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7일 인쇄
2018년 7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7월호 통권 509호 |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시사살롱

 

백 년 가게와 궁중족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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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일(洪承一)(언론인)

22,000 vs 90. 비교조차 안 되는 이들 숫자는 무얼까. 각각 일본과 한국의 100년 넘은 자영업체의 수라고 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산한 이 두 숫자를 보면 두 나라가 처한 상이한 역사와 경제력, 비즈니스 환경을 감안해도 격차가 너무 심하다. 일본과 달리 사농공상(士農工商) 위계 구조의 상인 천시 풍조가 구한말까지 뿌리 깊었다는 점, 장인정신이나 가족기업의 전통이 일본보다 턱없이 취약하다는 점 등을 감안해도 ‘백 년 가게’ 2만2천 대 90의 대비는 씁쓸할 따름이다.
멀리 갈 것 없다. 춤지 편집실이 둥지를 튼 서울 종로구 대학로만 봐도 고풍 느낌의 음식점을 열거하려 해봐야 다섯 손가락이 다 필요 없다. 서울의 대표적 문화촌이자 관광지인데도 진아춘·낙산가든·혜화칼국수 정도다. 1970년대까지 서울대생들이 고전음악 들으며 문사철(文史哲)을 논한 유서 깊은 학림다방, 이 역시 몇 번의 고비 끝에 주인을 바꿔가며 간신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뛰어오른 임대료를 감당할만한 스타벅스·KFC·롯데리아 같은 대자본·다국적 프랜차이즈의 숲속에서 힘겹게 버티는 모양새다.
그래서 정부는 30년 이상 버텨온 도소매상과 음식점 중 유망한 곳을 발굴해 지원한다고 한다. 이른바 ‘백 년 가게 육성 방안’이다. 하지만 홍보나 금융 지원을 넘어 근본적 원인분석과 처방이 필요하다. 몇 십만 원 쥐꼬리 지원금 혜택이 저출산 해법이 될 수 없듯이, 언 발 오줌 누기 식의 정부지원으로 번듯한 노포(老鋪)를 키워 내겠는가.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둥지 내몰림 현상을 막을 관계 법령 손질이 우선 급하다. 비근한 궁중족발 사건을 떠올려보자. 6월 초 건물주에게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한 서울 종로구 서촌 궁중족발 주인 김 아무개 씨가 구속됐다. 분식집 해서 모은 돈에 대출을 보태 족발집을 차렸는데 장사가 될 만하니 건물주가 리모델링 후 보증금과 월세를 몇 배로 올리는 바람에 다툼이 벌어졌다. 건물주의 강제퇴거 조치 등 극심한 분쟁을 2년 거듭하다 극단적 폭력사태까지 빚었다.
물론 건물주만 성토할 일은 아니다. 은행 돈 빌려 건물을 산 생계형 임대업자도 많다. 유지 관리비 만만찮게 든다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가장 혹심한 경쟁에 노출된 수백만 영세 자영업자의 생계를 건물주의 선의에만 기댈 수 없게 되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유행하고 ‘건물주 되는 것’이 많은 젊은이의 꿈이라는 ‘지대(地代) 공화국’에서 임대차 환경의 정비가 시급하다.
「골목길 자본론」의 저자 모종린 연세대 교수는 “중국 관광에 손님을 빼앗겼던 일본에 다시 관광객이 몰린 큰 이유는 대도시 골목 경쟁력”이라 평했다. 일본 도회지 중 골목길마다 소품 같은 문화재와 살가운 백 년 가게가 즐비한 곳이 많다. 명승지 못지않은 살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평범한 동네에 상인이나 문화예술인이 투자하고 가꿔 명소가 된 지역은 임대료가 뛰는 바람에 이들이 쫓겨나곤 한다. 그 자리는 대학로처럼 자금력을 앞세운 프랜차이즈가 채우기 일쑤다. 동네의 독특한 향취를 잃어 찾는 이가 줄면 상권은 쇠락한다. 현행 5년인 상가임대차계약기간을 최소한 10년으로 늘리거나, 재건축 때 임차업소 철거보상제를 도입하는 등 어려운 자영업자의 생존권을 돌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백 년 가게를 꽃피우려면 한 수 더 깊이 들어갔으면 한다.