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7일 인쇄
2018년 7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7월호 통권 509호 |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꽃향시향

 

강아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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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朴濟瑩)(시인, 월간 太白 편집장)

어릴 때 친구들 뒷목에 슬그머니 갖다 넣으며 “벌레다!” 그러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던 풀. 막내딸이 낮잠 주무시는 아버지 코에 갖다 대고 간지럼을 피우면 잠에서 깬 아버지 “아이고 우리 딸! 우리 강아지!” 하시던 풀. 꽃이삭이 강아지 꼬리를 닮은 풀. 엄연히 꽃인데 풀이라고 불리는 풀. 그래요. 강아지풀입니다.

너, 개풀 맞지?

다 자란 강아지풀은
아니아니 그래그래
그래그래 아니아니,

바람에
목을 흔들다가는

꼬리를 따악 멈추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지요
- 박성우, 「풀이름」 전문

짓궂은 시인이 알면서도 강아지풀에게 묻습니다. 너 개풀이라며? 개풀 맞지? 강아지풀이 귀여워서, 놀려주려 한 심사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개 풀 뜯어먹는 소리라고도 한다지만, 개풀이라니 너무 했네요. 그래도 이 강아지풀 시인의 물음에 반응하는 모습을 좀 보세요. 세상의 모든 어린 것들의 모습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요!
강아지풀은 그 꽃이삭의 모양새가 복슬강아지 꼬리를 닮은 데서 유래한 이름이지요. 한자로는 구미초(狗尾草) 그러니까 개꼬리풀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고양이 앞에서 흔들면 고양이가 재롱을 부린다고 해서 ‘고양이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강아지풀과 비슷한 종으로는 금강아지풀, 갯강아지풀, 수강아지풀, 나도강아지풀, 가을강아지풀 등이 있습니다. 갯강아지풀은 글자그대로 바닷가에서 자라고, 수강아지풀은 조와 강아지풀의 잡종으로 강아지풀보다 훨씬 크게 자란다고 합니다.

손바닥에 강아지풀을 올려놓고 본다
강아지들이 기어간다
팔에다도 올려놓아 본다
기어간다
나는 간지럽다
강아지풀은 달아나려 한다
나는 마냥 간지럽다
강아지풀을 엄지와 검지로 살며시 집어올려서는
내 생의 한복판에 내려놓아 본다
강아지풀은 달아나려 한다
요오놈의 강아지풀
그래그래, 내 생의 끝까지에도 기어가리라
나, 죽어서도 간지럽게
- 신현정, 「강아지풀」 전문

강아지풀을 얘기하다 보니, 문득 돌아가신 신현정 시인이 떠오릅니다. “박 시인, 시에 너무 많을 걸 담으려 하지마. 그러다가 시도 자네도 둘 다 지치면 어쩌려고 그래.” 지난 2009년 간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선생께 받은 마지막 문자였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너무 황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신 선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립니다. 강아지풀처럼 가볍게 시를 살았지만, 그 가벼움이 세상의 어떤 무거움도 너끈히 받아내었던 시를 풀어내셨지요. 생의 끝까지 기어가서, 마침내 죽어서도 간지럽게 살아계시지요.
강아지풀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볍게 쥐었다 폈다 하면 정말로 강아지풀이 기어가지요. 자꾸만 손바닥을 벗어나려 하지요. 공지천변 강아지풀 만날 때면, 그 강아지풀 뜯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쥐었다 폈다 하곤 합니다. 그러면 신현정 선생은 여전히 살아서 제 마음을 간질입니다. 선생께선 살아서 여전히 제 시를 간질이고 계십니다.

