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7일 인쇄
2018년 7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7월호 통권 509호 |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춤산책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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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李東祐)(춤평론)

캐나다는 2018년 10월부터 마리화나를 합법화한다고 발표했다 한다. 그 이전에 미국에서는 부분적으로 마리화나를 합법으로 인정하는 주(州)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대마초라고도 불리며 한국에서는 지금도 마약류로 분류하여 죄악시 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한 인터뷰에서 “마리화나가 술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까지 말했다. 캘리포니아 대마단속국의 국장은 한술 더 떠서 “LA가 세계 최대 대마초 시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원래 해롭지 않은 물질을 여태껏 정부에서 해롭다고 선전했거나, 정말로 해롭지만 해롭지 않은 물질로 발표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이 둘의 공통점은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로밖에 해석이 안 되는 것이다. 마약이 아닌 것을 마약이라고 몰아붙여 마리화나를 흡연한 사람들을 구속시켜왔던 것이나, 국민들에게 앞으로 마약을 부추기게 하여 국민의 건강을 해치겠다는 해석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 어느 하나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어떤 것이 옳고 그르고 진실인지에 대한 가치관마저 헷갈리게 된다.
많은 나라에서 죄악시 하던 대마초가 합법이 됐다는 것은 결국 정부의 세수와 관련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게 된다. 마치 마리화나보다 중독성이나 인체에 더 해롭다는 담배가 여태껏 합법화된 것이나 위험성표시 의무화가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한 것 등이 세수와 관계있듯이 말이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를 로마 가톨릭이 이단으로 몰았듯 어제의 불법이 오늘은 합법인 것이 누구의 재량인지, 그리고 불법과 합법의 가치를 누가 매길 수 있으며, 법의 가치란 무엇인지 지금 우리가 합법이라고 믿고 지키고 있는 일이 옳은 일인지 등등 궁금해졌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의무’의 제일 첫 번째 조항은 ‘납세의 의무’다, 이어 ‘국방의 의무’, ‘교육을 받게 할 의무’, ‘근로의 의무’, ‘환경 보전의 의무’,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의 의무’ 등의 순으로 이어져있다. 이 순차적으로 따르는 데는 세금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납세의 의무가 일순위에 있는 만큼 이를 게을리 하거나 위반하면 처벌 역시 가장 크다.
그에 비해 1조 1항인 인간의 존엄권으로부터 시작해서 행복추구권, 평등권, 정신적 자유, 종교의 자유, 양심(신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표현의 자유, 생존권적 기본권 등이 이어지지만 성실히 납세를 하는 평범한 국민의 입장으로서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가 의무를 지키는 만큼 누려지면서 살고 있는지, 회의적이며, 납득하기 어렵다.

차창에 썬팅을 하는 것이 불법인 적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생애 첫 차를 구입한 곳에서 썬팅을 서비스로 받게 되었다. 꽤 오랫동안 신나게 운전을 하고 돌아다녔음에도 별 일이 없었다가 어느 날 외근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뜬금없이 경찰에게 걸렸다. 그 경찰은 코팅을 당장 떼라고 했고 그걸 떼어내려고 되지도 않게 자기 손으로 내 차의 창문을 긁다가 지저분하게 생체기가 났다. 보다 못해 나는 정비소 같은데 가서 떼겠으니 그만하시라 말렸고, 그도 더 이상은 자신의 능력 밖임을 깨닫곤 가면서 썬팅을 꼭 제거할 것을 거듭 명령했다.
다음 날 직원들에게 이 사실을 말했더니 오늘부터 차량 썬팅 자율화라고 했다. 그 경찰은 마지막 날에 한 건이라도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정확히 알려주지 않은 채 나를 불법 운전자로 몰아세운 것이고, 그 사실을 몰랐더라면 나는 불필요하게 시간적, 금전적 손해를 봤을 것이다. 물론 나는 형편 상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라는 말이 그냥 허울에 불과한 것일까. 국민이 공무원의 실적에 따라 좌지우지 휘둘리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정권의 무능과 부패가 드러났지만 사죄할 줄 모르는 태도가 화가 나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일어났다.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지면서 드러난 온갖 비리에는 문화예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온갖 기관장들에게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게 만들고 특정분야와 인물에게만 예산을 밀어주는 등 대한민국의 문화예술계 역시 예외 없이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크게 추락됐다. 이후 부패방지를 철저히 막겠다고 내놓은 안이 문화예술지원금 신청 및 정산 절차의 강화로 돌아왔다. 지원금을 받는 입장에서는 신청자들이 벌을 받고 있는 느낌이다. 자신의 분야밖에 모르는 예술가들은 더욱 까다로워진 절차를 위해 매 년 교육을 받아야 하고 제대로 정산하지 못하면 자료제출에 계속 시달림을 당하거나, 지원금을 반납해야 한다. 이러한 번거로움이 싫어서 한 번이라도 지원신청을 쉬게 되면 그 다음부터 지원받기가 무척 힘들어지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신청을 중단 할 수조차 없다.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도 양심(신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또 여기에 대해 적절한 사과와 개선의 혜택은 왜 아직도 못 받고 있는지 묻고 싶다. 납득이 안 가는 절차를 만들어놓고, 나라에서 정하는 절차가 현실적이지도 못한데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왜 시간이 그리 걸리는 걸까.

