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년 5월 28일 인쇄
2018년 6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6월호 통권 508호 |2018년 12월 10일 월요일|
 

미술살롱

 

‘대기만성 형’ 화가 주재환 선생
-




정재숙(鄭在淑)(미술기자)

유쾌, 상쾌, 통쾌. 주재환(78) 선생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중학 시절부터 평생 화가였지만 육십 나이가 되도록 전시회 한 번 열지 않았는데 결국 후배 몇이 등을 떠밀어 연 첫 개인전 제목이 「이 유쾌한 씨를 보라」였다. 2000년 회갑 무렵에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한 그 전시 이후 18년, 이제는 화단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으니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노자(老子) 말씀은 주 선생을 위한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유쾌한 씨’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왁자지껄 명랑 분위기에 바로 전염된다. 스스로 ‘광대형 작가’라 자임하는 그는 저자거리에서 누구나 어깨 겯고 ‘다 같이 차차차’를 부르고 싶은 그림을 지향해왔다. 1979년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참여하며 발표한 「몬드리안 호텔」이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그 도저한 ‘현실 뒤집기’로 저주받은 걸작이 됐다. 한국형 ‘다다(DADA)’ 예술의 속내를 그는 구수한 육자배기로 풀어냈다.
독문학자인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는 주 선생과 보낸 한 때를 회상하며 ‘주격조(周格調) 선생 만유기’를 썼다. 자신이 쓴 글을 보고 한 말씀 하셨다는 건데 일종의 문장론이다. “정 형, 거 후라이 까지 말고 좀 쉽게 써, 목에 힘 빼고 말이야!” ‘전국 푼수 연합회’ 회원들과 남도를 만유(漫遊)하다 서울로 돌아오며 했다는 ‘유쾌한 씨’의 한마디에 답답한 속이 뻥 뚫린다. “자, 이제 슬슬 바퀴벌레들이 노는 곳으로 가볼까?”
근래 주 선생의 행보가 눈길을 끄는 건 동료 작가와 함께 벌이는 합동전시 때문이다. 2016년 8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타이틀매치: 주재환 vs 김동규」는 40년 가까이 나이 차가 나는 젊은 작가와의 2인 전으로 화제가 됐다. ‘폭력’을 주제로 한 무거운 전시였지만 주 선생은 그 특유의 풍자와 해학으로 “먹고 사는 게 전쟁 같다는 생각”을 날렵하게 풀어냈다.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리는 「김정헌 주재환: 유쾌한 뭉툭」은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김정헌(72) 작가와 벌이는 잔치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일종의 ‘동료 비평’인데 그야말로 “후라이 까지 말고” 제대로 된 미술평론의 장을 열자는 의도가 읽힌다. “민중미술에 대한 막연한 칭송이나 근거 없는 비판에서 비롯되는 지루함을 극복하고자 한다”는 박수지 큐레이터의 기획의 변이 신선하다.
오래 침묵하던 우리 시대의 화가 주 선생이 들려준 당신의 회화론이 오래오래 꽃피기를. “해질녘 다리 밑 그림을 이해하려면 눈물 콧물도 흘리고, 삶에 덕지덕지 낀 때도 좀 긁어보고, 어깨도 축 늘어뜨려 보고, 맨발로 끈적끈적한 진흙탕도 기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