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년 5월 28일 인쇄
2018년 6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6월호 통권 508호 |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역사살롱

 

구천십장(九遷十葬 )한 남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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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문(朴赫文)(소설가)

풍수가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 통일신라시대의 ‘도선’, 조선 초의 ‘무학대사’ 등일 것이다. 이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신비한 인물로 남아 있다. 특히 한양 천도를 둘러싸고 정도전과 논쟁을 벌였던 무학대사의 예언은 인상적이다. 정도전은 백악산(북악산)을 주산으로 낙산(대학로 뒷산)과 인왕산을 좌청룡, 우백호, 남산을 안산으로 삼은 한양에 도읍지를 정했다. 그러자 무학대사는 무악재와 인왕산 사이가 이어지지 않고 끊겨 있어 문제가 많다고 했다.
첫째는 북침을 받아 조선이 큰 재앙을 입고 종묘사직이 위험하게 될 것이라 했다. 병자호란으로 인해 조선의 임금이 청나라 홍타시에게 3배 9고두의 항복 예식을 올렸으니 이는 맞는 말이었다. 또한 장자가 왕위를 제대로 잇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병자호란 때 사실상 조선이 망한 것이라 여기면 그때까지 왕위를 잇고 2년 이상 통치한 사람은 연산군밖에 없다. 그나마 연산군도 대군이 아니니 장자라 할 수도 없다.
이렇듯이 풍수라는 것은 무시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학대사에 비길만한 조선중기의 명풍수가로는 누가 있을까?
역사예언서인 「격암유록」(일명 남사고비결), 「격암일고(格庵逸稿)」 등의 저자인 격암 남사고가 첫 손 꼽힌다. 역학(易學), 풍수(風水), 천문(天文), 복서(卜筮), 관상(觀相)의 비결에 도통하였다고 한다. 1545년에는 ‘내년에는 태산을 봉하게 되리라’고 예언하였는데 중종의 계비로 명종 때 수렴청정을 하며 여성으로서 권력을 휘둘렀던 문정왕후가 죽어서 태릉에 묻혔다. 1575년(선조8)의 김의겸, 심유겸으로 대표되는 동서분당(東西分黨)이 발생할 것과 1592년의 임진왜란이 발발할 것 등을 명종 말기에 벌써 예언했다고 한다.
이런 남사고에게도 씻지 못할 실수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 죽자 길지를 구하기 위해 묫자리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명당을 찾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해서다.
그는 보다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아홉 차례나 이장을 했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아 비룡상천(飛龍上天, 용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곳)의 길지를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그 자리를 찾아 아버지 묘소를 이장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늙은 일꾼 중 하나가
“구천십장(九遷十葬) 남사고(南師古)야(아홉 번 묘자리를 옮긴 남사고야), 비룡상천으로 산천으로 생각하지 마라(용이 날아오르는 길지로 생각하지 마라). 말라가는 나무에 뱀이 붙어 있는 형상이 아니냐”라며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남사고는 그 노랫소리를 듣고 이상히 여겨 다시 산의 모습을 살펴보니 그곳이 사룡(死龍)의 모습이더라는 것이야. 그래서 급히 그 일꾼을 찾았으나 그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이장(移葬)을 할 수 없어 그 자리에 아버지의 묫자리를 썼는데 오래지 않아 남사고는 죽고 말았다. 보다 더 욕심을 내다 결국은 죽을 자리를 찾은 것이다.
세상에는 숨어 있는 인재도 많고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사건들이 너무 많다. 어쭙잖은 지식을 바탕으로 쉽게 예단하고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일이 참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가진 자가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체면, 염치를 가리지 않는 것 같다.(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