대한민국의 국책항공사 오너일가가 연속적으로 사건을 터뜨리는 바람에 오랜 세월동안 저질러왔던 갑질과 위법 행위가 일 년이 멀다하고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오너의 딸들을 통해 불거진 것인데, 그들의 행태에는 부모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두 딸들보다 더 최악의 갑질을 부린 그들의 어머니가 고급 공무원의 딸이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재시절 당시 국토부 요직에 있던 공무원의 딸이기도 해서 더욱 유명해졌는데, 그 딸들이 부모를 등에 업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패악을 부렸듯 그녀의 행동에서 당시 높은 자리의 공무원들이나 정치인들이 국민을 어떻게 여겼는지, 법을 어기며 사는 것이 그들에게는 어떤 것인지, 왜 다들 권력자가 되고 싶어 하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이들 일가가 인생을 살아오는 방법에서 알 수 있듯, 세상을 살면서 정말로 손해를 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법을 준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보다는 법을 무시하는 사람이 더 잘 살고 대접받는 것이 현실이다. 배고파서 빵을 훔친 사람은 신문에 대서특필되어도 정작 남의 것을 빼앗고 사람의 영혼을 빼앗고 목숨을 해치는 정말 나쁜 사람들은 돈만 많으면 뉴스에 잘 나오지 않는다.

이념과 소유에 대한 부정 등 무소유, 무소욕, 무이념을 제안하는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은 베트남 전쟁 그리고 히피가 공존, 대립하던 시기에 발표된 것 치곤 가사나 선율이 과격하지 않으며 오히려 무기력하며 몽환적인 것이 특징이다. 특히 눈이 풀린 채 노래하는 그의 뮤직 비디오를 보면, 정말로 구름에 떠있는 듯한 기분을 연출하며 나도 모르게 먼 하늘을 쳐다보게 만든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으며 인권관련 필름의 배경음악으로 애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사면위원회의 공식노래이며 이란의 한 정당은 회의를 시작할 때 마다 이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가사를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는 무언가에 휘둘리며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는 국가, 정치인, 정부 이런 구조의 서포터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인가 나의 애국심 충성심 이런 것들은 강요당한 것인가. 그저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좋은 마음으로 살고 싶은데 말이다.

지난 4월, 남북의 최고 대표자들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열었다. 남북한의 통일을 기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제라도 대화를 재개하는 움직임을 보며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같은 민족끼리 대립하는 만큼 밉던 곱던 대화를 통해 곧 맞이하게 될 1세기를 넘기기 전에 장벽을 허무는 작업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일을 하고 안정되기까지의 과정은 무척 힘들겠지만, 국력 면에서나, 경제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한국이 지금보다 더 큰 발돋움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서기 2000년」이라는 유행가처럼 우주를 마음대로 여행가는 시대는 아직 도래하지는 못했어도 다름을 인정하고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다국적 사회로 변화되어가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남북의 최고 대표자가 서로의 영토를 밟아보는 광경이 흐뭇했었지만 정치적인 이유가 가족과 고향을 마음대로 가볼 수 없는 이유라는 것이, 인간의 행복추구의 최소한의 권리를 실향민 당사자들의 의사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나 결국 다 같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생각의 발로에서 생겨난 것인데 결과적으로 남한이든 북한이든 국민의 행복지수는 어떠한가. 이제는 양쪽의 장점만을 골라 새로운 제도로 개선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법치국가가 될 것 같다, 다수가 고통을 받든 말든 강대국 사이에서 정치적인 이익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이라면 우리가 그렇게 경멸해 마지않는 공산주의 뿐만 아니라 그간 우리가 숭상해오던 자본주의 사회 역시 엉터리인 것이다. 이념이 다르다고 싸우고 경계를 긋고 마음대로 가족과 친지들을 만날 수 없는 일은 단지 체제구축을 위한 제도이며 국민을 가두는 행위밖에 안 되며, 이는 정치가 인간 위에 있기에 이제는 청산해야 될 일이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인간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들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국민은 인간 본연의 존엄성이 보장될 때 행복지수가 올라간다. 국가가 국민을 세수로 본다거나 체제구축을 위한 도구로 여기고 권리보다는 의무만 강요할수록 그 나라의 국민들은 점점 불행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 역시 악덕기업과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국민들은 더 이상 정치인들의 말장난에 휘둘리지 않는다. 적어도 국민들의 높아진 의식수준에 맞추지 못하는 정치는 도태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세상의 시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