일)처럼 學校(학교) 職員室(직원실)에 와 있었습니다.
나는 天主敎人(천주교인)은 아니었으나 그와퍽 가까운 사이여서 그가 살고 있는 神父館(신부관)에 간것도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神父(신부)가 우리곳으로 언제 왔는지는 모르나 韓國(한국)으로 가라는 命令(명령)을 받았을 때 自己(자기) 어머니에게 世界地圖(세계지도)를 펼쳐놓고 한국을 찾고있는 光景(광경)을 받은 寫眞(사진)이며 第一次(제1차)大戰(대전)이 끝난후 自己(자기)집 農場(농장)에서 露西亞捕虜(노서아포로)가 일하고 있는 寫眞(사진)같은 것을 그의 寫眞帖(사진첩)에서 본일도 있었습니다. 그는 바이올린도 잘했도 담배도 퍽 좋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印象的(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뜰에 꽃을 많이 가지고 있은 것입니다. 그의 뜰은 항상 꽃으로 裝飾(장식)되었으며 또 그는 늘 作用服(작용복)을 걸치고 뜰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神父(신부)가 죽은 후에야 그 꽃이 獨逸國華(독일국화)인 것을 알았지만 그 전에는 그저 矢車草(시차초)로만 밖에 알지 못했습니다. 쏘비에트軍(군)이 進駐(진주)하자 우리는 失望(실망)해 버렸습니다.
그들의 냄새나는 服裝(복장)을 한것이나 罪人(죄인)같은 얼굴이 무서웠던것보다 밤마다 집을 뒤져가고 婦女子(부녀자)를 그대로 둬두지 않아서 무서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疏開(소개)같은 市民(시민)들은 돌아와야 될것인지 그대로 있어야 될 것인지 몰라 모두들 엉거주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삼일째 되던날 우리는 獨逸(독일)神父(신부)가 殺害(살해)당했다는 무서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가 聖堂(성당)으로 갔을때가 그가 죽은지 이틀되던 날인데 防空壕(방공호)속에는 두손을 마주쥔채 엎드려져 있는 젊은 神父(신부)의 큰 屍體(시체)가 그대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검은 服裝(복장)에 피자국이 군데군데 붉게 보일뿐 그의 얼굴에는 苦痛(고통)스런 빛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울이 않았습니다. 쏘련군이 무서웠던 그 당시라 운다는 것이 퍽 어리석은 짓이었던 것은 누구도 그 시체를 칠 염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일입니다. 그러나 그후 얼마 지난후에 다시 그곳으로 갔을때에는 타버린 聖堂(성당) 뒤뜰에 神父(신부)의 시체는 고이 묻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도깨비부채 꽃이 몇묶은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神父館(신부관)문과 窓(창)은 열어 제쳐져 있고 책 편지 寫眞(사진)같은 것이 聖堂(성당)뜰 가득히 흩으러져 있었습니다.
神父(신부)의 모든 것은 이처럼 掠奪(약탈)당한것입니다. 나는 虛無(허무)한 세상을 만난게 갑자기 설어워졌습니다. 그러나 *開(*개)동안 가꾸지 않은채 떨펴 있는 한떨기 도깨비부채만이 그대로 平和(평화)스러웠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 神父(신부)의 이름은 모릅니다. 그러나 도깨비부채에 對(대)하면 그 곁에는 언제고 獨逸神父(독일신부)가 웃고 서 있습니다.

- 가톨릭청년 1955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