지난 세월 잘도 견뎌냈구나
말복 지나 처서 되어 털갈이 시작하던
강아지풀, 제대로 짖어 보지도 못하고
벙어리마냥 혼자 흔들리며 잘도 버텨냈구나
외딴 폐가 들러 주는 사람도 없고
한 움큼 빠져 그나마 먼지 푸석한 털
누가 한 번 보듬어 주랴, 눈길이나 주랴
슬픔은 슬픔대로 혼자 짊어지고
기쁨은 기쁨대로 혼자 웃어넘길 일
무리 지어 휘몰려 가는 바람 속에
그저 단단히 뿌리박을 뿐, 너에게는
꽃다운 꽃도 없구나
끌어올릴 꿈도 이제 없구나
지금은 지붕마다 하얗게 눈이 내리고
처마 끝 줄줄이 고드름 자라는 계절
빈집에는 세월도 잠깐 쉬고 있는 듯
아무런 기척 없는데 너희만 서로
얼굴 비비며 마음 다독이고 있구나
언 날이 있으면 풀릴 날도 있다고
말없이 눈짓으로 이야기하고 있구나
어느새 눈은 꽃잎으로 떨어져
강아지풀, 모두 눈꽃이 된다
- 길상호, 「강아지풀」 전문

강아지풀은 한해살이풀입니다. 강아지풀은 가을이 되면 황금빛으로 바뀌지요. 마치 벼가 익듯이 말입니다. 벼가 이삭을 털 듯이 강아지풀도 이삭을 다 털어내고 나면, 털갈이한 강아지처럼 야윈 모습을 드러내고 말지요. 그리고 겨울이 오면 마침내 한 생을 마치는 것인데요. 이런 강아지풀의 한 생을, 그 마지막 모습을 길상호 시인은 이렇게 아름다운 시로 그려내기도 합니다.
강아지풀의 꽃말은 뭘까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그게 참 이상합니다. ‘동심(童心)’과 ‘노여움’이랍니다. 동심은 금방 이해가 되지요.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드는 그 모습에서 동심을 연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노여움이라니? 강아지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꽃말이다 싶어 좀 더 찾아봤더니, 강아지풀에 얽힌 로마 시대 이발사 이야기가 나오네요.
로마 시대 꽤 왕의 머리카락을 자를 만큼 유명한 이발사가 있었는데, 왕자는 그 이발사가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합니다. 평민이 왕족의 이발사 노릇하는 게 영 눈엣가시였던 겁니다. 하루는 왕자가 불러서 이발사를 불러 황금 가위를 건네며 자신의 이발을 해달라고 했답니다. 날이 들지 않은 황금 가위는 왕자의 계략이었죠. 결국 왕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뜯겼다며, 이발사에게 목을 자르겠다고 위협하는데, 자존심이 강한 이발사는 자기 가위로 자기의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 후 이발사가 묻힌 무덤에서 목이 긴 풀이 자라났는데, 그 모습이 마치 제 목을 찌르던 이발사를 닮았다고 하는데, 그 풀이 바로 강아지풀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강아지풀의 꽃말 중 하나가 ‘노여움’인 까닭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어제는 금꿩의다리를 찾아 읽고
오늘은 은꿩의다리를 찾아 읽네 (중략)
자주강아지풀을 보면 나도 자주강아지풀이나 되어서
무엇이 좋다고 저렇게 꼬리를 흔들흔들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싶은데 (중략)
장마 그치고 바야흐로 가을로 들어섰지만
이제야말로 연애하기 좋은 시절이라는 듯
매미들 시퍼런 소리 갈아대며 극성인데
숲 속 오솔길가 거침없이 솟아 오른
깨벗은 무릇 한 쌍이
나를 조금 부끄럽게 하네
- 나석중, 「풀꽃독경」 부분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장마 그치면 바야흐로 가을로 접어들겠지요. 화려했던 여름꽃들 지고나면 들판에 황금빛 누런 강아지풀들 고개를 떨구겠지요. 어쩌면 제 때를 맞았다며 피는 꽃들도 드문드문 보이겠지요. 장마 그치면 피어날 꽃들 기다리면 장마도 지루하지 않겠다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